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포트존 멀리 하기
뜸.했습니다. 한국에 다녀왔거든요. 일본은 크게 세 번의 연휴가 있어요. 연말연시, 5월 초 골든위크, 8월 중순의 오봉 야스미가 있지요. 일본에 온 지 9개월 만에 잠깐 한국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휴가 이틀을 더 붙여서 무려 12월 29일부터 1월 9일까지의 긴 휴가였어요. 아무래도 일본과 한국은 가깝기 때문에 집에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사실 일본에 살면서 힘든 점, 어려운 점은 하나도 없기는 합니다. 차도 있고 편의점도 잘 되어있고 음식도 어느 정도 입에 맞아가는 중입니다. 그런데 가끔 배고픔이 심해질 때는 아무래도 한국 음식이 머리 위를 떠다니더라고요. 그래서 한 끼 한 끼를 최선을 다 해서 맛있는 것을 먹자 다짐하고 한국에 갔습니다.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았어요. 양꼬치부터 시작해서 소곱창, 주꾸미, 미역국에 스팸 한 조각... 싸구려 피시방 음식들까지. 일정을 쓰고 번복하고 다시 쓰며 맛있는 것들을 위한 여행을 시작했어요.
첫날에는 부대찌개를 먹고 두 번째에는 양꼬치, 소곱창, 육회, 먹태. 아주 생각만 해도 군침이 솔솔 돌 것 같은 음식을 먹었죠. 그러다가 예정에 없던 음식을 먹기도 했어요. 고등어구이와 제육볶음이었죠. 타이틀에 박혀 있는 그 사진이요.
노원역 근처에 있는 이구 선생이라는 작은 식당인데 학생 때는 자주 갔어요. 노원역에 사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저 식당을 꽤 좋아했거든요. 같이 간 분에게 저는 고등어 먹을게요. 제육 드세요.라고 메뉴를 강제로 주입시키고 서로 노나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그거 아시나요? 한 동안 먹지 않은 음식이 입에 딱 담긴 순간 그 잊고 있었고 그리웠던 맛이 딱 온몸을 지나 퍼지면서 아! 이 맛이었지! 하는 그 감정을요. 그걸 느꼈어요. 그런데, 딱 거기까지더라고요. 다른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딱 거기까지예요. 먹었다는 만족감만 남기고 먹지 않는 남은 21시간은 그냥 일반적인 저로 돌아오더라고요.
언제 일본에 갔었는 지도 모르고 한 동안 이 자리에 없어졌는 지도 모르는 사람 중 하나요. 나 없이도 이 식당은 잘 돌아갔고 이 노원구는 다들 바빴고 서울은 회색 건물 아래서 영하의 온도로 사람을 짓누르고 있더라고요. 제가 있든 없든 말이죠. 그동안 컴포트존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한순간에 낯설어졌어요. 가끔 고향이 너무 많이 변해버리면 고향이라고 못 느낀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저는 불과 9개월이라는 짧은 순간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안 변해버린 고향이 참 낯설다고 느꼈거든요. 아, 제가 다니던 피시방은 없어졌어요.
그렇게 컴포트존을 잃자, 제 컴포트존이 그립기 시작했어요. 아, 일본이요. 군대에서 외부 작업을 하다가 이제 집에 가자!라고 말하면 그 끔찍한 부대로 들어가는 걸 의미했는데 이제 돌아가고 싶다 느낀 곳이 바로 일본이더라고요.
일본, 도야마, 우리 집. 남겨진 우리 집이 너무 보고 싶었어요. 즐길 건 다 즐겼고 변한 건 없다고 어떻게 이렇게 버리냐 할 수 있으시겠지만 저도 참 신기합니다. 9개월 만에 일본 집이 잠시 머무는 에어비앤비 같은 느낌이 아닌, 정말 저의 컴포트존이라고 느껴버린 것이죠.
맛있는 것 그리운 것 재밌는 것은 다 한국에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좋아했던 사람들 저를 싫어했던 사람들 싫어했던 도로 위 택시들 싫어했던 공해 싫어했던 미세먼지 좋아했던 맥도널드 좋아했던 그녀는 모두 한국에 있어요. 고등어구이와 제육볶음은 한국에 있어요.
근데 어쩌겠어요. 제가 살고 있고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곳은 일본 저희 집인데. 이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시골에서 히터와 담요에 몸을 맡기고 된장국 대신 미소로, 라면 대신 라멘을 후르릅하고 있는 것이 저의 컴포트존 인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