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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태쁘 Dec 09. 2024

위반시 즉시퇴촌

완벽함의 불행

원칙은 강철이 아니어야 한다


원칙은 흔들리는 삶의 항해에서 닻과 같다. 거친 풍랑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게 해주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존재다. 하지만 원칙이 지나치게 단단하다면 그것은 닻이 아니라 족쇄가 된다. 세상은 늘 변화하고 사람의 마음은 복잡하며, 모든 상황이 동일하지 않다. 그렇기에 원칙은 단단한 강철이 아니라 물처럼 흘러야 한다.



지난 주말, 가족들과 캠핑장을 찾았다. 그곳은 마치 이상적인 캠핑장의 모델 같았다. 주변은 깨끗했고, 조용하며 정돈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깨끗함과 질서의 배후에는 경직된 규율이 숨어 있었다. 캠핑장 곳곳에 붙은 ‘위반시 즉시퇴촌‘ 경고문은 얼핏 보기에도 긴장감을 자아냈다. 곧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관리인이 쓰레기봉지를 하나하나 열어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캠핑장을 깨끗이 유지하기 위한 조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과잉된 통제는 사람들이 느끼는 자유와 편안함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났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소등이 늦어진 캠핑 구역에서 관리인이 다가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의사항 안내 못 받으셨나요?” 그의 단호한 태도와 말투는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결국 관리인과 손님 사이에 언쟁이 벌어졌고 캠핑장의 완벽한 질서가 일순간 흔들리는 듯했다.


이 엄격한 관리 덕분에 캠핑장은 외형적으로는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광경을 보고 불편함을 느꼈다. 아무리 이상적인 환경일지라도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인간다움이 무시된다면 과연 그 완벽함이 진정한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완벽함의 허상과 심리적 관점


심리학자 배리 슈워츠(Barry Schwartz)는 그의 저서 선택의 역설에서 지나친 규칙과 완벽함을 추구할 때 인간은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택의 자유와 자율성을 제한하는 완벽주의적 환경이 사람들이 느끼는 만족감을 감소시키고 긴장과 불안을 유발한다고 설명한다. 캠핑장에서 목격한 장면은 바로 이런 현상의 예였다. 관리자는 질서와 규율을 유지하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의 자율성과 감정적 유대는 희생되었다.


완벽함은 물처럼 흘러야 한다


완벽함이란 단순히 결점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진정한 완벽함은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고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며 본질적인 가치를 지키는 데 있다. 

물이 장애물을 만나면 멈추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완벽함도 고정된 틀이 아니라 유연한 형태를 가져야 한다.


고대 철학자 노자는 도덕경에서 “물은 가장 유연하지만, 그 유연함이 가장 강하다”고 말했다. 물은 어떠한 그릇에도 담길 수 있고 장애물을 만나면 돌아가거나 스며들며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완벽함도 단단한 강철처럼 고집스러워서는 안 된다. 오히려 유연하게 흐르며 변화와 다양성을 품을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캠핑장의 질서도 단순히 규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들의 자율성과 감정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필요가 있다. 규칙은 외적인 완벽함을 만들 수 있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내적 만족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 완벽함은 허상에 불과하다.


완벽함과 인간다움의 조화


완벽함을 추구하다 보면 종종 잃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다움이다. 인간다움이란 단순히 따뜻함이나 친절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이해하려는 공감, 상황에 맞게 대처하려는 유연함, 그리고 때로는 규칙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선택할 줄 아는 용기다.

우리는 모두 원칙과 규칙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듯이 원칙은 방향을 제시하는 도구일 뿐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흐르는 완벽함


완벽함을 추구할 때 우리는 늘 질문해야 한다. 이 완벽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담고 있는가? 이 완벽함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시키는가, 아니면 연결하는가?


결국, 진정한 완벽함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원칙의 본질을 이해하고 필요할 때는 그 원칙을 유연하게 바꿀 줄 아는 데서 나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변화하고 사람들은 각기 다른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물처럼 흐르는 완벽함만이 진정으로 인간다움을 지키는 길이다.


완벽함을 물처럼 흘러가게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다. 흐르는 완벽함 속에서 인간다움은 잃는 것이 아니라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번 캠핑장은 그 어떤 곳보다 깨끗했고 정갈했지만 다시 방문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쩌면 편안함이란 깨끗한 개수대보다 우리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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