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했던 일상에 꾸덕하고 맛난 스프레드를
아침 식사들은 하고 계시는지? 필자는 아무리 간단하게라도 아침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 편이다. 삶은 달걀이나 시리얼 한 그릇으로 대강 때울 때도 있고, 눈이 조금 일찍 떠지면 토스트라도 한 조각해 먹는다. 만약 기적적으로 신새벽에 눈이 떠지면? 6시 반이면 문을 여는 동네 쬐그만 베이커리까지 걸어가서 베이글을 산다.
새벽부터 눈이 번쩍 뜨이는 날이 잦은 건 아니지만, 가끔씩의 이런 날은 운 좋게 선물을 받은 것 같다. 아침 식사를 베이글로 한 날은 점심까지 버티기가 조금 더 수월해지거든. 든든하게 탄수화물로 배를 채웠으니, 평소 같았으면 오전 업무 도중 금세 꼬르륵거렸을 텐데 그렇지가 않다. 착각이겠지만 괜히 머리도 더 잘 돌아가는 것 같다. 이건 좀 확대 해석인가?
베이글로 아침 식사를 하면서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부산스럽게 출근 준비를 하는 바람에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과 커피 한 잔을 음미할 여유가 없다는 거다. 그저 입에 쑤셔 넣고, 커피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기면서 부랴부랴 신발을 신고 나가기 바쁘다. 번번이 ‘쉬는 날 일찍 일어나서 베이글과 함께 여유로운 커피타임을 즐겨야지’ 생각은 하지만 정작 휴일이면 해가 중천에 떴을 때야 일어나게 된다.
모처럼 평일 중 쉬는 날이 생겨 조촐한 베이글 모닝을 맞이하기로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다만 쉬는 날인 만큼 새벽같이 일어날 필요까진 없고, 매번 먹는 동네 베이커리의 베이글을 고집할 필요도 없을 터다. 이른 아침 베이글과 함께 하는 여유를 위해, 베이글 맛집으로 이름난 ‘Four B 베이직’으로 향했다. 붐비는 합정역 인근에 위치했으니 나만 빼고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좋을 듯했다.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면 약 좀 오르겠지?
Four B 베이직은 양화대교를 건너 합정동 사거리에서 빠져나와 야트막한 주택가 근처로 들어가야 찾을 수 있다. 널-찍한 양화로와는 거리가 있는 만큼 출근하는 자동차들이 빵빵대는 소리 대신 인근에 초등학교에서 아득하게 참새처럼 짹짹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이곳은 오전 10시 30분은 되어야 영업을 시작하니, 때 이르게 도착한 분들이라면 꽤나 기다리셔야 할 수도 있다. 출근 시간 즈음에 온 필자처럼.
그리 높지만은 않은 건물은 깔끔한 흰색과 시원스러운 통유리로 되어있고, 그 안에서 직원분들이 베이글 반죽을 빚는 과정을 구경할 수도 있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면 무안해하실 수 있으니 적당히 관람하고 얼른 들어가 보시길. 내부도 구경할 건 많으니까. 가령 1층 중앙은 마당을 그대로 바닥재로 활용한 듯 정원석과 자갈이 깔려있어 사부작 거닐기 재밌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높다란 스툴과 테이블이 놓여있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하는 사람을 구경할 수도 있다.
단독 주택을 개조/증축했을 게 틀림없어 보이는 Four B 베이직의 1층은 야외 공간도 잘 마련돼 있다. 누군가의 집 앞마당이었을 느낌을 그대로 살렸고, 앉아서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을 구경할 수 있도록 테이블이 마련돼 있다. 뒷마당이었을 공간은 정겨운 벽돌 담벼락에 둘러싸여 있어 한결 조용하고 아늑한 시간을 보내기 좋다.
1층의 픽업 데스크는 독특하게 양면을 하고 있다. 한쪽 면에서는 주문을 접수하고 반대쪽 면에서는 커피와 베이글을 준비하는 식으로 운영이 되는 듯 보였다. 주문을 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베이글과 스프레드, 몇 가지 굿즈를 구경할 수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베이글과 스프레드를 선택해 들고 갈 수도 있고 ‘오늘의 베이글’ 메뉴를 고를 수도 있다. 이날의 베이글은 오렌지&레몬 필, 고구마 베이글. 플레인 스프레드와 베이글, 그리고 따끈한 아메리카노(+얼음 몇 조각을 넣고)를 받아 들고 계단을 올랐다.
Four B 베이직의 2층은 두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한쪽은 픽업 데스크에서 뒤를 돌아 계단으로 올라오면 보이는 곳이다. 만약 카페에 갈 때마다 최대한 구석진 곳을 찾는 분이라면 이쪽 구획에 테이블을 잡는 것을 추천한다. 창문도 없이 흰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은 낮은 의자에 파묻혀 아늑함을 즐기기에 적합하다.
그리고 조금 더 개방감 있는 공간을 찾는다면, 1층 픽업 데스크 반대편에 숨어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된다. 단독주택의 2층에 해당하는 이 공간에는 또 하나의 픽업 데스크와 바 테이블이 놓여있고, 야트막한 의자들이 배치돼 있다. 햇빛을 쬐어야 했던 필자는 창문이 있는 이쪽에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계단에서부터 오렌지&레몬 필 베이글의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으니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구.
날이 많이 따뜻하고 하늘이 쾌청하다면 테이블을 잡고 2층 두 구획 사이의 테라스 공간에 머물러 보는 것도 좋겠다. 어릴 적 정겨운 옛 골목집을 떠올리게 하는 난간에 기대어 숨을 돌려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 이런 모양의 공간에는 으레 장독대나 커다랗고 촌스런 화분이 있게 마련인데- 하면서 쿡쿡 웃을 수 있다. 참고로 2층과 3층에는 사무실 공간이 있으니 이곳 직원 분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자. 일할 때 시끄럽게 떠들면 짜증 나지 않겠나.
그동안 베이글을 참 많이도 먹어왔지만, 맛으로 먹진 않았다. 베이글이 뭐… 되나? 뉴욕에서 맛본 베이글이나, 코스트코에서 묶음으로 파는 베이글이나 필자에겐 큰 차이가 없었다. 뱃속을 든든하게 채워주기에 자주 찾았을 뿐, 맛에 있어서는 그저 얼마나 덜 퍽퍽하냐 정도의 차이랄까? 워낙 혀가 둔탱이인 탓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필자는 베이글을 맛 때문에 먹었던 기억이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Four B 베이직의 베이글은… 뭐랄까. 요망하다고 해야 할까? 안쪽은 쫄깃했고, 겉 부분은 딱 적당하게 질깃했다. 지나치게 폭신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막 만든 듯 뻑뻑하거나 딱딱하지도 않았다. 중간중간 씹히는 시트론 류의 청크는 씹을 때마다 입 안의 담백한 베이글과 잘 어우러졌다. 블루베리나 시나몬 같은 빤한 재료 말고 오렌지&레몬의 향이 베이글과 어울릴 거라곤 솔직히 생각지 못했다.
플레인 스프레드야 뭐 말할 것도 없었고. 입안 가득 넣고 오물거리다 적당히 식은 커피를 호로록 마시고 나니, 그동안 찾았던 ‘만족스러운 베이글 모닝’이 이거였구나 싶어졌다. 그렇게 한갓지게 베이글과 커피를 즐겼다. 최대한 천천히. 창으로 드는 햇빛도 딱 좋고, 공간이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아서 조용하게 쉬어가기에 좋았다.
다음번엔 간단히 일할 거리를 들고 다시 이 시간에 와 보는 것도 좋겠지 싶었다. 너무 과한 거 말고! 비교적 급하지도 않고,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거리를 하면서 질깃질깃 베이글을 씹는 거다. 팀장과 거하게 한 판 붙었던 날을 떠올리며 잘근잘근. 치덕치덕 스프레드를 바르고, 한입에 와앙 넣었다가 손으로 뜯어도 보고, 그러다가 적당한 덩어리로 뭉쳐 꿀꺽. 업무에 대한 고민도 이렇게 쉽게 꿀꺼덕 넘어가면 얼마나 좋을까. ‘쉬는 날에도 일 생각이나 하는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 했던 내가 어쩌다 이 꼴이 됐을꼬.
베이글은 참 무난한 빵이다. 재료도 밀가루 반죽에 소금과 이스트 정도가 전부다. 특별히 재료를 더 넣거나 한 게 아닌 이상 맛도 담백 그 자체다. 베이글이 들으면 섭섭할 수 있겠지만, 맛을 좀 매정하게 표현하자면 ‘밍밍’하다는 게 적합할 터다. 전형적이고 기본적이랄까.
하지만 그런 베이글은 반죽에 무엇을 추가하느냐, 단면에 무엇을 바르느냐에 따라 또 달라진다. 특유의 담백한 듯 밍밍한 맛은 스프레드의 맛을 더욱 살려주고, 단단한 듯 쫄깃한 식감은 적당히 팍팍해 어느 음료와도 잘 어우러진다. 기본이 워낙 좋으니 어떤 맛을 더해도 부딪히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니겠나.
다들 참 바쁘다. 이렇게 가끔가다 나 홀로 한가한 타이밍이 오면 유독 주위 사람들도 바쁘게 살고 있다는 게 눈에 들어온다. 워낙 바쁘다 보니 날카로워지기도 쉽고, 또 많은 걸 잊기도 한다. 가령 엘리베이터 문을 잡아주는 사람에게 눈짓으로 인사를 보낸다거나, 하루에 몇 잔 이상의 물을 마신다거나, 커피를 챙겨 나서면서 점원에게 “감사합니다” 한 마디를 한다거나.
어쨌든 우리는 바빠서, 피곤해서, 귀찮아서 자꾸만 기본적인 것들을 잊거나 회피하며 산다. 그게 뭐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기본을 돌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당장 필자도 그러진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착실히 기본을 지키자거나 그러자곤 솔직히 못 하겠다. 그래도 가끔은 우리가 무엇을 잊은 채 쳇바퀴를 팽글팽글 굴리고 있는지 한 번씩 떠올려봤으면 좋겠다.
구구절절 뭔 얘기냐고? 조금만 기본을 지켜보면 어떨까 하는 거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에게 방긋 웃어주고,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고, 차선에 끼어든 다음 비상등으로 감사를 표하고, 늘 바쁘고 지쳐있는 스스로를 위해 종종 아침 식사를 대접하고. 그 정도의 기본만 지켜도 무료하고 밍밍했던 일상에 꾸덕하고 맛난 스프레드가, 고소한 연어가, 새콤한 오렌지&레몬 필링이 얹어질지 모른다.
* 문의: 02-566-3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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