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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Mar 19. 2024

[86호][사회] 아장아장 나물가자 무슨나물 가자느냐

편집위원 김성경


 오롯이 쌀을 섭취한 기억은 아득하다. 어제 점심은 카페 라테였고 저녁은 샌드위치였다. 제대로 된 한 끼를 먹는 건 번거로운 일이 되었다. 이 외에 가끔 먹는 건 마라탕과 떡볶이, 햄버거. 머리와 혀가 짜릿해지는 음식들이다. 카드 출금 내역은 편의점과 카페가 가장 많다. 삼각 김밥과 커피 없이 살아본 적이 언제였더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식습관인데 이상하게 속이 불편한 날이 많아졌다. 햇반에 카레, 김치면 나름 영양소를 챙긴 것도 같은데 이상하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 어쩌면 정말일까? 한국이 만들어 낸 밥상 이데올로기에 걸려든 건 아닌지 가끔 의문이 들지만, 밥을 먹어야 건강을 되찾을 것 같다. 때때로 속이 허한 배달 음식과 편의점 도시락 말고 따듯한 밥과 국, 채소와 소담한 반찬을 먹고 싶다. 아삭아삭하고 신선한 즙이 나오는 그런 것들. 배 속에 천천히 스며들어 속이 편안해지는 그런 것들이 먹고 싶다.


 봄에 먹는 것들 – 달래장과 시금치 된장국

 봄이 오면 냉이와 쑥이 개천을 따라 자란다. 학교 화단에 올망졸망 피어난 냉이꽃과 꽃다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말랑말랑. 사실 냉이된장국은 향이 강해 잘 먹지 못한다. 조리 과정도 손이 많이 간다. 냉이를 다듬고 있자면 그냥 배달 앱을 열어 터치 몇 번으로 모든 걸 해결하고 싶어진다. 쉬운 건 시금치다. 맛이 강하지 않다. 나물을 무쳐도 되지만, 국으로 끓일 때 이만한 것이 없다. 물에 육수 팩이나 육수 캡슐을 넣고 끓이다가 건져내고 된장 한 숟가락, 시금치 한 줌, 다진 마늘 조금. 싱거우면 소금을 톡톡. 시금치가 흐물흐물해지면 불을 끄고 그릇에 담는다. 함께 먹으면 좋은 건 달래장과 김이다. 달래를 쫑쫑 썰어 간장과 고춧가루, 들기름과 함께 섞어준다. 바삭바삭 구운 김에 밥과 달래장을 올린다. 밥 한 입, 국 한 숟갈. 밥 한 입, 국 한 숟갈. 고소한 김과 알싸한 달래가 먹을 때마다 코끝에서는 봄 냄새가 간질간질하다.

 남은 달래는 처리하기 어려우니 친구와 절반 나누거나 화분에 심는 게 좋다. 달래를 나눠가질 친구를 찾는 건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무엇도 어렵다면 많이 만들어 재워두고 달걀 프라이와 비벼 먹는다. 짜지 않게 만들면 듬뿍듬뿍 올려 먹을 수 있다. 계속 대안을 생각하다 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이렇게 썰고 저렇게 익히고. 오랜만에 하는 요리이니 싱크대도 쓱쓱, 가스레인지도 싹싹. 겨울 먼지도 탁탁 털어내고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할 일은 쌓여가는데 볕이 너무 따듯하다. 시험을 망친 시간도, 면접에 떨어진 시간도 이미 지났다. 뭉쳐있던 마음도 볕에 널 시간이다.

 남은 재료 처리도, 마음 정리도 쉽지 않지만, 차근차근 해보자. 우선은 음식 재료부터. 만약 마늘도 처치 곤란이고 된장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라면 작은 양조간장과 작은 참기름만 사자. 두 개만 넣고 달래장을 만들어도 나름 괜찮다. 또 신라면에 달걀을 넣어 끓이고 참기름을 한 숟가락 넣으면 참깨라면과 비슷한 맛이 난다.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된다. 그러니 웅크린 몸을 펴고 기지개를 쭉쭉.


 여름에 먹는 것들 – 호박잎과 강된장

 여름은 야채보다 과일이 먹고 싶어진다. 커다란 수박을 네모난 모양으로 잘라서 냉장고에 넣는다. 사각사각 베어 물면 차가운 단물이 씹을 때마다 나온다. 빨간 토마토는 그냥 먹어도 맛있고 올리브유와 소금 후추를 뿌려 먹어도 좋다. 아삭아삭한 상추는 어디든 어울린다. 상추가 질릴 때면 보들보들 호박잎과 짭짤한 강된장이 생각난다. 강된장은 양파 반 개, 두부 조금, 양배추 두 장을 채 썰고 기름을 두른 냄비에 볶는다. 양파가 투명해지면 간장 한 숟가락, 된장 한 숟가락, 고추장 반 숟가락을 넣고 함께 섞어준다.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물을 두 컵 넣는다. 보통은 다시다와 멸치를 우린 물을 쓰기도 하지만, 시간이 없고 귀찮으니 그냥 물을 넣는다. 너무 되직하면 물을 더 넣고, 국물이 너무 많아 보이면 좀 더 졸인다. 싱거우면 소금을 넣고 감칠맛이 부족하면 연두를, 매운맛이 좋으면 고춧가루를 뿌리면 된다. 양배추가 없어 팽이버섯을 넣은 날도 있었고 양파만 반 개 넣기도 했다. 얼렁뚱땅 어떻게든 강된장은 완성된다. 질긴 호박잎이 싫다면 겉껍질을 제거한다. 살짝 아삭한 식감이 남아 있게 먹고 싶다면 15분, 부들부들한 호박잎을 먹고 싶다면 20분을 찐다.

 재료를 씻고 다듬는 건 품이 많이 든다. 체력과 시간이 없다면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일이다. 라면 용기에 물을 붓고 3분만 기다리면 라면이 완성될 텐데. 면을 호로록 먹고 국물 한입 들이키면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가 될 것 같은데. 맛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라니 쉽지 않다. 어제 먹은 매운 라면에 오늘 하루 종일 배가 아팠다. 내일의 무탈한 아침을 위해 호박잎이 익기를 기다린다. 초록색 증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습한 팔다리는 선풍기 앞을 떠날 줄 모른다. 호박잎에 밥을 얹고 강된장을 담뿍 올린다. 입에 쏙 넣고 씹으면 칙칙 초록색 물이 나오고 짭짤한 강된장이 뒤섞인다. 고소하고 향긋하다. 먹다 보면 호박잎과 강된장 중 한쪽은 반드시 남는다. 호박잎이 남으면 그냥 된장에 싸 먹고 강된장이 남으면 밥에 비벼 먹으면 된다. 대강 밸런스를 맞추고 열심히 여름을 나면서 다시 수박을 아삭.


 가을에 먹는 것들 – 고구마와 참나물

 선선한 바람이 불면 뭐든 밖에서 먹고 싶다.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놓고 도시락을 먹는 것도 좋다. 창문이라도 열어두고 식사하고 싶은 날이 찾아왔다. 가을이 오면 바람도 다정하다. 끈적하고 미지근한 바람이 아닌 부드럽고 건조한 바람이다. 흔들거리는 나뭇잎 소리도 시원하다. 노란 은행잎이 살랑살랑 내려온다. 가을은 노란색의 계절이다. 은행나무, 벼 이삭, 국화, 그리고 고구마. 폭폭 찐 고구마는 파근파근하고 달다. 호박고구마와 밤고구마 중에서 뭐가 더 좋은지, 군고구마와 찐 고구마 중에 더 맛있는 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모든 고구마는 맛있다. 따듯하게 익힌 고구마를 현미차와 함께 먹는다. 고소하고 단 가을이 배 속에 통통.

 그래도 배가 차지 않는다면 밥을 먹으면 된다. 모든 게 알록달록하게 변하는 계절이 좋긴 해도 어쩐지 지나가 버린 초록색이 그리워진다. 다행히도 아직 참나물이 남아있다. 우리를 기다려 주는 초록 나물. 참나물은 향이 진해 밥과 같이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참나물을 살짝 데친다. 설탕 약간과 간장, 참기름, 다진 마늘까지 넣으면 좋지만, 없으면 간장과 참기름만으로 무친다. 제철 나물의 싱싱함을 믿고 양념을 줄여본다. 엄청 맛있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맛있는 참나물이 된다. 가끔은 잘될 것 같지 않더라도 그저 믿어야 할 때가 있다. 엉망진창이더라도 참나물은 참나물이니까. 향이 강한 이 나물은 따끈한 밥 위에 올려 먹는 게 가장 좋다. 가끔 변형을 주고 싶다면 비빔밥이나 나물밥으로도 해 먹는다. 살짝 쓴맛이 있는 참나물에 쌀이 찰싹 달라붙어 향긋하고 고소한 나물밥을 완성한다. 봄도 여름도 들어있는 맛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간을 딱 잘라 말하기 어렵듯이 요리도 이것저것 섞여 하나가 된다. 딱 자르지 말고 적당히 뭉개면서 둘 다 맛봐야지. 나물을 밥 위에 얹어 먹어도, 함께 밥으로 지어도 다 맛있으니까.


 겨울에 먹는 것들 – 만두전골

 선선한 바람이 서늘하게 바뀌고 발가락 끝이 차가워지면, 역시 따듯한 것들이 생각난다. 전기장판, 털양말, 고양이 같은 것들. 발이 시리지 않게 양말로 꼭꼭 싸매고 전기장판에 누워 고양이와 함께 녹아내리면 완벽한 겨울이다. 머리맡에는 귤을 한 바구니 가져다 두고 수시로 먹는다. 귤껍질을 벗기면 챡, 하는 소리와 함께 상큼한 향이 훅 감돈다. 귤마다 맛이 달라서 찌릿하게 셨다가 노곤하게 달다. 어느새 귤껍질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창밖을 보면 어라? 벌써 저녁이 성큼. 겨울은 점점 해가 짧아져 오후를 부지런하게 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 해가 떨어지면 추운 건 더 춥게 느껴지고 시린 곳도 더 시린 느낌이 든다.

 이럴 때 생각나는 음식은 배추 만두전골이다. 보글보글 끓는 전골을 보고 있으면 겨울도 조금은 따듯하게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다. 겨울 배추는 단맛이 골고루 스며있다. 부드러운 배추를 만두와 함께 먹으면 적당히 단 배추와 고소한 만두의 조화가 좋다. 만두는 두부와 당면, 숙주, 유부로 만들어도 좋지만, 취향과 입맛에 맞는 걸로 사는 게 훨씬 간편하다. 냄비에 절반 정도 물을 담고 간장 두 숟가락, 소금 한 자밤으로 간을 한다. 배추를 먹고 싶은 만큼 씻은 후 큼직큼직하게 썬다. 간을 한 물에 배추를 넣고 배추가 투명해질 때까지 끓인다. 배추가 익으면 만두와 파, 팽이버섯, 청경채 등 원하는 채소를 넣고 3-4분 동안 익힌다. 마지막으로 연두 한 숟가락과 후추를 톡톡. 간장과 식초를 섞은 소스에 야채와 만두를 찍어 먹는다. 온기를 위해 끓이면서 먹어도 좋다. 다 먹고 무언가 부족하다면 밥을 말거나 칼국수로 마무리하면 된다. 배를 통통 두드리며 하루 동안 한 일을 생각해 본다. 하루 종일 누워서 보내는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다가도 전기장판 안은 너무 따듯하다. 조금만 누워있다가 또 일어나야겠다. 일단 오늘은 코끝이 시리니까. 기온이 싸늘하니까. 밖에는 눈이 폭폭 내리고 바람이 스륵 부니까. 조금 더 따듯해지면, 눈이 녹고 바람이 부드럽게 불면, 그때는 꾸물거림을 멈추고 정말 일어나야지.


 도전! 오늘은 나도 방구석 요리사

 혹시 글에 실린 요리가 어려워 보였나요? 어쩌면 맛이 없을까 걱정했나요? 그런 당신을 위해 방구석에서 미리 요리를 해보았답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요.


 겨울에 먹는 배추 만두전골

 재료: 물 800ml, 배추 5-6장, 만두 먹고 싶은 만큼, 국간장1) 2숟가락, 연두 1숟가락, 소금 한 자밤, 후추 약간, 기타 야채(원하는 것, 파, 청경채, 팽이버섯 등).



1. 배추를 깨끗이 씻어 대강 잘라줍니다.

2. 냄비에 물 800ml를 받고 간장 2숟가락, 소금 1자밤을 넣어주세요.

3. 간을 한 물에 배추를 넣고 투명해질 때까지 끓여줍니다.

4. 이렇게 투명해졌다면, 완벽해요.

5. 만두와 나머지 채소를 넣어주세요. (저는 버섯을 넣었어요.) 시판 만두는 3-4분, 직접 만든 만두는 1-2분 뚜껑을 덮고 끓여 주세요.

6. 마지막으로 연두를 1스푼, 후추를 약간 뿌리면 완성이에요.


 사실 매일 이런 밥을 챙겨 먹는 건 쉽지 않다. 한 달에 한 번 이렇게 먹으면 기적일 정도다. 달걀 프라이에 참기름과 간장을 넣고 비벼 먹으며 그래도 밥을 먹었으니 건강은 챙긴 거라고 타협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도 없었다. 다 그렇게 사는 거라고 배웠다. 그러나 밥을 잘 먹어야 체력이 생긴다. 체력이 있어야 사람에게 친절할 수 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 맛있게 먹고 따듯하게 지내는 건 너무 중요한 일이다. 어제도 떡볶이가 먹고 싶었고 내일은 술을 마시러 갈 거고 모레는 마라탕과 짬뽕 중에서 고민하는 삶이 기다리겠지만, 또 그사이 하루는 씁쓸한 맛을 내는 무언가가, 또 하루는 뭉근히 끓인 무언가가 끼어들게 놓아두어야겠다.


 몽글몽글한 꿈을 꾸고 햇볕에 바삭바삭 몸을 말려요,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요.



1)  진간장(혹은 양조간장)을 사야 하는지, 국간장을 사야 하는지 고민이 될 수도 있다. 국물 간을 할 때는 국간장이 알맞고 밥에 비벼 먹거나 무언가 찍어 먹을 때는 진간장이 낫다. 진간장으로 국을 끓이면 어딘가 허전하고 국간장으로 밥을 비비거나 찍어 먹을 소스를 만들면 약간 짜다. 이럴 때는 선택해야 한다. 진간장으로 국을 끓이고 부족한 염도는 소금으로 보충할 것인지, 국간장으로 찍어 먹을 양념을 만들고 육수를 부어 염도를 조절할 것인지 말이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요리가 되니 너무 겁먹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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