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로 떠나기 전날, 그리고 그 첫날
2024년 6월 22일.
아일랜드로 떠나기 하루 전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난 지금 한국에서 그 첫날을 회상하고 있다.
원래 나의 아일랜드의 생활을 어떤 콘텐츠에 담고자 했었다.
그러나 막상 아일랜드에서 살아보니 내가 계획하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갔다.
글쓰기 역시 그랬다.
먹고사는데 바빠서 글을 쓰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그렇게 하지 못했던 내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아일랜드의 1년은 어쨌든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었고 내 인생에서 하나의 큰 선택이었다.
또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의 첫걸음이었다.
그런 의미 있던 경험을 그냥 사진으로만 남기기에는 모두 잊혀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첫날을 떠올려보기로 했다.
출국 전날 밤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해외에서 살겠다는 결심 자체가 나에게조차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심지어 영어도 서툴렀고, 긴 비행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선택한 길이었다.
나는 어릴 적, 장래희망에 외교관 같은 직업을 적곤 했다.
잘 알지는 못했고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영어로 비즈니스 하는 상상을 하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래서였을까. 언젠가는 꼭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이 마음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일랜드행을 결심했을 때, 나는 오랜 시간 방황하고 있었다.
나의 대학 시절은 목표도 없었고, 졸업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그만큼 학업이 버거웠고 만났던 친구들은 무언가 진실된 교감을 나누지 못했다.
특히 영어 강의를 들을 때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전날 밤부터 불안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괴로웠다.
영어를 너무 못해서 교수님이 내주는 과제도 이해하지 못했고
강의 중에 내 이름이 불릴까 항상 조마조마했다.
설상가상, 동기들은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이해력도 두 배는 빨라 보여서 나를 더 움츠러들게 했다.
그렇게 나는 내 미래에 대한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자꾸 피하고 싶어 하고
방황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전역 후, 이렇게 살다가는 큰일 나겠다는 위기감이 몰려왔다.
정말 인생은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만들어가야 되는 무서운 현실임을 깨달았다.
학교라는 소속감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학교를 벗어나게 되니 정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진 것이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그런 사람을 만드는 것 조차도 내 몫이었다.
내 세상은 무섭게도 고요했다.
복학 후, 학업에 집중했다.
일단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잘하는 것, 동시에 나의 강점을 다듬고 키워보자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졸업 전까지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었던 높은 학점을 유지했다.
막상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어렵지 않게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또 그토록 무서워했던 영어 강의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1년간 꾸준히 화상영어를 하며 자신감을 키운 덕분이었다.
이때 깨달았던 것 같다.
하면 된다는걸. 마음가짐의 차이였다.
한편으로는 특성화고 출신이라는 배경이 내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학업에 집중하면서 인터넷 사업도 해보고, 내가 잘하는 취미를 살려서 헬스 트레이너로 일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진 않았다.
인터넷 사업은 꽤 순조로웠지만 너무 재미없고 고독사 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일단 돈은 벌긴 해야 하니까 트레이너를 해볼까 했다.
자격증 필기시험도 붙고 면접도 많이 보러 다녔다.
많은 면접 중 어떤 헬스장은 이랬다.
먼저 나에 대한 전문성을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시간이 되는지가 중요했다. 또 여기 트레이너 중 한 명은 보험회사 다니다가 왔고 운동은 하나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퍼스널 트레이너로서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냥 하면 된다고 한다.
자기도 일한 지 두 달 밖에 안 됐다고.
이후에 어떤 회원 상담하시는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분에게 2차 면접을 봤다.
그러자 내 미래에 대해 걱정해대며 진로 상담 같은 걸 했다. 우리 엄마도 그렇게까진 안 하는데 말이다.
또 대다수의 헬스장들은 너무 불량해 보이는 트레이너들이 많았다.
이게 이쪽 현실이었고 지금 나의 현실이기도 했다.
그런 현실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이런 상황들이 참 답답하고 막막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쩌다 이렇게 흘러오게 되었을까?'
지나온 20대를 떠올리며 후회와 미련들이 스쳐 지나갔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 10대는 꽤 화려하고 완벽했다.
그 누구도 내가 이렇게 방황할지는 몰랐을 것이다.
이런 의미 없는 후회와 감정들은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난 또 회사 취업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살아야 했다.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플랜들을 실행하고 결과물을 보기까지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했다.
나 혼자 스스로 의지를 내서 독하게 무언가를 이루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계속 나아가야 했다.
나는 멈춰 있을 지라도 세상은 계속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경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내 세상 자체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이 정말 해외로 떠날 타이밍이라고 느꼈다.
그렇게 신청했던 아일랜드 워홀 비자가 덜컥 뽑혔다.
준비하던 트레이너 실기 공부를 접고 바로 영어 공부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내 어릴 적에 품었던 작은 꿈이 정말 현실이 되었다.
또 아일랜드행은 곧 내 길을 가겠다는 돌이킬 수 없는 결심이었다.
그렇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일랜드라는 나라에 도착했다.
'잘할 수 있을까?' 설레면서도 두려웠다.
동시에 아일랜드의 신선한 공기, 자유로운 사람들, 시원한 날씨 속에서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떠올렸다.
한국에서 미리 연락했던 아일랜드 가정에서 일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기로 했었다.
그래서 공항에 멀리 떨어진 더블린 외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그런데 주머니가 뭔가 허전했다.
여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