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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꿈샘 Apr 04. 2024

9. 오늘 명퇴 관련 강연은 망했습니다.

요즘 저에게 들어오는 제안들     


"선생님, 명퇴 이야기 좀 해 주세요."

"아, ? !"


심지어 오늘은 <명퇴 후 한 달>이라는 주제로 줌 발표까지 해야 합니다. 모두 현직 교사라서 더 떨리지만 그래도 이름 정도는 알고 있는 분들이라 다행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망설여집니다. 어디까지 오픈하고 어디까지 닫아야 하는지, 그 가늠할 길이 없기 때문에. 명퇴한 속사정과 지금의 고단한 현실을 말하기엔 그 모임과 함께 한 시간의 깊이와 넓이를 수학 공식처럼 재서 똑 부러지게 말할 근거도 없거니와 개인적인 상황과 일에 얼마나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할지 불투명하니까요. 누군가 자! 지금부터 인간관계 자기 오픈 공식을 이렇습니다라고 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모임에 참여하는 선생님들께 물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원하세요?"


저의 맞춤형 강의 제안에 다들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발표 자료를 준비하면서 이거 어쩌지? 혼자 속앓이를 했어요. 자칫하면 명퇴 후 보고서로 흐를까 봐, 또 명퇴 후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라는 표정과 다른 가짜 발언이 속출될까 봐. 진실과 가면 속을 오락가락하다가 늘 진실이 이긴다는 명제를 기억하며 최대한 담백하게 말하기로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왜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궁금해할까? 입장을 뒤집어 보았습니다.

저의 속사정이 아닌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현직 선생님의 속사정 말입니다. 마치 제가 안 겪어 본 사람처럼 글을 쓰는 건 같지만 사실 저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냥 외면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더욱 이 강연을 준비하면서 힘이 빠졌습니다. 명퇴 후 한 달이라는 주제로 내 삶을 오픈하는 강의에 전전긍긍하는 건 지금 내 삶도 행복하지 않아서...


월급이 나오지 않은 삶, 연금이 나오려면 강산이 한 번 더 변해야 하는 기다림이 있는 삶, 통장이 텅텅 비워가는 걸 바라보는 삶 대신 시간의 주인이 되는 삶,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삶이 있긴 합니다. 손바닥 뒤집듯 나의 마음에 따라 행, 불행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을 터인데. 왜 저는 자꾸만 미련해지는 걸까요? 아직 내겐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요?     



선생님, 그거 아세요?     


작년에 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동학년 선생님이었는데 항상 아이들과 쪼그리고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인 분이셨어요. 그 선생님은 의원 면직을 한 후 돌아 돌아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는데 한 번은 그분이 들려준 이야기가 굉장히 충격적이었지만 솔직해서 마음 한 구석이 찌릿하게 와닿았습니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왜 제가 학교로 왔는지! 학교를 나간 후 세계 여행을 떠났는데 여행지에서 열 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 아이를 보았어요.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데 그 아이는 관광객들에게 바구니를 들고 무언가를 팔고 있었고 한 손에는 담배가 있더라고요. 아이가 줄담배를 계속 피우는데 그때 알았어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그날 저는 한 번도 핀 적이 없는 담배가 피우고 싶을 정도였어요. 왜냐하면 딱 그 시기에 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명퇴를 덜컥 신청했거든요. 누군가 교육의 힘을 재발견한 순간, 저는 교육을 던져 버릴 작정을 하고 있었기에  정말인지 그때 저는 학교가 지긋지긋했어요.

저도 알고 있어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데. 왜 공교육의 종사자였던 저는 교육이 지긋지긋하게 싫어졌을까요? 앎과 삶은 왜 계속 어긋나고 있는지를. 저는 그 어긋난 시스템에 부딪혀 상처투성이 교사였습니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건.... 불가능할까요?    


학교 안 교사도, 학교 밖 교사도 모두가 행복해지는 건 불가능한 성립일까요? 행복은 누군가 불행하면 누군가 행복해지는 원리로 작동하는 게 아닙니다. 학교 안이 불행했다고 해서 학교 밖에 나오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게 아니듯.

그러니 오늘 제 명퇴 관련 강의는 망했습니다.


"선생님, 학교 밖에 나오니 공기부터가 달라요! 너무 좋습니다. 어서 나오세요!"


라고 말할 수도 없거니와 진실도 아니라서.


그런데,


"선생님, 나오니까 진짜 힘들어요. 아, 좋은 점도 있는데요. 대신 돈은 디폴트 값이니 돈이 있으면 나오세요."


라고 현실적으로 조언할 수도 없어요.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니까요.


"아, 현재는 뭐, 그렇습니다. 하하하"


이런 시답지도 않은 말은 듣고 싶지 않겠지요?


저는 진심으로 학교 안 교사가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저 같은 저연차 명퇴 교사가 관심 밖이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미 학교를 나왔고 이제는 학교와 무관한 내 길을 갈 것입니다. 길이 어떨지는 제 개인의 일입니다.


 하지만 학교 안은 다릅니다. 학교 안은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고 그래서 어긋난 시스템 속에서는 개인은 늘 약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연대하지 않으면 이길 재간이 없어요. 그러니, 그 시스템이 어긋나지 않고 제대로 잘 작동하길 바랄 뿐입니다. 개인(교사)이 행복해야 사회(학교구성원)가 행복해지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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