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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Nov 17. 2024

[87호][학내] 같이, 자치, 정치

거스름


 ‘학생자치’라는 단어에 연상되는 건 무엇이 있을까? 정치라는 말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호하다면 몇 가지 단서를 남겨 본다.

▲ 2001년 10월 24일 서울 광화문에서 덕성학원 재단 비리에 맞서 이사진 퇴진과 관선이사 파견을 요구하며 삭발식을 치르는 덕성여대생 ⓒ연합뉴스

▲ 2011년 4월 1일 덕성여대에서 ‘비리구재단 복귀 반대, 등록금 인상 반대, 학생 요구안 실현’을 안건으로 열린 학생총회. 당시 총학생회장단은 이 총회 자리에서 삭발식을 치렀다. ⓒ같은 날 게시된 네이트판 글 ‘덕성여자대학교 여대생 삭발식’


학생자치와 학생운동

 학생자치는 학생이 주체가 되어 학생 권리를 옹호하고 민주시민으로 나아가는 자율적·참여적 성격의 활동이다. 학내 모든 학생을 대표하는 의결기구인 총학생회는 학생자치에서 분리될 수 없는 최고기구로, 민주화 시기 학생이라는 정치체로서 여러 역할을 수행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민주화 투쟁 대부분이 학생운동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학생운동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학생운동을 학생자치를 포함한 상위개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학생운동은 대학 및 정치·사회 개혁을 목표로 하는 학생 주도의 집단적·조직적·지속적인 사회운동1)으로, 대학 내부와 긴밀히 관련하는 학생자치와는 미묘한 차이를 가진다. 이러한 정의는 그 자체로 학생운동의 복잡한 층위를 잘 보여 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조선 성균관 유생의 집단행동을 그 뿌리로 보지만, 시차를 조금 뛰어넘어 보면 1987년 6월 항쟁부터 1991년 5월 투쟁까지만 해도 학생회는 엄연한 투쟁 기구로서 기능했다. 조직 아래 끈끈히 결집한 학생들의 움직임은 폭발적이었다.

 많은 이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호헌철폐 독재타도’, ‘직선제 개헌’을 외치던 1987년 6월, 대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별로 연일 집회와 시위가 이어지던 6·10국민대회 하루 전날, 연세대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아 쓰러지자 학생을 비롯한 시민들의 분노가 대거 폭발했다. 대학생들은 명동성당을 점거해 며칠간 농성을 벌였고 이후 항쟁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각 대학의 대표자, 즉 총학생회장을 회원으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2)가 결성되며, 학생운동은 급진화·대중화에 성공했다. 

 대학사회를 넘어 실질적으로 통합된 시민사회의 열기는 노동자대투쟁을 이끌었다. 대학 졸업장만 있다면 ‘적당히 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이 시기, 선택받은 지식인이라는 특권을 포기하고 노동운동에 뛰어든 ‘학출’, 즉 대학생 출신 노동자들은 투쟁을 위해 위장 취업을 시도했다. 이들을 색출하려는 대대적인 있을 정도로 그 저력은 엄청났다. 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과 1970년대부터 노동현장에 뛰어들었던 대학생 출신 노동자의 활동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을 일구어냈다. 석 달여간 이어진 노동자대투쟁은 전국으로 번졌고, 1,300개 이상의 민주노조 결성 및 어용노조의 민주화, 대폭 임금인상 등의 성과를 쟁취할 수 있었다.

 시간은 흘러 2011년,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과 ‘등록금 대책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네트워크(등록금넷)’등이 함께한 반값 등록금 투쟁이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학생들의 자생적인 움직임, 즉 학생운동은 잔존하고 있었다. 당시 학생들은 가능한 방법을 최대로 동원했다. 서강대·덕성여대·우석대 총학생회 간부들은 머리를 밀고, 고려대 학생들은 본관을 점거했으며, 이화여대 학생들은 졸업에 필수적인 채플 수업을 거부했다. 단식 투쟁을 불사하는 이들도 있었다.3) 한동안 대학가에서 모습을 감췄던 학생총회가 경희대·덕성여대·이화여대 등에서 성사되기도 했다.


▲ 2011년 덕성여대 민주동산에서 열린 ‘3.30 학생총회’ 홍보물이 교내에 설치된 모습 ⓒ경향신문

 그러나 이처럼 혁명적이고 대중적이던 운동도 점차 체제 안에서 처우를 개선하려는 개혁주의적인 모습으로 변모했다. 학생회는 투쟁 기구의 성격을 일부 남긴 채로 구성원 전체를 대변하려는 조합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4) 이처럼 총학생회는 운동 단체의 성격과 복지 제공자(봉사자)의 성격을 다 갖고 있었지만,5)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지난 지금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학생자치와 정치성

 투쟁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학생이 모여 동력을 만들고 이를 행동으로 연결해야 한다. 하지만 이제는 ‘대학 당국에 항의’한다는 개념 자체가 차츰 사라지고 있으며, 대학에 건의하는 불만사항마저 소비자 정체성에 크게 기인한다. 학내 불만을 전투적 행동으로 조직할 수 있는 열의와 자원이 이제는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대학의 기업화와 탈정치화는 물론 개인의 파편화,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한 학생문화 단절 등이 그 이유라고 진단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학생문화로서 역사성을 지닌 학생운동이 하나의 ‘문화’로서 계승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 나 자신의 삶이 중요한 불안정사회에서 ‘스펙’을 쌓고 자기계발에 매진하는 것보다 중요시되는 일을 찾아보긴 어렵다. 민주화 등 ‘대의’가 대단한 가치로 남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학생운동이 완전히 몰락했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로서 사장된, 혹은 사장되었다고 여겨지는 문화를 끊임없이 재소환하는 것은 학내 자치기구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고민거리이다. 아니, 혹자는 이 문화를 소환하지 않고자 고민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에서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자치기구가 ‘정치적’이라고 인식하긴 쉽지 않다.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학생자치는 ‘정치’와 연관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며 문제화한다.

 2023년 전남대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F;ACT(이하 팩트)’는 3·8 여성의날을 맞아 국회의원 류호정 초청 강연을 열었다. 이 행사는 청년정의당 광주광역시당의 첫 번째 대중강연으로, 진보적 의제를 다루고자 팩트와 공동 기획 및 주관했다. 그러나 강연 직후 전남대 총동아리연합회 내부에서 팩트에 대한 징계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전남대 중앙동아리 20곳이 연서를 작성해 발의한 징계안의 골자는 ‘전남대 교육시설물 사용 규정상 학술활동의 범위를 벗어나는 정치행사’였다. 강연장 대관 시 특정 정당과의 공동주관 사실이 누락되었으며, 강연 후반에 류호정 의원의 입당 권유 발언이 있었다는 것이다. 전자는 여러 문서 중 하나에 공동주관 단위를 실수로 빠트린 것이며, 후자는 팩트와 사전에 합의되지 않은 사항이었다. 총동아리연합회장은 연합회 외부 기관인 학생과에 징계를 요구했고 학생과는 팩트에 학내 시설사용금지 조치를 통보했다.6) 징계안이 전체동아리대표자연합회의(전동대회)에 회부된 이후 팩트는 가동아리 강등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징계가 결정된 6월 1일에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전남대 사회과학대학 별관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이화여대 2023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한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가 특정 정당과 유착되었다는 ‘의혹’이 일었다. 해당 선본의 정후보가 속해 있던 권리행동 단체가 장애인 지하철 시위에 연대하는 서명운동을 진행한 점을 비롯해 소위 ‘꿘’ 동아리인 바위7), 이화나비8), Right now9), PAZ10) 등에서 활동했다는 점도 정당 유착 논란의 근거가 되었다. 정당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음에도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입장을 반복해 내놓았지만 한번 붙은 불은 쉬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학생들은 “총학생회에 정치가 개입되는 것을 넘어, 총학을 구성하는 개인조차 어떠한 정치적인 색도 띠지 않길 바랐다.”11)

 대학가에서 작동하는 ‘꿘’이라는 낙인은 정치성이 드러나는 일련의 것들을 한데 묶어 ‘위험한’ 것으로 치부한다. 우리는 ‘꿘’이라는 이름을 통해 권리 담론에서 정치성을 읽어내고, 결국 그것을 숨겨야 함을 알게 된다. ‘주류’ 사회에서 권리를 요구하는 행동은 이해받을 수 없으므로, 행동한다는 것은 ‘나’를 기존 사회에서 이질화하는 요건임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일련의 일들은 학생들이 ‘정치’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가와 관련한다. 사회를 견제하고 사회에 저항하던 대학은 이미 ‘작은 사회’ 자체가 되었고, 따라서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세계를 해석하고 그에 융화되기를 요구받는다. 결국 정치적인 ‘색깔’과는 멀어져야만 한다고 여기고 만다. 어떠한 정치적 입장이나 성향을 띠지 않는 무색무취의 대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은, 학생 대표인 학생회 역시 이를 대변해야 한다는 압력으로 이어진다. ‘연대함’과 ‘연대하지 않음’을 선언하는 것 또한 정치적 움직임이라는 사실은 망각된다.

 대학에서 ‘정치적 성향’을 띤다는 것, 개인을 넘어 소속 단체의 행보가 특정한 세력들과 연결되는 듯한 일은 얼핏 거창하거나 두려운 일일지 모른다. 하지만 ‘정치’에는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입법 절차나 싸움, 선거 전 집집마다 찾아오는 공보물, 대로변에 걸리는 현수막 등 ‘정치인’의 활동만이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매 끼니 먹는 음식부터 시작해 그 횟수와 음식을 구하는 경로(예를 들자면 요리를 직접 해 먹는지, 가족에게 음식을 받아 오는지, 완성된 음식을 사는지, 언급하지 않은 방식으로 구하는지 등)는 물론, 출생 주소지나 주로 왕래하는 지역, 그곳으로의 이동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 현재 관계를 맺는 사람과 수 또는 관계맺음의 가능성 자체까지. 이 모든 것이 그저 개인적인 일상의 나열로 보이겠지만, 그렇기에 가장 정치적인 일이다.  

   

덕성의 학내정치

 일상의 정치적 성격을 무시하고 최선을 다해 정치적 연관성을 부정하는 경향들을 단지 ‘대학의 탈정치’로 호명할 수는 없다. 대학 공간이 주는 소속감이나 연대가 점차 사라지는 ‘개인’으로의 도생을 극도로 파편화된 사회에서 설명하려면 대학인의 탈정치, 대학기구의 탈정치, 사회의 탈정치보다 적확한 말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는 전제에 따르면 탈정치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학생회를 비롯한 학생회는 ‘탈정치’를 ‘선택’한다. ‘무색무취’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대변(해야만)하는 단체이기에, 실제로 탈脫-정치하는 것이 아니라 탈정치로 여겨지는 모습을 덧입는 것이다. 어떤 이는 이러한 대학인의 탈정치적 성격을 “영리함에서 나온 정치성”12)이라 말한다. “정치적 연대, 학내 갈등 사안, 사회 이슈 등에 대해서 함구”하며 모든 갈등을 방관하는 것은 “유용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반쪽짜리 학생회가 될 수밖에 없다.”13) 매카시즘과 순수 정치로 축약되는 함구 정치의 형태는 결국 시설 개선, 축제 기획·개최, 간식 사업 진행 등의 업무에 머무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이런 경우 총학생회는 대부분 무능한 민원기구가 되어 간다.”14)

 그렇다면 총학생회는 왜 정치적이고 정치적이어야만 할까? 그 답 중 하나는 이제 대학이 ‘정의로운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의 대학교는 진리의 상아탑이자 특권적인 지식의 공간으로서 정의를 향한다는 상징성을, 그리하여 민주화에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응집력과 행동력,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이 구성되는 논리 자체가 수직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점을 되짚어 본다면 대학생은 특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지식인도, ‘헌신’을 인정받을 수 있는 위치라고 할 수 없다. 더 이상 대학은 사회적 지배담론의 생산지가 아니며 대학생도 ‘지식인’이 아니다.15)


“사회 현실 자체가 학생들이 못 나서게 만드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대학생의 위치 자체가 달라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대학생은 어쨌든 사회적 목소리를 내야된다’는 생각이 있었고, 대학생들은 최소한의 양심, 책임감이 있었어요. 요즘엔 그런 것들이 거의 사라진 상황이고, 오히려 사회에서 살아남기 힘든 주체들이 된 거죠.”
“‘이때만 지나가면 나는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지 않거든요. 결국 내가 잘 살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해요. (등록금 문제, 대학 내 문제, 청년실업 등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라는 걸 충분히 인지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01년 학내분규를 이끌었던 당시 덕성여대 총학생회장 김나영 선배의 말16)


 중요한 것은 그렇다/아니다라는 답변이 아니다. ‘대학’이라는 공간이 상징하는 이미지와 관념을 통해 한계선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문제다. 그것을 위한 최소한이 학생자치, 학내정치에 대한 관심이며, 관심에서 한발 나아가 그 모든 것들이 ‘정치적’임을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정치란 일상의 모든 행위다. 학교에 걸린 현수막, 페인트가 칠해진 강의실 복도, 캠퍼스 통행로의 자갈 하나까지도 전부 ‘정치적’인데 어떻게 정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 학교의 학식이 비싼 이유 중 하나는 학교가 학식 조리 인력을 직접 고용해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업체에 맡기기 때문이다. 학내 장애시설이 없는 것은 학교가 비용을 아끼기 위해, 혹은 그 예산을 다른 곳에 배정하기 위해 장애시설을 신설하지 않기 때문이다.17) 마땅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시설은 직원 고용이나 학생 입학에 당연히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학내 인권센터는 “학교의 모든 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하고 향상하며 모두가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안전한 캠퍼스를 만들어 간다”18)고 말하지만, 센터의 업무는 성희롱과 성폭력 등에 한정해 있다.19) 젠더 기반 폭력의 문제인 성폭력이 학내 센터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차치하고서라도, 소수자 의제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 또한 이 센터가 가진 ‘인권’에 대한 관점을 잘 보여 준다.20)

 이제 학생자치, 학내정치란 과연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제일은 요구하는 것이다. 무언가가 잘못된 게 있으면 그것을 지적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는 말할 수 있는 힘을 가져오는 것이다. 발언권을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원래 말하는 이들임을 전면에 내거는 것이다.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의견이 담긴 대자보를 쓰고,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언급한 현수막을 걸고, 공식적인 힘을 싣고자 연서명을 받고, 학생회를 비롯한 학생자치기구에 참여해 변화를 만들고, 학생언론을 건전히 비판하되 필요한 때 힘을 실어주고, 학내 다양성을 위한 모임을 만들거나 참여하는 등, 방식은 이렇게나 다양하게 열려 있다. 학교가 승인한 ‘공식적’인 기구에 가입하는 일이나 그 안에서의 활동만이 학생자치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공식적’인 활동이 자유로이 이루어지게끔, 그리하여 학교의 구성원 모두가 권리를 요구할 때, 공식/비공식이나 승인과 허가라는 틀에 구애하지 않게끔 하는 것이 학생자치이니 말이다.

 학생자치가 기능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벽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개인은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지시와 명령에 그저 순응하는 습관은 무엇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이렇게 타성에 젖는다면 정말로 그 어떤 것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키기 어려울 것이다. 정치 효능감은 실제로 움직이고 행동해 보는 데에서 차차 스며들기 시작하니까.

 학생자치는 ‘별것’이 아니다. 수동적인 의무주체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권리주체임을 자각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로 필요하다. 이 사회에서는 내가 행동해야만 내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 더불어 나의 행동이 우리의 행동으로 연결되고 가치를 위해 같이 행동할 때, 우리의 안에 자체적으로 뿌리내린 정치를 향해 나아갈 때 덕성은 비로소 민주적인 공동체로 북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살되 나의 생명이, 생각하되 나의 생각이, 알되, 나의 깨달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21)

 


1) 김동춘. 「학생운동學生運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는 최초의 전국 단위 학생운동 조직으로, 각 대학 총학생회의 협의체적 성격을 띤다. 1998년 ‘남북청년학생회담 성사 투쟁’과 ‘전두환·이순자 구속투쟁’ 등을 전개했다. 이후에는 남북통일과 노동운동을 전면에 내세운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으로 확대·재편되었다. 그러나 한총련 역시 1996년 8월 ‘연세대 사태’ 이후 세력이 크게 위축되며 현재는 존재 여부가 불분명한 상태다. 2005년에는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이 등록금과 청년실업, 주거 등 대학생의 현실 생활 이슈를 언급하며 출범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오픈아카이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결성.

3) 이문영. 「굶고 달리고 삭발···‘등록금 춘투’ 불붙는다」. 『한겨레』. 2011.04.11.

4) 정병호. (2011). 오늘날의 학생운동. 마르크스21, 0(10), 181쪽.

5) 최일붕. (2011). “2011년 봄 등록금 투쟁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정병호. 2011. 재인용).

6) 팩트 인스타그램. F;ACT 입장문. 2023.05.31.

7) 이화여대 노학연대모임 바위

8)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전국 대학생 연합동아리 ‘평화나비 네트워크’의 이화여대 지부

9) 이화여대 학내 권리행동 자치단체

10) 대학 연합 국제정치·외교동아리

11) 승아·태랑. 「이화 108집 <공명>, 2023 총학생회 선거 다시보기」. 『이화교지편집위원회』. 2024.03.19.

12) 심기용. (2018). 탈 대학, 현장으로의 초대. 대학: 담론과 쟁점, 5(1), 106쪽.

13) 위의 글.

14) 위의 글.

15) 최종숙. (2019).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에서 불안정노동자로. 한국민주주의연구소 민주주의 이슈와 전망, 38, 16쪽.

16) 권지은. 「“삭발? 혈서? 고민하다 절박함에 둘 다 했죠”」. 『오마이뉴스』. 2010.02.27.

17) 고용노동부가 공표한 2023 장애인 고용의무 불이행 기관·기업 명단에 따르면 학교법인 덕성학원은 ‘장애인 고용률 1.55% 미만이면서 고용노력이 없는 기업’ 중 하나로, 상시근로자 수 947명에 따라 29명 이상의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하지만 실제 고용 인원은 4명에 불과하다. 이 1.55%라는 수치는 장애인 의무고용률인 3.1%의 절반인데도 학교법인 덕성학원은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0.42%의 장애인 고용률을 보이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공표 자료는 2022년 12월을 기준으로 하며 이 수치는 전년도 대비 0.19%P 낮아진 것이다. 2021년 덕성여대의 장애인 고용률(0.61%)은 서울시 소재 종합대학 32곳 중 가장 아래이기도 했다. 덕성여대가 장애인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지 않는 공간임이 잘 드러나는 보다 가까운 자료로는 『근맥』 84호 「모두를 위한 덕성」 참조.

18) 덕성여자대학교 인권센터. 「센터 인사말」.

19) 덕성여자대학교 인권센터. 「센터소개. 센터에서 하는 일」.

20) 일례로 연세대학교 인권센터는 연세대 윤리인권위원회 산하에 윤리센터, 인권센터, 성평등센터, 심리상담센터, 장애학생지원센터가 존재하고 상호연계가 가능한 구조다. 센터가 자체적으로 발간하는 관련 자료 외에도 서포터즈를 통해 카드뉴스를 제작하며, 매년 ‘연세인권축제’를 기획해 진행한다. 2024년에 열린 제4회 인권축제 〈오늘부터 우리는〉은 밀양 탈송전탑 탈핵 운동, 돌봄과 공동체, 다양한 몸의 성교육, 난민, 기후위기, 몸의 요구와 접근성 등을 주제로 부스 및 워크샵, 무대공연, 온라인 전시 등 다양한 형태를 취했다.

21) 덕성학원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의 창학이념 ‘자립·자생·자각(自立·自生·自覺)’을 수정해 인용. 



참고문헌

고용노동부. (2023). 장애인 고용의무 불이행 기관·기업 명단공표. 고용노동부. https://moel.go.kr/info/publict/publictDataView.do?bbs_seq=20231201445(2024.07.05. 접속).

구똥개. 덕성여자대학교 여대생 삭발식. 네이트판. 2011.03.30. https://pann.nate.com/talk/311066395(2024.07.05. 접속)

권지은. 「“삭발? 혈서? 고민하다 절박함에 둘 다 했죠”」. 『오마이뉴스』. 2010.02.27.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27130(2024.07.04. 접속). 

김동춘. 「학생운동學生運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0870(2024.07.04. 접속).

덕성여자대학교 인권센터. 「센터 인사말」. https://humanrights.duksung.ac.kr/page/61 (2024.07.05. 접속).

덕성여자대학교 인권센터. 「센터에서 하는 일」. https://humanrights.duksung.ac.kr/page/64 (2024.07.05. 접속).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오픈아카이브.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결성. https://archives.kdemo.or.kr/collections/view/10000079(2024.08.01. 접속).

손국희·한영익. 「전대협부터 한대련까지…학생운동 의장 32인 추적」. 『중앙일보』. 2016.02.04. https://www.joongang.co.kr/article/19526912 

승아·태랑. 「이화 108집 <공명>, 2023 총학생회 선거 다시보기」. 『이화교지편집위원회』. 2024.03.19. https://blog.naver.com/ewhagyoji216(2024.08.03. 접속).

심기용. (2018). 탈 대학, 현장으로의 초대. 대학: 담론과 쟁점, 0(5), 102-109.

이문영. 「굶고 달리고 삭발···‘등록금 춘투’ 불붙는다」. 『한겨레』. 2011.04.11.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72445.html(2024.07.04. 접속).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정병호. (2011). 오늘날의 학생운동. 마르크스21, 0(10), 162-187.

최종숙. (2019).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에서 불안정노동자로. 민주주의 이슈와 전망, 38.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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