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이야기 - 2023년 4월 30일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온 기사가 연일 올라오고 있습니다. 스페인의 4월 기온이 40도에 육박하고 있다고 하네요.
2023년 4월 15일, 시카고 청소년 장악 사건 (Teen Takeover in Chicago)
올해에는 시카고의 4월 날씨도 너무나 이상합니다. 4월 초 시카고 날씨는 아직 영하권에 머물렀고 간간히 짙눈깨비도 내리고 있었습니다. 기상청에서는 역사적으로 드물게 4월 기온이 낮다 합니다. 이렇게 아직 겨울 날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엄마가 딸이 보고 싶었는지 갑자기 시카고행 비행기표를 샀다고 합니다. 바람 잘날 없는 시카고의 날씨 때문에 조금만 늦게 일정을 잡았다면 보트투어도 하고 시카고 강변에서 맥주도 한잔 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아쉬워하며 엄마를 기다렸죠.
그런데 엄마가 도착한 4월 11일부터 하루아침에 낮 기온이 한여름 기온으로 치솟는 겁니다. 공식 기록은 최고 화씨 79도 (섭씨 26도)라고 되어 있지만, 도시 전광판에 화씨 85도 (섭씨 29.5도)라고 표기된 걸 보았으니 하루아침에 약 25도가량 기온이 올라간 겁니다.
엄마가 시카고에 머무는 동안 남편이 장모님 오셨다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 대접을 하더군요. 이 날이 4월 15일 토요일이었습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맛있는 요리를 먹었답니다. 그리고 자정에 가까워 차를 몰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카고 중심가 한복판에서 남미인 (라티노) 한 명이 열댓 명 정도 되는 십 대 무리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고 있지 뭡니까. 그 사람은 머리를 몇 대 맞고는 바로 기절을 하더군요. 갱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경찰이 출동하고 십 대 무리는 뿔뿔이 흩어져 도망을 갔습니다. 자동차도 몇 대 돌아다니지 않는 거리에서 무리가 우리에게 해코지할까 봐 두려워 우리는 앞만 보고 빠르게 속도를 내어 큰길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런데 큰길은 더 아수라장입니다. 수백 명은 족히 되어 보이는 경찰이 밀레니엄 파크 주변 길을 모두 막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다른 도로로 돌아 집으로 돌아오면서 구글링 해보았습니다. 알아보니 청소년들 사이에서 SNS을 통해 금요일 저녁 6시에 밀레니엄 파크에 집결하자는 메시지가 떠돌았다고 합니다.
'#teentakeoverchicago'라는 태그였는데, 청소년들 사이에서 요즘 teen takeover (청소년 장악)이 유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특히 그날은 주말이기도 했고 기온이 갑자기 오르면서 따뜻해진 날씨에 SNS 메시지를 본 수백 명의 십 대 청소년들이 밀레니엄 파크에 한꺼번에 모인 것 같습니다.
처음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친구들끼리 놀기 위해 왔을 겁니다. 그런데 몇몇 흥분한 청소년들을 시작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폭행하고 자동차를 부수고 버스 위에 올라타는 등 다운타운을 완전히 점령해 버렸습니다.
이상기온으로 4월 중순에 한여름 날씨를 즐기려 몰려든 청소년 때문에 시카고에 존재하는 여러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농축되어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함께 생각해 볼까요
이상기온과 같은 평범치 않은 자연현상이 인류가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의견,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번 시카고 청소년 장악 사건을 주도한 수백 명의 청소년들은 거의 대부분 흑인 청소년이었습니다. 다운타운에 위치하고 있는 밀레니엄 파크와 그 주변 미시간 애브뉴에는 낮시간동안에는 직장인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입니다. 그런데 해가 지면 젊은 흑인들이 그곳을 장악합니다. 참 이상한 현상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는데요.
시카고에는 불행하게도 인종차별의 흔적이 여전히 너무 많이 남아있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시행되었던 거주 분리 정책으로 인해 그 뿌리가 지금까지 제거되지 않고 인종별로 거주지가 완전히 분리되어 버렸습니다. (이 문제는 언젠가 자세히 다뤄보려고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시카고는 시카고강 주변 룹 (loop)이라고 불리는 다운타운을 제외하고 북쪽에는 백인이 남쪽에는 흑인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인과 라티노 유입으로 인해 흑백 경계가 약간 모호해지는 구역이 나타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종에 따라 거주구역은 극명히 분리되어 있고, 흑인 거주구역인 남쪽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현 시카고 시장인 로리 라이트풋 (Lori Lightfoot)은 흑인 여성입니다. 라이트풋 시장은 현직에 있으면서 백인과 흑인의 거주분리를 줄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노력은 많은 시간을 요구하고 흑백 양쪽의 저항도 큽니다. 결국 라이트풋 시장은 1983년 이후 처음으로 재선에 낙마하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거주지역 분리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교육격차, 임금격차 등의 다른 문제들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실제로 시카고에서 백인 소득의 중간값이 흑인 소득의 중값값에 비해 2배가 넘고, 교육격차도 상당히 존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2000년 들어 라티노와 아시아인들의 시카고 유입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특히 라티노 인구의 유입으로 흑인의 일자리가 심각하게 위협받습니다. 흑인이 아직 중산층으로 위치 정립을 하기도 전에 라티노가 유입되어 일자리를 뺐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현상이 흘러가다 보니, 흑인은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불만에 가득 찬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라티노나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과 비교하면, 흑인에 대한 차별은 완전히 다른 양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고 불만이 가득 차다 보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 모이기 일쑤입니다. 요즘에는 비슷한 청소년들이 SNS을 통해 훨씬 빠르게 의견을 교환하고 행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 이 경우에는 흑인 청소년들이 - SNS을 통해 소위 '액션'을 취할 수가 있는 거죠. SNS으로 인한 집단화 때문에 오히려 시카고의 원천적인 문제를 더 부추기는 역효과가 나고 있는 것입니다.
시카고 경찰은 이번 시카고 청소년 장악 사건의 주범과 관광객을 폭행하고 기물을 파손한 사람들, 그리고 총을 쏴 사람들을 다치게 한 사람들을 색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번 사건이 다시 한번 흑인 차별로 이어지는 것에 대해 매우 경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번 사건으로 신체적 피해를 입은 다른 흑인들이 계속 방송매체에 나와 이 문제는 특정 인종이 행한 문제가 아님을 강조하거나, 이렇게 창피한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둔 부모님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나는 동안 엄마는 시카고에 머문 약 2주간 한여름 날씨와 한겨울 날씨를 모두 경험하고 간다며 석 달은 여행한 것 같다고 하십니다. 청소년 장악 사건이 일어난 그다음 날부터 기온이 다시 뚝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기온이 최대 화씨 37도 (섭씨 2.7도)까지 떨어지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엄마가 떠나는 날 우리는 공항에서 울었습니다. 또 언제 가족들이 다 함께 만나게 될지.. 타향살이를 하며 가장 고통스러운 점입니다. 이런 우리의 감정을 하늘도 느꼈는지 엄마가 탄 비행기가 떠난 다음날부터 시카고에는 토네이도 경보가 울렸습니다.
아무튼 보다 보다 이런 날씨는 생전 처음 봅니다.
2023년 4월 30일 <3
[참고자료]
https://world-weather.info/forecast/usa/chicago/april-2023/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157947&plink=ORI&cooper=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