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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Apr 23. 2024

[86호][부록] 미래는 없다

편집장 조현빈


 01.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집 밖에 나갈 때면 텀블러를 챙긴다. 마트에 갈 때는 에코백을 챙기고, 식탁에는 고기반찬을 줄였다. 정부는 대중교통 이용, 분리배출, 실내 적정온도 유지가 지구를 구한다고 외친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정부는 탄소배출 감축 목표치를 자꾸만 축소하고, 가덕도 앞바다에는 신공항을 짓는다. 삼척에는 석탄화력발전소가 들어섰다. 해당 발전소를 가동했을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상쇄하려면 1억 2천만 명의 ‘작은 실천’이 필요하다.1) 우리나라 전 국민이 노력해도 역부족인 셈이다.

 정부의 캠페인은 여전히 개인을 겨냥한다. 마치 내가 기후변화의 책임자라고 외치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수많은 자원을 소비하는 소비자로서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다. 그러나 모두에게 같은 양의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2021년 기준 국내기업 73곳이 배출한 온실가스는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3에 달한다. 상위 10개 기업의 배출량은 무려 전체 배출량의 46%이다.2) 기업이 기후 위기의 주범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기업에 변화와 실천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난 3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기재된 산업계 탄소배출 감축 목표는 기존보다 3.1% 낮은 11.4%이다. 정부는 기존의 목표가 산업계에 막대한 부담을 준다며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고 변명한다. 전환·수송·농축산 등 다른 업계는 탄소배출을 평균 3-40% 감축해야 하는데도 말이다.3) 정부가 물질적 이득에만 매몰되어 기업의 목소리에 힘을 싣고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할 때, 개인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며, 지구와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정부의 안일한 태도는 사실상 기후변화 대응을 포기한 것과 마찬가지다.


 02. 자연재해가 아니다.

 2023년 7월 13일 충북 청주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14일 오후 홍수경보가 발령됐다. 15일 미호천교 부근의 ‘임시 제방’이 붕괴하며 지하차도에 막대한 강물이 유입됐다. 언론은 참사 현장을 찍은 사진과 함께 이렇게 보도했다.


충북 오송 지하차도 침수 사고와 관련해서는 사망자 11명, 부상자 9명이 확인됐다. (중략) 기상청 관계자는 “오늘(16일)부터 모레(18일) 사이 충청권과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제주도는 모레부터 매우 강한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위험 지역에서는 상황 판단 후 안전을 위해 이웃과 함께 신속한 대피 및 피난하는 등 즉시 안전 조치를 시행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4)  


 24명의 사상자를 낸 ‘오송 지하차도 참사’는 이례적인 강수량이 만들어 낸 영락없는 ‘자연재해’였다. 적어도 정부의 입장은 그랬다. 그러나 오송에 다량의 비가 내릴 거라는 것은 이미 예측된 사실이었다. 더구나 참사가 난 지하차도는 집중호우 시에 침수 사고가 예견된 저지대 지역이다. 사고에 대비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홍수경보가 발령된 이후에도, 국무총리실과 행정안전부, 관할구청과 경찰청 중 그 어떤 기관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교통통제나 지하차도 출입 통제도 없었다. 유일하게 현장에 출동한 충북소방본부도 신속한 대응에 나서지는 않았다.5) 제방 자체도 문제다. 시공 건설청에 공사 편의를 위해 ‘임시 제방’ 높이를 29.78m로 낮췄기 때문이다. 제방의 법정 높이는 30.58m 이상, 사고 당시 오송의 최고수위는 29.87m로, 법정 기준만 지켰다면 범람을 막을 수 있었다.6) 결국 해당 참사를 불러온 건 자연이 아닌 인간이다.

 더불어 해마다 반복되는 집중호우, 지진, 산불, 한파, 가뭄과 산사태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재해가 아니다. 산을 깎고 숲을 태워 공장을 세우는 기업이, 이를 묵인하는 정부가, 작고 큰 징조들을 무시하며 무리한 발전을 이끈 사회가 만들어 낸 결과다. 결국 ‘자연재해’라는 호명은 사회의 재난과 재해에 책임지지 않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 책임자가 없는 재난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상기후로 인한 자연재해 피해 규모는 나날이 커지지만 이를 예측하고 예방하는 기관은 없다.7) 경북 영덕군 강구면은 2018년부터 3년 연속 침수 피해를 겪었다. 하지만 재해 예방을 위한 대규모 사업비를 감당할 수 없는 지자체는 예산을 이유로 책임에서 빠져나온다.8) 가장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할 정부 역시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라는 변명 앞에서 피해를 관조한다. 


 03. 사회는 보지 않는다.

 사회는 기후 문제를, 그리고 기후 문제로 무너지는 사람들을 보지 않는다. 우리나라 교육은 기후 위기를 다루지 않는다. 과학 교과 중심으로 지구온난화의 형상만 언급하며 기후 위기의 주범을 감춘다.9) 개인의 변화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정부의 낙관을 반복할 뿐이다. 지구온난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피해의 양상을 알지 못한다.

 피해는 수직적이다. 재난은 언제나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온다. 폭염과 한파로 홈리스와 야외노동자가 죽었고, 홍수로 쪽방촌과 반지하 거주민이 죽었다. 가뭄으로 농수산물 가격이 급등하면, 농민과 빈민이 가장 먼저 위험에 내몰린다.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라’, ‘실내 적정온도를 유지하라’는 정부의 대비책을 실현할 수 있는 건 극심한 기후변화를 버틸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사람뿐이다. 실내에서 노동하거나 쉴 수 있고, 홍수로부터 안전한 터전이 있고, 충분한 식량을 살 수 있는 돈을 가진 사람들 말이다. 이 불평등한 구조는 재난 상황 전반에 걸쳐 반복된다. 

 2022년 여름, 집중호우로 인한 반지하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매년 반복되는 문제지만 제대로 된 해결책과 예비책이 없었다. 서울시는 사태를 해결하겠다며 ‘반지하 퇴출’ 작업을 진행했다. 반지하 건축을 제한하고, 반지하 가구의 지상층 이주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반지하 가구가 이주할 때 받을 수 있는 주거 보조비는 최대 월 20만 원에 불과하다.10) 최대 6년까지 지원한다는 점을 고려해도, 서울에서 집을 구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힘겹게 집을 구한다 한들 6년 후에는 또다시 반지하를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일시적이고 피상적인 지원책에 살고 있는 곳을 떠날 수 없지만, 건축 제한과 철거 계획에 머물 수도 없는 기이한 구조다. 비대칭으로 구성된 분배의 문제, 지상층에서 살 수 없는 구조적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해당 정책은 그 어떤 근본적 변화도 이끌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는 보기를 거부하고, 듣기를 거부한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이하 탄중위)에는 피해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사회계층의 참여가 원칙이지만 민간위원은 32명으로 축소되었고, 대학 교수와 정부 연구기관 연구자, 기업인 등 특정 집단에 편중되어 있다.11)노동자, 중소상공인, 농어민, 장애인, 청소년, 청년, 노인, 빈민은 포함되지 않는다. 기후 위기 최전방의 피해 당사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당사자를 배제하는 탄중위는 탄소중립을 거스르는 정부의 결정을 정당화하는 도구적 수단에 그칠 뿐이다.12)

 

 시민에게 기후 문제의 책임을 요구하던 정부는 정작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우리의 비명과 고발은 24시간 가동되는 공장의 기계음에 파묻혀 소멸한다. 정부와 기업이 결탁한 구조 속에서 기후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 책임자와 피해자는 은폐되고, 문제는 축소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연을 막을 수는 없어도, 자연을 직면하고 재난에 대처할 수는 있다. ‘눈부신 성장’이라는 발전 신화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 기후변화로 터전을 잃은 이재민, 매년 불타 사라지는 숲, 극단적인 이상기후는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지자는 얘기가 아니라, 당장 우리의 목숨을 구하자는 얘기다. 우리가 빼앗긴 것은 미래가 아닌 현재다.



1) 씨리얼. (2021.09.09.). "텀블러 쓰세요!"가 정부와 기업의 눈속임이라고? | 씨리얼 사회탐구 [영상]. 유튜브. https://youtu.be/hNPeKXgAD5k?si=acrS0Dy4anCHadOD(2024.01.30. 접속).

2) 임병선. 「[온실가스 100만톤클럽①] 73곳이 한국 탄소배출의 75%」. 『뉴스펭귄』. 2023.02.17. https://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3475(2024.01.30. 접속).

3) 권우현. 「‘기후 배임’으로 처벌할 수는 없을까」. 『한겨레』. 2021.12.16.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22174(2024.01.30. 접속).

4) 정봉오. 「집중호우로 38명 사망…오송 지하차도 침수로 11명 사망」. 『동아일보』. 2023.07.16.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716/120263647/1(2024.01.30. 접속).

5) 이대건. 「'오송 참사' 왜 인재인가?...임시 제방· 3차례 경고·사각지대」. 『YTN』. 2023.07.18. https://www.ytn.co.kr/_ln/0103_202307180700015568(2024.01.30. 접속).

6) 최예린·오윤주. 「[단독] ‘오송 참사’ 법정기준보다 0.8m 낮은 둑…인재 재확인」. 『한겨레』. 2023.07.24. https://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1101388(2024.01.30. 접속).

7) 손현수. 「이상기후 재난 피해 커지는데, 예측·예방기구가 없다」. 『한겨레』. 2023.10.26.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13718(2024.02.16. 접속).

8) 반기웅. 「재해에서도 차별받는 ‘지방’」. 『경향신문』. 2020.08.22.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8221620001(2024.02.16. 접속).

9) 이인·류도성. 「로드맵도 비전도없는 기후교육 미래세대는 운다[영상]」. 『노컷뉴스』. 2022.12.01. https://www.nocutnews.co.kr/news/5857850(2024.01.30. 접속).

10) 조희제. 「서울시 양천구,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사하면 최대 1440만원 지원」. 『이코노뉴스』. 2023.11.20. https://www.econ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3691(2024.01.30. 접속).

11) 진보당. (2022) 「‘당사자 배제, 원전육성’을 위한 탄중위는 필요없다!」. 『진보당』. https://jinboparty.com/pages/?p=15&b=B_1_2&m=read&bn=8052(2024.01.30. 접속).

12) 박다솔. 「‘탄중위 해체’가 기후정의의 시나리오」. 『참세상』. 2021.08.26.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186(2024.01.30. 접속).



참고문헌

권우현. 「‘기후 배임’으로 처벌할 수는 없을까」. 『한겨레』. 2021.12.16. https://www.hani.co.kr/arti/opinion/because/1022174(2024.01.30. 접속).

박다솔. 「‘탄중위 해체’가 기후정의의 시나리오」. 『참세상』. 2021.08.26.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186(2024.01.30. 접속).

반기웅. 「재해에서도 차별받는 ‘지방’」. 『경향신문』. 2020.08.22.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008221620001(2024.02.16. 접속).

손현수. 「이상기후 재난 피해 커지는데, 예측·예방기구가 없다」. 『한겨레』. 2023.10.26.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113718(2024.02.16. 접속). 

씨리얼. (2021.09.09.). "텀블러 쓰세요!"가 정부와 기업의 눈속임이라고? | 씨리얼 사회탐구 [영상]. 유튜브. https://youtu.be/hNPeKXgAD5k?si=acrS0Dy4anCHadOD(2024.01.30.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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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제. 「서울시 양천구,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이사하면 최대 1440만원 지원」. 『이코노뉴스』. 2023.11.20. https://www.econo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3691(2024.01.30.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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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린·오윤주. 「[단독] ‘오송 참사’ 법정기준보다 0.8m 낮은 둑…인재 재확인」. 『한겨레』. 2023.07.24. https://www.hani.co.kr/arti/area/chungcheong/1101388(2024.01.30.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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