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사교육
이맘때쯤이면,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사교육 열기가 절정에 이른다. 영어 학원, 수학 학원, 레벨 테스트 접수로 달력은 빼곡하고 부모들의 머릿속은 아이의 학습 레벨에 대한 고민으로 복잡하다. 나 역시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아이가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레벨 테스트를 방학 때마다 빠짐없이 보지만 레벨테스트 후 학원은 등록하지 않는다.
“아직은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이 말에 깜짝 놀라거나 내가 현실 감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아직 필요 없다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뭘 몰라서 여유를 부리는 게 아니다. 나름 나만의 기준과 관점이 있다. 나는 이 레벨 테스트를 중간 점검 정도로 보고, 아이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에 의의를 둔다.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건 바로 이것이다. 왜 나는 학원을 등록하지 않는지, 사교육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아이가 살아갈 AI 시대의 사교육은 어떤 방향이어야 하는지 말해보려 한다.
“그래도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라고 묻고 싶을 수도 있겠다. 맞다, 요즘 세상은 변화를 빠르게 요구하고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하지만 그 변화와 경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레벨 올리기에만 매달리는 건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교육, 필요한가?
그렇다면 나는 사교육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사교육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왜”와 “어떻게”다. 사교육은 단순히 성적을 올리는 도구가 아니라 아이가 더 나은 배움과 성장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많은 부모가 사교육을 그 자체로 목적화하고, 학원의 커리큘럼에 맞춰 아이의 학습을 끼워 맞춘다.
특히 영어 사교육의 경우, 아이들이 무학년제 과정에서 형이나 누나들과 같은 반에 들어가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물론 자랑스러울 만하다. 잘한다는 의미니까. 그러나 한 가지 묻고 싶다. 그 아이가 그 레벨의 학습 내용을 정말로 이해하고 있는가? 영어 실력이 높아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실력이 아이의 삶과 학습에 제대로 녹아들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문해력은 단순히 단어를 많이 알고 문법을 잘 아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충분한 입력값과 배경지식, 다양한 경험이 쌓여야 가능하다. 한국어 독서가 부족한 상태에서 높은 레벨의 영어책을 읽는다고 해서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지금의 사교육이 진정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방향인지 부모로서 우리는 깊이 고민해야 한다.
AI 시대의 사교육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우리가 경험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인공지능(AI)은 이미 우리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실시간 번역 앱 하나로 언어 장벽이 허물어지고 데이터 분석부터 창작까지 수행하는 AI 프로그램들이 등장했다. 이런 세상에서 단순히 성적이나 레벨로 경쟁하는 것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은 지금과는 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암기와 반복 학습이 아니라, 창의적 사고와 문제 해결 능력이 더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영어를 도구로 활용해 정보를 탐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렇다면 사교육은 필요 없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AI 시대에는 사교육이 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배우고 활용하는 능력”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아이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역량을 키우는 사교육으로 변화해야 한다.
부모와 사교육의 역할
아이들의 학습에는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단순히 학원에 등록하고 맡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학습 과정에 직접 관심을 가지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학(學)“이라는 글자는 배움의 과정을 의미한다. 학부모는 그 과정의 조력자다. 아이가 학령기가 되면 ‘부모’에서 “학”부모가 되는 이유이다. 학원만 보내놓으면 끝인 줄 알았다면 여기서 뜨끔해야 한다. 아이의 앎의 깊이, 학습습관을 판단하는데 학원 선생님의 레벨테스트 결과를 듣는 것으로 퉁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사교육은 도구일 뿐이다. 도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해야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사교육은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의 사교육은 그 본질을 잃고 단순히 레벨을 올리고 성적을 올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지, 이것이 과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올바른 방향이 맞는지 부모로서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는 이 질문을 고민해야 한다.
미래는 지금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하고 복잡해질 것이다. 아이들이 성장할 AI 시대에는 단순히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사교육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진화해야 한다.
아이들은 분명 공부해야 한다. 단순히 놀기만 해서 창의력이 생긴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창의성의 토대는 기본 개념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서 출발한다. 정확히 개념을 알고 나서야 모방이 가능하고 모방 속에서 창조가 나온다. 그러나 그 공부가 단순히 학원의 커리큘럼과 시험 점수에 갇히지 않도록 부모들이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배움이 진정한 성장으로 이어지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가올 AI 시대에서 자신만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통해 진정으로 필요한 사교육을 고민해야 한다.
결국, 사교육의 방향은 우리가 만들어 간다. 아이들의 미래는 단순히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사람에게 열릴 것이다.
**오늘도 레벨테스트 점수로 아이를 잡으신 부모님들께 바칩니다. 오늘 이 점수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이 글을 쓰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아이를 위하는 진짜 미래 교육, 엄마아빠 노후자금 털어가지 않을 사교육,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는 사교육을 같이 고민해보았으면 합니다. 사교육의 ‘왜’와 ‘어떻게’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