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이런 글을 써야지. 막연한 생각으로만 두다가, 오늘은 어쩐지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그래서 쓰는 글이다.
이는 최근을 돌아보며 나의 시선으로 본 주변에 대한 글이다.
최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수필을 썼다. 만약, 누군가가 이 글을 수필이라 칭한다면. 아마, 발언을 철회해야 하지 않을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온전히 여기에 집중하고 싶기에.
주변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20살을 기준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아마, 부딪히는 세계의 크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솔직하게 말하면, 주변에 큰 관심은 없다. 오직 나와 내가 받아들인 몇몇. 그것이 내 세계다. 때문에 나의 주변은 내 세계 속에서 일어난 의문이며, 일종의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다.
사람에게는 호불호를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간에 말이다. 때문에 나는 타인의 사상이나 신념에 대해 깊게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사상이나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면, 필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아, 그렇다고 사이비를 긍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 안에서 관심분야가 아니라는 것뿐이다.
이렇기에 사상에 대해 토로하는 요즘은 피곤하다. 쉽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지금은, 온전한 분노의 시대가 아닌가 싶다. 몇 키로바이트, 몇 메가바이트로 표출된 대상 없는 분노는 사람을 거쳐 구체화되고야 만다. 그리고 그것은 공감한 이들을 통해 불특정 다수를 공격하게 하는 원인이 됐다. 그래서 모두는 화가 나 있다. 누가 짠 것인지 모르는 판 위에서, 싸울 적을 찾지 못해 일단, 눈에 보이는 서로를 헐뜯는다. 이것이 옳은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친구는 내게 너는 왜 분노하지 않느냐고. 왜 그들을 싫어하지 않느냐고 한다. 나는 그럴 이유가 무어냐고 답했다. 그들이 내 삶을 망가뜨렸는가. 그들이 내게 칼을 꽂았는가. 그들이 내게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는데, 무엇하려 먼저 혐오를 하는가. 이러면 친구는 내게 그쪽이냐고 묻는다. 나는 이럴 때면 당황스럽다. 저 친구의 세계에 중도는 없는가. 세상은 이리도 많이 바뀌었는데, 흑백으로 판단하는 잣대는 그대로다. 그 누구도 중도를 보지 않으려 한다. 그 누구도 양보하려 하지 않는다.
친구는 이것을 두고 생존권 경쟁이라고 했다. 빼앗기지 않으려면 먼저 쳐야 한다고. 오히려 늦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생존권이라는 것. 삶의 우위라는 것이 그렇게 정해지는 것이었나. 법과 국회, 그리고 행정부. 생존권은 이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던가. 상대의 사상을 이겨서, 자신이 지지하는 사상으로 위를 채우는 것이 이상적인가. 때때로 묻고 싶은 질문이 있다. 왜 생존권에 있어서 사상적 중립을 요구하는 이가 없는가. 왜 입안된 안건에 대해 그것을 평가하지 않는가. 친구는 자신의 행위를 이유 있는 정당한 혐오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이, 모순되었다고 생각한다. 싫어하는 것과 혐오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단순한 불호는 변화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혐오에는 그런 가능성이 없다. 혐오란 본디 그런 것이다. 내 안에서조차 이유를 찾지 못한 싫음과 미움. 그것이 혐오다. 그런 것이 어찌 정당할까.
물론, 어디든 과격하게 움직이는 이들은 있다. 지금까지 친구를 비롯해 주변을 봤을 때, 원인은 이런 과격파에서 나왔다. 그럼, 싸움의 대상은 이들로 한정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싸움에 끌려 나온 이들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왜일까. 나로서는 모르겠다. 다만, 소수로 인해 다수를 욕하는 저 현상이 옳지 않음만은 안다.
돌아가자. 너무 과열된 감이 없잖아 있다. 여하튼,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지금 시대에 이름을 붙이자면 틀림없이 싸움과 혐오의 시대일 것이라고. 하루빨리 이 시대가 끝났으면 한다.
모두가 행복할 수는 없다. 행복이란 개개인의 가치관의 최상위니까. 때문에 모두의 행복을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각자의 행복을 위해 상대를 혐오하는 일이 없었으면 할 따름이다. 또한, 서로를 위하는 시대가 도래하길 바란다.
지금의 시대에 우리는 존중을 잃었다. 작금을 돌아보면, 중세의 마녀사냥과 다를 게 무언가 싶다. 싸우는 이들의 의도를 모르겠다. 명분도 없이, 그저 미움으로만 적대시하는 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서로가 상대의 말이 틀렸다고 한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이성을 버리고 본능에 의존한 무력을 가져온다. 이것이 진정 현대인의 모습일까. 저들이 하루빨리 타협점을 찾아 화해의 길로 나아갔으면 한다. 아, 이는 숭고한 이상과 같이 고상한 것을 위함이 아니다. 그저, 이 소음에 지쳐가는 평범한 청년의 바람이다.
이것이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원인이다. 책을 살 때도, 영화를 볼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하다 못해 어떤 기업의 상품을 소비할 때마저도. 전범이나 인류의 존엄에 위해를 가하는 사상도 아닌. 그저 논란이 되는 사상이란 이유만으로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이 상황에 지쳐간다. 잘 듣던 음악의 가수가 특정 사상을 지지한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말이 나온다. 배우도, 작가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저, 맘 편히 소비하고 싶을 뿐이다. 소비하면서 주변의 싸움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애당초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나는 온전히 내 세계에서, 외부의 압력 없이 나 스스로 온전하길 바랄 뿐이다.
애당초 사상만으로 바뀌기엔, 세상은 이다지도 복잡해지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