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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 Apr 03. 2024

2. 남아있는 삶의 괴로움

떠난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의 어려움

자고 일어나면 일상으로 돌아와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럴 일은 없었다. 빈소에 걸려있는 동생의 영정사진과 피워져 있는 향이 답을 대신할 뿐이었다. 동생은 왜 이렇게 허무하게 떠나버린 걸까 생각했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동생과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단 생각에 또다시 서글퍼졌다. 절망감에 빠져 우울해하고 있을 때. 응급실에 있던 엄마가 상태가 좋아졌는지 빈소로 내려왔다


그리고 내게 동생 얼굴을 봤냐고 물었다. 아직 못 봤는데... 내 말을 듣자 엄마는 나를 안치실로 데려갔다. 안치실 내부는 외투를 입었음에도 한기가 느껴질 만큼 추웠고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그 위에는 천으로 덮어놓은 동생이 누워있었다. 얼굴 위에 천을 걷어내고 동생의 얼굴을 보았다. 어떤 미동도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동생의 얼굴에서 동생이 죽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난 어떤 말도, 어떤 행동도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슬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 전부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생을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다신 동생을 만날 수 없다는 슬픔에 가슴이 조이는 듯이 아프고 괴로웠다. 


그렇게 안치실에서 울고 있으니 밖에서 소리를 듣고 친척분들이 와서 엄마와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나는 빈소에 돌아와 앉았고 그 자리에서 계속해서 울었다. 이 현실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관할 시간이 되었고 가족들과 동생의 친구들과 함께 안치실로 다시 이동했다.


안치실 안으로 모든 사람들이 들어오자, 장례지도사가 고인이 된 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라고 했다. 엄마는 동생의 얼굴을 보며 보고 싶어서 어떻게 하냐며 우셨다. 그리고 장례지도사가 나에게도 전할 말이 있으면 전하라고 했다. 난 어떤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입으로 소리 내어 내 마음을 꺼내면 제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말 못 하겠다는 의사를 전하고 그저 동생의 손을 잡기만 했다. 그리고 친척, 동생 친구들도 각자 인사를 끝내자 장례지도사는 입관을 진행했다. 관 뚜껑이 닫히고 덮개가 씌워졌다. 덮개 위에는 동생의 이름 세 글자가 적혀있었다.


다음날 되었고 화장하러 가기 위해 동생의 영정사진을 챙기고 동생의 관을 차에 실었다. 그렇게 차는 익숙한 도로를 따라 우리 가족이 사는 집으로 향했다. 늘 다니던 길인데도 낯설게 느껴졌다. 집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착잡해져만 갔다. 그렇게 차는 멈추지 않고 달려서 집 앞에서 멈췄다. 나는 영정사진을 챙겨서 스님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익숙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안치실에서 동생의 마지막 얼굴을 보았음에도 집안에서 동생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계속해서 스님을 따라 동생의 영정사진을 안고 집안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살 때는 몰랐는데 집에는 동생과 함께 했던 기억들이 많았다. 이제는 함께할 수 없는 동생을 떠올리니 슬펐다. 나는 집안을 돌면서 목놓아 울었다. 동생이 살아있을 것만 같은 공간에서 동생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괴로웠다. 그렇게 집안을 다 돌고 나서 다시 차에 올라탔다. 차는 이제 화장장으로 향했다. 한참을 울어서인지 화장장으로 가는 길에는 눈물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모든 감정이 소모된 것처럼 마음에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멍한 상태로 동생의 영정사진을 꼭 안고 창밖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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