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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태쁘 Dec 21. 2024

택시기사님의 철학

자기 자신을 위한 마음

12시가 다되었다.

회식이 끝나고 택시를 불렀다.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사람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다 울컥하기도 하고 저 사람은 무슨 마음이길래 저렇게 할 말이 많을까 혼자 추측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와, 너무 재밌는걸.’ 회식 자리의 여운에 묘하게 들떠 있었다.


기다리던 택시가 도착했다. 차에 오르자마자 눈앞의 풍경이 너무 흥미로웠다. 천장에는 독특한 엠보싱 무늬와 은은히 퍼지는 조명이 있었고 좌석 커버와 바닥 매트까지 신경 쓴 흔적이 역력했다.


“와, 기사님. 택시가 너무 이쁘네요. 미적 감각이 남다르세요. 개인택시를 하신 지 오래되셨나 봐요.”

칭찬을 건네자마자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다.

“개인택시 아니에요. 회사 차량입니다.”

“네? 회사 차량이요?”

그냥 보기에도 몇백은 족히 들었을 법한 인테리어였다. 내 것이 아니라면 굳이 돈을 들여 꾸밀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순간 놀라움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나르지오)

기사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회사 차량이긴 하지만 주로 제가 운전합니다. 하루 종일 차 안에서 보내다 보니 이렇게 꾸며놓으면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제야 이해가 갔다. 이 차를 타는 손님들은 길어야 몇십 분 머무르겠지만 하루 종일 이 차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기사님 자신이다.

자산으로 남지 않음을 알면서도 자신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에 꽃을 심어놓는 마음.




생각해 보면 사람과의 관계도 비슷하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친절하게 대하고, 좋아 보이기 위해 억지로 미소 짓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관계의 중심은 나 자신에게 있다. 내가 편안하고 내가 좋아야 남과의 관계도 건강하게 이어질 수 있다.

그 택시는 기사님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공간이다. 손님을 위한 듯 꾸며졌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자기 자신을 위한 마음이다.


그 마음을 떠올릴수록 경외심이 일었다. 자신의 시간을 자신답게 채우기 위해, 자신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해 그 공간에 마음을 쏟는다는 건 얼마나 귀한 태도인가. 자신을 돌보는 이들의 태도는 타인에게도 은연중에 전해진다.


자신이 가진 것을 허투루 대하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먼저 살피는 이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간다. 그 마음이 곧 삶에 스며들고 주변까지 따뜻하게 만든다.

기사님과 그 택시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나는 마치 꽃이 핀 정원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찬바람 부는 새벽에도 이상하게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이런 마음을 실천한다는 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가. 바쁘고 복잡한 삶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타인의 눈에 더 신경 쓰고 보이지 않는 기준에 맞추려 애쓴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마음을 놓치지 않는다는 건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단단히 세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차를 내려 집으로 향하며 조용히 다짐한다.

나도 내 하루를 조금 더 소중히 여겨야겠다고. 내 공간, 내 마음, 그리고 내가 머무는 시간을 더 사랑해야겠다고. 그것이 결국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고 나를 통해 누군가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


살면서 종종 마주치는 이런 사람들이 있다.

눈에 띄는 존재는 아닐지라도 그들의 태도는 단단하고 따뜻하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존중하며 그 마음으로 삶을 가꾼다. 그리고 그들의 하루 속에는 언제나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평생 지속될 로맨스다.”

-오스카 와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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