트렌드를 읽고 적응한다는 것은 시대에 적응한다는 것
1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아이와 대천 앞바다로 놀러 갔다. 평택에서 대천까지 가는 길이 멀어서 큰맘 먹고 데리고 가서 해산물도 먹이고 즐거운 시간을 지내다가 대천해수욕장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그동안 떨어져 지냈던 딸과 해변을 걷는 즐거움에 행복했었다.
그런데 거기서 딸이 내 사진을 찍어주면서 사건이 벌어졌다.
내가 봐도 이쁘게 잘 찍어주었다. 맘에 드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그야말로 딸레미가 나에게 요구하는 포즈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이리 걸어가라 저리 걸어가라 했는데 퍽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어냈다.
나도 딸레미에게 찍어주고 싶어서 '너도 찍어줄게~'하니까 '잘할 수 있어?'라고 물었다.
나는 물론이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며 손을 위로 올렸다 핸드폰을 봤다 하는 딸레미를 찍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그나마 합격한 사진..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대략 만족'이라는 평을 들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찍었는데.... 한 20장도 넘게 찍었는데... 그 많은 사진들 중 1장도 '만족'이라는 평을 못 들었다.
딸이 폰을 이렇게 들고 찍어야 한다고 몇번이나 보여줬으나 그게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더니 지 친구랑 둘이서 까르르 대면서 이리 찍고 저리 찍고 하더니 둘 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캐치했는지 다시 한번 해보자, 저기서 뛰어오면서 해보자 하면서 신이 나서 병아리처럼 짹짹거린다.
아이 아빠가 시무룩한 나를 보면서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치면서 '애들이 다 그렇지 뭘'한다. 위로가 된다.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업무를 잠시 미뤄놓고 사진 잘 찍는 법을 검색해 보았다.
1. 카메라를 수직으로 들지 않고 사진 찍는 사람 쪽으로 살짝 기울인다.
2. 화면 하단에 발을 맞추고 상단으로 배경화면을 많이 준다.
3. 찍을 대상보다 카메라가 약간 아래쪽에서 위쪽을 향한다.
위의 3가지가 사진 잘 찍는 비법이란다.
그래서 딸레미가 나를 찍어준 사진에 적용해 보니 위의 3가지를 잘 지켜서 찍은 사진이었다. 그러니 구도도 눈에 익고 포즈도 눈에 익은 SNS용 잘 나온 사진이 된 것이다.
그런데 내가 딸레미를 찍어준 사진을 보니.. 내가 어렸을 적 부모님들이 찍어주던 그 구도다... 화면 한가운데에 주인공을 떡! 하니 놓는... '세상에 중심은 내 새끼'라고 외치는 듯한 사진이다.
위의 3가지 중 화면 하단에 발을 맞춘 것 하나 밖에 없다. 그러니 사진 구도도 어색하고 어정쩡한 뭔가 익숙지 않은 이상한 사진이 되고 만 것이다.
포스트잇에 위의 3가지를 적어서 폰 뒷면에 끼워놓았다. 출퇴근하면서 보고 외워서 다음번 딸갱이 사진 찍어줄 때는 멋지게 찍어주리라.
사진도 못 찍는 엄마가 되면 제 사진은 찍지 말라고 하고, 엄마 사진만 찍어주고 아쉬워하는 딸레미 모습을 보게 될 것 같아서 말이다.
사진은 각자의 눈과 감정과 구도를 가지고 저마다 사연을 담아내는 그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사진도 눈에 익은 프레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너와 나, 그리고 우리의 눈에 익은 안정된 사진, 잘 나온 사진을 얻을 수 있다.
트렌드를 읽고 응용한다는 것은 시대에 적응하는 것, 내 다음 세대와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