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운 이야기 - 브레튼우즈
역사적으로 초강대국이었던 나라는 모두 무에서 유를 이루고 그것을 대중화하여 새로운 생태계를 정립했다. 예를 들어 로마제국은 1년 365일의 개념을 만들었다. 또,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유일 신앙론을 전 세계에 퍼트렸다.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나 로마인이 될 수 있는 로마 시민권이란 개념도 만들었다.
앨런 그린스펀의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 (Capitalism in America)'는 미국이란 나라가 개척 정신을 가지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부를 일궈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역사를 설명하는 책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접하지만 없으면 불편한 게 이만저만 아닌 많은 부분이 미국에서 만들어지거나 대중화되었다. 철강, 전화, 상업용 석유, 전기, 자동차, 비행기, 냉장고, 토스트기, 에어컨, 할리우드, 컴퓨터, 핸드폰, 인터넷 등 수없이 많다. 새 땅을 개척한 DNA를 지니는 미국인들에게 혁신이란 무에서 유를 창출하여 상품을 발명하고 대중화하여 신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아마존, 애플, 구글, 테슬라와 알리바바, 화웨이, 바이두, 비야디는 완전히 다른 혁신성을 지니고 있다. 전자는 파괴적 혁신을 통해 신시장을 새로 만들었고, 후자는 이미 만들어진 시장에서 기술적 혁신을 했다.
개척정신으로 무장한 미국이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 있었던 또 한 가지 요소는 바로 미국 달러가 기축 달러의 기능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에 따르면 미국은 1913년까지 중앙은행도 없었던 나라이다. 또, 세계대전 전에는 그 어떤 나라도 미국 달러를 1% 이상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유럽은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화폐의 양을 늘려 경제를 지탱해야 했다. 당시 세계는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영국, 프랑스 등을 지원하면서 대부분의 금은 미국으로 흘러갔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경제적으로 황폐해진 반면 미국으로 자본이 몰려들면서 고속도로, 철로와 운하 등 인프라가 깔리고 경제 호황기를 맞게 되었다.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던 유럽에서는 미국의 상품을 구입할 여력도 빚을 갚을 능력도 되지 않았고, 이와 맞물려 잘못된 국내 통화정책으로 미국의 경제 호황기는 얼마 가지 않아 대공황으로 이어지고 만다. 이렇게 유럽과 미국은 금본위제를 지속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렇게 세계경제의 재건을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기 1년 전인 1944년 미국 뉴햄프셔 주 브레튼우즈에 44개국 대표단이 모여 당시 전 세계 금의 80%를 보유하고 있던 미국의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하는 금본위제인 브레튼우즈 체제가 만들어졌다. 또 다른 금본위제이지만 이번에는 오직 미국 달러만이 금에 고정되는 체제로 다른 통화는 미국 달러에 연동되었다. 이 체제를 시작으로 미국은 로마제국, 몽골제국, 대영제국을 이은 세계 패권국이 되었다.
우리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설립된 장소가 뉴햄프셔 주에 있는 옴니 마운트 워싱턴 리조트 (Omni Mount Washington Resort) (구 마운트 워싱턴 호텔)를 방문했다.
1944년 뉴햄프셔 주 브레튼우즈에서 개최된 유엔 통화금융 콘퍼런스 (UN Monetary and Financial Conference)에서 44개국이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황폐해진 세계경제 재건을 논의했다. 환율을 안정화하고 경쟁적으로 자국 환율을 절하하는 것을 막기 위한 새로운 세계 금융시스템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당시 영국 재무부 고문 존 메이너드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와 미국 재무부 수석 경제학자 해리 넥스터 화이트 (Harry Dexter White) 및 44개국 파견단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교환한 끝에, 국제통화기금 (IMF, International Monerary Fund)과 월드뱅크 (World Bank)를 설립하기로 했다. 또한, 금 1온스 당 35 미국 달러로 고정하고 이 외 통화는 달러에 1% 범위로 고정시키는 고정환율제도를 채택하게 된다.
1902년에 처음 개장한 옴니 마운트 워싱턴 리조트는 현재 미국 역사 지정호텔 (Historic Hotel of America)이자 국가사적지 (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어 있는 호텔로 1900년 초 미국이 빠른 속도로 부를 이룩할 당시 보스턴, 뉴욕의 부자들이 여름 내내 머물렀던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1944년 브레튼우즈 컨퍼런스를 개최할 장소를 찾고 있었던 미국 정부는 당시 마운트 워싱턴 호텔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호텔 이외에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회의장소로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이때 호텔은 회의 준비를 위해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재탄생되었다.
호텔 1층에는 당시 참가국이 IMF 설립협정에 서명했던 방이 골드룸 (Gold Room)이 보존되어 있다. 방 안에 44개국 대표의 이름이 새겨있었고 케인스 사진, 미국과 당시 소련 대표단이 함께 찍은 사진 등도 볼 수 있었다. 다만 44개국 국기 진열장의 국기 중 중국, 인도, 러시아 국기가 현재의 국기로 전시되어 있어 약간 아쉬웠다.
1944년 당시 중국은 국민당이 세운 중화민국이었으므로 중화민국 국기가 진열되어 있는 것이 맞지만 진열장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또, 1944년에 인도는 아직 대영제국으로부터 독립하지 않았으므로 대영제국 하의 인도 국기가 진열되어 있는 것이 맞지만, 현재 인도 국기로 진열되어 있었다. 소련 당시 국기가 아닌 현재 러시아 국기도 진열되어 있다. 매우 정치적이고 민감한 부분이라 그랬겠지만,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진열되어 있어 안타까움이 남았다. 하긴 만약 대한민국이 참가국이었다면 현재 국기가 아닌 일본제국의 국기만 보는 것이 기분 나빴을 것이다.
이 호텔은 미국의 경제 호황기의 모습도 그대로 보존해놓았다. 1902년 당시 석탄, 철도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거머쥔 조셉 스티크니 (Joseph Stickney)가 호텔을 세웠다. 뉴잉글랜드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로, 사업가 정신이 컸던 스티크니는 부유한 관광객을 불러 모으기 위해 호텔 장식 하나하나 최고의 제품만 설치하고 사용했다고 한다.
조셉 스티크니의 부인인 캐롤린 스티크니 (Carolyn Stickney)는 매일매일 호텔 투숙객 명단을 보고 그중 유명인이 있으면 VIP 식사를 대접했다고 한다. IMF 협정 서명을 했던 방은 원래 스티크니 부인이 VIP에게 식사를 대접했던 곳이다,
또, 호텔 314호는 공주방 (Princess Room)이라고 불렸는데, 호텔방 중 가장 경치가 아름답게 보이는 방이었고 스티크니 부인이 사용했다고 한다. 또, 발코니에서는 호텔 입구를 볼 수 있어 여성 투숙객이 어떤 드레스를 입었는지 미리 보고 더 화려하게 입은 여성이 있으면 본인의 옷을 갈아입었다고 한다.
호텔은 골프 코스, 테니스 코스 그리고 스키장까지 겸비하고 있다. 여름에는 골프코스와 테니스 코트에서 골프와 테니스를 즐길 수 있고 겨울에는 스키장 이외에도 온수 야외수영장에서 야외 스파를 즐길 수도 있다. 실내수영장은 미국 역사상 최초의 실내수영장 중 하나라고 하며, 아직까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또,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호텔 주변에 하이킹 트레일과 크로스컨트리 코스도 다양하게 완비되어 있기 때문에 골프, 스키 외에도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다.
전통적인 뉴잉글랜드 문화를 보고 싶다면 이곳이 바로 적격이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곳이다. 1900년 초기에 뉴잉글랜드 부자들은 가족 단위로 이곳에서 여름 내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는 코로나 때문에 미국인 이외의 관광객이 거의 없어서인지는 몰라도 백인 이외의 방문객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가족 단위로 스키를 타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1900년이랑 비슷하게 가정도우미와 함께 장기 투숙하는 가족들도 많이 보였다.
이 외에도 미국에서 금주령이 내려진 1920-1933년 시기에 몰래 술을 마셨던 동굴도 남아 있다. 원래는 스쿼시 코트였는데, 금주령이 내리기 바로 직전에 호텔에서 바꿨다고 한다. 호텔 지하에 위치했고 입구에서 좁은 계단을 통해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금주령 시기에도 몰래 영업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안으로 들어가면 한 구석에 작은 방이 있는데 이곳에 위스키를 숨겨놓고 팔았다. 만약을 대비에 위스키를 찻잔에 부어 팔았다. 이곳은 금주령 시기 때에는 미국 동부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이었다고 하며 록펠러나 벤더빌트 등 유명한 부호가 자주 방문했다.
또, 이 호텔은 단독 우편번호를 가지고 있다. 호텔 내에 우체국도 있다.
1800-1900년 100년 간 미국은 오직 전쟁만을 치러왔다. 이후 미국 땅이 온전히 미국인의 땅이 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모든 사람들이 기회를 찾아 광활한 땅을 개척하기 시작하면서 국내 개발에 힘썼다. 그 후 미국은 옴니 마운트 워싱턴 리조트가 세워졌던 1900년 전후부터 지금까지 광란의 20년대 (roaring 20's), 대공황, 브레튼우즈 체제, 한국전쟁과 베트남전, 냉전 등을 거치면서 세계의 질서를 개편했다.
이 중 이 호텔에서 태어난 브레튼우즈 체제로 미국이 명실공히 패권국의 위치를 확보했다. 그러나 브레튼우즈 체제는 얼마 가지 않아 붕괴되고 만다. 1960년대에 들어 독일이나 일본과 같은 제조강국이 미국 상품을 위협하게 되고 베트남 전쟁으로 경제가 어렵게 되자 미국은 달러 발행을 늘렸다.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닉슨은 금도 시장에 함께 풀어 고정환율을 지키려고 했지만, 이미 금이 미국에서 너무 많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이렇게 미국 달러에 대한 신용이 떨어지게 되고 미국도 방어할 금이 부족하게 되자 닉슨은 1971년 브레튼우즈 체제를 독단적으로 포기하고 말았다. 브레튼우즈 체제는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닉슨 쇼크의 여파로 찾아온 석유파동을 계기로 석유거래는 오직 미국 달러로만 거래한다는 OPEC 이 창설됨으로써 미국 달러는 현재까지 세계 기축통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미-중 패권전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이때 이곳을 방문하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연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어 미래에 패권국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옴니 마운트 워싱턴 리조트를 구경하면서 중국이 패권국에 오르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관찰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 기존 시스템을 파괴할 새로운 시스템을 창조해 새 길을 개척할 때이다. 둘째, 현재 패권국인 미국을 포함한 주요국이 그 새로운 시스템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용하고자 할 때이다. 즉, 기존 시스템을 바탕으로 그 안에서의 구조와 힘의 균형을 바꾸고자 하는 전략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즉, 중국이 WTO나 UN에서 세계화를 지속할 의무가 있는 국가로써의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기존 시스템 안에서 힘의 균형을 바꾸고자 하는 전략이 될 것이다. 또,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과 중국 특색 사회주의 체제는 새롭게 창조하는 시스템일 것이다. 향후 주요국들이 일대일로나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새로운 세계로 전환이 될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참고자료]
https://www.brettonwoods.com/~/media/BrettonWoods/pdfs/OMWR%20WalkingTour%20Guide.pdf
https://newengland.com/today/travel/new-hampshire/mount-washington-hotel-2/
https://www.thedistractedwanderer.com/2013/01/the-omni-mount-washington-resort.html
https://www.onlyinyourstate.com/new-hampshire/nh-indoor-poo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