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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큰 송아지 Aug 12. 2021

엄마, 바다가 나를 물어

우리 딸 아무말 대참사

내게 아주 고귀하신 딸레미가 하나 있다.


뱃속에 있을 땐 고기가 먹고 싶다 노래 노래 불러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나를 고깃집 없는 먼 길로 돌아 집에 가게 만들었던 먹성 좋은 아가였다. 저녁에 자기 전에 자라서 영어 공부할 때 도움이 되라고 이모가 스텐실로 만들어준 알파벳을 손으로 매일같이 두 번씩 따라 그리고, 수학 공부할 때 도움이 되라고 구구단을 두 번씩 외워주고, 양손잡이가 되라고 왼손으로 글씨 연습도 했었는데, 비가 억수같이 오던 밤을 보내고 다음날 해님이 얼굴을 내놓자 저도 세상 나올 준비를 하던 슬기로움을 뽐냈다.


22개월이 다되도록 '엄마'소리를 못하길래 병원을 데려갈까 했더니 일주일쯤 지나니 '이거 줘'를 시작으로 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온 식구를 놀라게 하던 아이로 성장했다.


1. 아무말대참사

말을 하도 안 듣는 딸레미랑 말싸움이 벌어졌다.

 '야, 너네 엄마 저기 칠갑산에서 고무신 장사하던데... 너 보고 싶다더라... 갈래?' 

나한테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딸레미에게 등을 돌리면서 '눈 그렇게 뜨면 어쩔 건데?' 

발걸음을 떼었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내 발목을 탁 잡더니

'네가 내 엄마인 거 다 알아'한다. 

여기서 웃으면 내가 질 거 같아서 '누가 그래?' 했더니 '다 알아. 똑같이 생겼는데!' 한다.

'쟤는 대한민국 어디다 놓고 와도 자기한테 데려다주겠어. 어쩜 이렇게 똑같냐'라는 말을 동네 어른들이 자주 했는데 아마 그걸 귀담아 들었나 보다.


외할머니네서 집으로 오던 날  차를 타고 고깃집 앞에서 신호등에 걸려 정차했는데 갑자기 딸이 질문을 했다.

'엄마. 월급날이 언제야?'

'월급날? 왜 애기야~~'

'고기 먹고 싶은데 월급 타야 사 먹지'

똘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딸 얼굴을 보면서 웃음이 터졌다.

'응.. 20일이니까 4 밤 남았네! 월급 타면 사줄게'라고 호탕하게 약속했던 기억도 있다.

아마 제 아빠와 대화하는 걸 들었나 보다.


워킹맘을 가진 아가들은 다 그렇듯 외할머니댁에 있는 날이 많다. 우리 딸도 마찬가지였다. 방학이든 아니든 외할머니네는 제2의 집이다.

'우리 애기 오늘은 뭘 먹을까나~'하면서 부엌으로 향하는 할머니에게 우리 딸이 한 말이 기가 막히다.

'할머니. 그냥 한 끼 대충 때우고 말아요'

초등학교 1학년이 어디서 이런 말을 배우는지 알쏭달쏭이다.


또 한 번은 밥상을 보더니 가만히 할머니에게 '할머니, 나 토끼야?' 질문의 의도를 몰랐던 할머니는 '그럼. 우리 손녀 토끼같이 이쁘지. 토끼띠잖아~ 에구 우리 또깽이.' 하셨단다.

'으응! 근데 할머니 나는 육식 토끼 할래. 내일은 고기반찬!' 하면서 밥을 먹었다고 한다. 

육식 토끼라니..ㅋㅋ

할머니 할아버지 표정을 상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딸아이를 데리고 바다로 피서를 갔었는데 바닷가에 파도 앞에 데려가서 세워놨더니 파도가 밀려와서 제 발등을 덮었다가 다시 밀려나가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 바다가 날 물어. 내가 한번 참았는데 자꾸 물어'해서 나는 진짜 꽃게나 해변동물이 와서 무는 줄 알고 놀랐었다.


여동생네가 캠핑은 천국이라는 말로 캠핑을 다니면서 우리도 끌고 다녔다.  삼시세끼 다른 음식으로 온 식구들을 거둬먹였다. 여동생이 꽤 솜씨도 좋고 정성으로 없는 거 없이 다 싸가지고 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산 중턱 캠핑장에 저녁 늦게 도착해서 삼겹살을 구워 먹고, 후식으로 과일 먹고 잠에 빠졌었다. 아침에 일어난 애들에게 뭐 먹을 거냐고 물었더니 '고기'란다. 아침에 또 고기를 구워줬다. 아침부터 삼겹살인데 좋아한다. 점심때 되니까 '또 고기 줄 거냐'라고 물놀이용 튜브를 허리에 차고 묻는다. 또 고기를 줬다. 저녁때는 줄넘기랑 잠자리 잡으러 뛰어다니다가 '고기'냐고 묻길래 '그렇다'라고 대답했더니.. 

'와~ 여기는 천국이다. 삼시세끼 고기만 준다. 좋다. 신난다!' 하면서 조카 2명, 우리 딸 1명은 캠핑장을 세 바퀴나 돌았다. 다음날 아침도 고기를 주었다. 지치지도 않는 입맛!


대학원서 쓸 때도 우리 아이는 조용히 넘어갔다. 본인이 원하는 대학 골고루 다 쓰고 자기소개서도 선생님이 나보다 더 신경을 쓴다고 짜증을 부렸다. 

그런데 아이 친구들이 놀러 와서 나한테 '어머니, 현정이가 얼마나 웃긴 줄 알아요?'

'왜? 무슨 일이 있었어?'

'깔깔깔.. 우리 반에 한 친구가 점수 부족으로 대학원서를 6군데 쓸 수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4군데 밖에 없대요.. 그런데 선생님이 6군데 다 채우라고 하니까.. 고민하면서 현정이한테 물어보더라고요.. 그러니까 현정이가 '야! 그냥 이화여대 써... 그리고 떨어지면 나 이화여대 썼던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기도 좋잖아!'라고 해서 우리 반 전체가 다 웃었다니까요. 걔도 좋다고 했고요'

'아이고... 현정아...'

'근데 선생님이 쓰라고 할지는 모르겠어요.. 깔깔깔깔'

학교에서 우리 딸에게 친구들이 상담하는 걸 좋아한다는데 왜냐하면 우리 딸이 아주 단호하고 칼같이 현실 직언을 하는 게 이유란다. 


2. 엄마 어깨 등고선은 한라산!

내가 워킹맘인 관계로 우리 아이는 어린이 집도 2살 조금 넘어서 다니게 되었는데...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오늘은 엄마랑 아빠랑 어떻게 출근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차 타고라던가 걸어서라던가 안녕하고 갔다고 말한다는데 우리 아이는 우리 엄마랑 아빠는 오늘 팔짱을 끼고 갔어요, 오늘은 떨어져서 갔어요, 오늘은 엄마가 많이 웃으면서 갔어요라고 한단다.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의 대답을 들으면 재미있고 즐거워서 자주 물어본다면서 내게 아이가 언어 쪽으로 남다른 거 같다고 했다.  


연말에 재롱잔치가 끝나고 다음 날 우리 아이와 같이 다니는 원생들의 어머니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재롱 장치 때 우리 아이가 똘똘해 보여서 도대체 무슨 책을 읽는지 학습지를 뭐를 하는지 궁금해서 왔다면서 아이의 방 책장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우리 애랑 똑같은 거 하는데... 책은 좀 확실이 많네'하길래 '책 많으면 뭐해요. 읽어야 말이지요.'


조금 더 지나서는 미술학원과 피아노 학원을 병행했다. 미술학원은 지가 하고 싶다고 해서 다니게 되었고, 피아노는 내가 원해서 다니게 되었다. 애 아빠는 질색을 했지만 나는 필요하다고 우겼다. 왜냐하면 나는 미술 솜씨가 없었기 때문에 분명 내 아이도 미술 때문에 애를 먹을까 봐 걱정이었는데 미술학원을 다닌다고 하니 너무 고마웠고, 내가 피아노를 배웠었기 때문에 악기를 다루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알기 때문이었다.

미술학원에 다닌 지 보름쯤 되었나 개나리꽃 아래 꽃신을 그려왔는데 내 눈에 그게 얼마나 자랑스럽던지 잘 보관했었는데 평택으로 오면서 어디 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집에 와서 개나리꽃 그리는 방법이랑 꽃신 그리는 방법을 내게도 설명해주었는데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샛노란 아치형 개나리꽃 아래 빨간 꽃신...

미술학원은 그전에 그만두었고, 피아노 학원은 계속 다니고 있었는데 멀리 떨어진 동네로 이사를 가게 되어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피아노 학원 선생님에게 말씀드리자 '아.. 현정이는 우리가 픽업하러 다녀도 되는데요.. 다른 학원에 뺏기기 싫은데요'하신다. 립서비스 었든 진심이었든 학부모에겐 정말 엄청난 칭찬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마지막도 각반 재롱잔치로 마무리가 되었다. 그때도 우리 아이는 할 게 없다면서 고민 중이었는데 어떻게 어떻게 친구들과 리코더 연주와 연극을 꾸리겠다고 했다.

'엄마, 우리 반에 인사말을 할 애가 없는데..'

'네가 해봐'

'아.. 좀 창피한데... 선생님이 자꾸 빨리 손들라고 하시는데 아무도 안 들어서 우리도 걱정이야'

그때 학부모회에 같이 가입되었던 엄마들과 통화를 하면서도 서로의 아이들이 다 싫다고 한다면서 걱정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딸이 '엄마, 인사말 그냥 내가 하기로 했어. 할 사람이 없어서'

응? 창피해서 싫다더니...

그날부터 나랑 딸은 머리를 맞대고 원고를 쓰고 외우고 정신없었다.

발표날 우리 딸이 인사말 발표를 하자 엄마들이 '뭐야... 어떻게 된겨?' 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3. 사건사고 

초등학교 때 가장 마음이 아팠던 사건 하나.

'엄마, 나만 초대 못 받았어'

'무슨 초대? 생일?'

'아니.. 그냥 모여서 과자 파티한다는데 나만 초대를 못 받았어'

'왜? 무슨 일 있었어?'

'내가 이 동네에서 유치원을 안 나왔기 때문에 초대를 못 받은 거야'

'응?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유치원이 다르다고 초대를 못 받아? 친구 주영이한테 부탁해보지 그랬어?'

'그랬지. 주영이가 나 초대하겠다고 했더니 애들이 안된다고 하면서 나한테 말했어. 넌 안된다고'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도 눈물이 떨어지면서 서럽다.

 '근데 아가야... 학교에선 잘 놀아주니?' 했더니 '응. 그 과자파티만 초대 안 해주고 학교에서는 다 잘 놀아'

아니.. 초등학교 1학년 녀석들이 학연이 아니라고 같이 안 놀아준다니 괘씸했으나 뭐 어쩌겠어.


중학교 때는 별 사건 없이 조용히 잘 지났는데 사건은 고등학교에 가서 터졌다.

'어머니. 현정이가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 나와서 다른 친구들하고 심하게 장난을 치니 학교로 와주셔야 하겠습니다'라는 문자를 보고 '아니, 그럴 수도 있지. 이런 걸로 엄마를 부르나'하고 학교에 선물을 하나 들고 갔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지나치게 외향적이라 친구들이 좋아서 그러나 봐요. 친한 친구들하고 다 떨어져서 아마 복도에서 만나기로 했나 봐요. 저도 집에서 잘 지도하겠습니다'하고 돌아오는데 마음이 씁쓸하다. 복도에서 친구들과 지나가는 애들을 두드려 패 거나 욕설을 한 거도 아닌데....

2학기 때 또 학교로 오시라고 한다. 짜증이 슬쩍 올라왔으나 애를 맡겨놓은 죄로 순순히 학교로 향했다.

'또 복도에서 떠드나요?' 했더니 선생님 얼굴이 좀 심각해지더니

'어머니, 현정이가 그동안 현금을 3학년 학생들에게 상납하고 있었어요. 한 달에 천 원씩 하고 있었더라고요.'

'맞거나 하진 않고요?'

'네. 폭행은 없었고요.'

그 말을 들은 내 머릿속에서 '애들 복도에서 떠든다고 난리 치지 말고 상납 사건이나 얼른 알아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2학년 초반엔 '어머니. 학교로 얼른 오세요. 현정이 이마가 찢어져서 피가 나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말괄량이 초원이랑 놀다가 밀려서 유리창을 머리로 박았다고 한다. 뭐 자의 반 타의 반 해리포터가 되셨다. 성형외과 갈 시간도 안돼서 정형외과에 가서 미려한 의사 선생님 솜씨로 꿰맸다. 초원이 어머니가 언제든 성형외과 가면 나한테 말하라면서 미안하다고 백배사죄를 한다. 뭐 초원이 혼자 그랬는가. 손뼉이 마주치니 소리가 나지.


2학년 중간쯤엔 갑자기 머리가 기르고 싶어 졌는데 그러려면 무용을 해야 한다고 무용학원을 등록해달라고 했다. 나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건 하라 주의여서 등록을 해줬는데 그 무용학원이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방송댄스 멀티였다. 요 녀석이 머리만 기르고 싶어서 지 친구와 아무 학원이나 고른 것이다. 그 후로 무슨 동네축제마다 무용복을 사면서 참가를 했다. 한 1년 하더니 안 간다 하더니 3학년 초반에 또 3개월 정도 머리 때문에 열심히 다녔다. 학원에서는 내게 '한국무용 전공이 어떠냐'라고 건의 전화가 왔었다.


지금은 대학교 3학년인데 느닷없이 네일아트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해서 내 심장을 놓았다 쥐었다 하는 중이다. 간호학과 3년을 공부했는데 깜빡이 없이 훅 네일아트가 끼어드니 아주 인생이 쫄깃쫄깃하다.


4. 유지비용 과다

한번 시술에 60만 원씩 하는 붙임머리와 염색과 파마, 철마다 새로 사제 끼는 옷하고 신발, 유행 따라 구매하는 가방, 머리핀, 화장품, 핸드폰 구입 등은 애교다, 애교.


자랑 글이라 사진 겁나게 넣고 싶은데 딸레미가 싫다고 하니 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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