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요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존재한다고 믿는 것에 의지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온다. 이곳에 선의라든가, 정이라든가, 사랑과 같은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해야 살 수 있다. 아주 어렸을 적 당신이 준비물을 깜빡한 짝에게 색종이를 빌려주거나, 잃어버린 신발주머니를 찾아주기 위해 학교를 뒤지고 다녔을 때부터 우리는 서로가 필요했고, 그 친절이 알 수 없는 형태로 당신에게 돌아온 지금까지도 우린 빌붙어 살아간다. 흘리고 간 지갑을 주워주고, 신발 끈이 풀린 사실을 알려주고, 반대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친절을 기대하는 사람이 민폐가 되고, 1인분의 몫을 해내지 못하면 ‘사람’이 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오지랖’에 대한 이야기는 낯설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고, 또 몇 번이고 이름 모를 도움을 받아왔다. 다정은 모두에게 이유 없이 찾아오니까.
빌어먹을 삶
‘빌어먹을’은 ‘빌어먹다’는 동사에 파생된 비속어이다. 어원은 남에게 구걸하며 음식을 얻어먹는 거지를 1920년대 한국 소설에서 ‘빌어먹다 죽을’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이후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비하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빌어먹을 학교, 빌어먹을 직장, 빌어먹을 나라. 빌어먹을 놈들은 너무 많았고, 빌어먹는 누군가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빌어먹을 놈이 되는 것은 참 쉬운 일이다. 사회의 기준에 맞춰 살기 위해, 누군가에게 빌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잦은 실수, 습관적인 지각, 쉽게 멍이 들거나 늘 멍을 때리고, 항상 졸고 있고, 깨어있을 땐 과하게 기뻐하거나 슬퍼하고, 집중을 못 하다가도 좋아하는 일에 지나치게 몰입해서 잠을 청하지 못하는 사람들. 남들과 다르고 조금은 어색한 모습을 한 이들을 성인 ADHD라고 부른다. 성인 ADHD는 주로 12세 이전에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ADHD가 성인기에 진단된 것을 의미한다. 발병 원인이 아니라 시기로 구분되며, 원인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다. 아동기에 발병한 ADHD가 성인까지 이어진 것인지, 성인기에 새롭게 발병된 것인지, 다른 질환1)이 ADHD 증상의 형태로 발병된 것인지 의학계에서 논의 중이기 때문이다.2)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발병 원인보다 성인 ADHD에 동반하는 증세이다.
우리는 자신의 일정을 관리해야 하며, 사회가 정한 기복 없이 평안한 몸을 유지해야 한다. 규칙적으로 짜인 일정이나 딱딱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성인 ADHD는 사회 속에서 자기불안, 우울 등의 증상을 겪기 쉽다. 이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모습은 걸림돌이 되어, 숨기기 어려워진다. 이들은 쉽게 조롱받고 비하의 대상이 된다. 물론 사회적 기준에 못 미치는 이웃에 대한 평가는 언제나 박했다. 그러나 의아한 점은 ‘빌어먹을 놈’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게으르고, 무책임하며, 사회에 민폐를 끼치던 집단은 구제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들을 ‘구하려는’ 시도는 의미 없는 것이었으며, 그나마 주어지던 처우는 조롱이었다. 이러한 취급은 ‘빌어먹을 놈들’을 언제나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그들이 갑자기 ‘치료가 가능한 존재’로 뒤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웃음거리로 소비하던 존재를 사회로 환원시키는 시도. 나아질 수 있고, 사회적 기대를 충족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 이 같은 생각은‘빌어먹을 놈들’에 대한 제거와 순응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발생했다.
미디어는 매일 성인 ADHD가 겪는 불안장애와 우울증에 주목하여 이들의 일상을 분석하고, 신문 기사는 성인 ADHD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음을 알린다.3) 특히 2023년을 기준으로 20대 여성 환자수가 10대 미만 환자수를 넘어서면서4) ADHD는 우울증의 뒤를 잇는 ‘현대인의 감기’가 되었다. 정말 감기처럼 인간과 오랜 세월을 보내온 질환일 것 같지만, 대부분 정신질환이 그러하듯 성인 ADHD 또한 10년간 의료화 개념과 함께 성장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성인 ADHD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ADHD를 가진 아동이 성인이 되어서도 치료되지 않는 사례가 보고되자, 1994년에는 성인도 ADHD 진단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에 대해 학계는 ‘ADHD가 유행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의학모델의 입장에서 ADHD는 ‘존재해 온’ 질병이며, 최근 들어 늘어난 질병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정상적'이라고 여겨졌던 기질이 의학적 문제로 재정의되는 의료화의 흐름에 따르면, ADHD 역시 '병'으로서 '발명'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진단에 따르는 처방, '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의사의 권력은 절대적이다. 혹자는 ADHD가 사회적 권력에 의해 그들의 안위나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공부나 업무에 끈기 있게 집중하지 못하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할 일을 자주 잊어버리는, 다르게 말하자면 노동자의 생산력을 떨어뜨리는 특성들이 동시에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고, 약을 먹고, 각종 책과 영상물, 뇌파 치료를 소비하며 많은 보험금을 쓰도록 만들어냈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명확하게 성인 ADHD에 대한 진단을 내려줄 수 없다. 불확실한 인터넷 검사가 아니라 검증된 병원에 찾아가더라도 마찬가지다. 정신과 상담 및 검사를 통해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도출할 수는 있지만, ADHD가 확실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치료받아야 하는 대상’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사회가 병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격리하고 있는 존재에 대한 호기심은 불안한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잠시 불안함은 접어둔 채, 내면의 오묘한 감정을 마주해 보자. 나와 지나치게 나와 닮아있지만, 사소하게 다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면담 대상자 : 용 / 23세
정보 : 중학교 때부터 상담센터에서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상담과 약물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듬. 대학교 1학년 이후 낮은 학점으로 ADHD와 조증을 의심함. 검사 결과 ADHD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받았지만 콘서타(ADHD 치료제)5), 항불안제, 항우울제 복용중. 1년 반 정도 ADHD 치료를 받았으며 현재 상담은 병행하지 않고, 약물치료만 진행하는 중.
“근데 나는 ADHD는 아니야”
용(가명)은 약물치료를 받으며 본인이 느낀 솔직한 경험을 개인 블로그를 통해 공유했다. 주변인에게 병원을 추천하고, 상담을 해주는 등 성인 ADHD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과 관심도 있었다. 용에게 면담을 부탁한 이유도 바로 그러한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면담을 시작하고, 본인이 ADHD가 아니라고 말하는 용의 모습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검사 받고 의사랑 상담하는데 ADHD 범주에 속하지는 않는대. 불안이나 조증 때문에 갔지만 나는 ADHD라고 생각하니까 약을 먹은 거지."
용이 성인 ADHD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된 건 2022년이었다. 당시 대학교 1학년이었던 그는 코로나 19의 여파로 비대면 수업을 들으며 과제를 미루고, 그로 인해 좋지 못한 성적을 받는 것에 큰 스트레스를 느꼈다. 자신감은 떨어졌고, 과하게 불안했으며 모든 일을 극단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과제를 미뤄서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없다면 인생은 망할 것이고, 인생이 망했으니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주로 했다. 불안감과 우울감을 느끼다가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거나 ‘맨날 싸돌아다니는’ 등 조증이라고 생각되는 모습 때문에 검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2022년 SNS 트위터(현 X) 내 성인 ADHD 검사나 병에 대한 정보가 적힌 트윗이 유행했던 것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 떠올려보면, 2022년은 ADHD라는 병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병’에 대한 자기고백이 이어지던 때였다. 그 흐름은 지금도 계속되어서 최근에는 약물치료 외에도 인지적으로 습관을 개선할 수 있는 어플, 다이어리 쓰기, 명상법, 집중력을 높여주는 운동법 등이 공유되고 있다.
용은 자신의 경험을 지지대가 썩은 롤러코스터로 비유했다. 약속 시간에 자주 늦고, 약속을 잊어버리고, 마감기한까지 일을 미루다가 남은 몇 시간 동안 몰아서 처리했다. 불안은 더 심하게, 자주 찾아왔다. 밤에 불안하거나 넘치는 에너지로 잠들기 어려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롤러코스터가 짜릿한 이유는 나를 떨어뜨리지 않을 지지대가 있고, 이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썩은 지지대로 인해 내릴 수도, 내 손으로 멈출 수도 없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이전처럼 즐겁지 않았다. 용은 치료를 택했고, 치료에 만족하고 있었다. ADHD를 치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용은 본인이 불편을 느낀다면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근데 이게 현대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이잖아. 그 모습을 원하지 않으면 치료를 안 해도 되는 거고, 옛날 수렵 채집할 때는 ADHD가 되게 생존율이 높았대.”
“상담을 등대라고 생각을 하거든. 밤에 배가 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잖아. 등대가 ‘여기로 가면 된다’하고 알려주는 거야. 이 등대 연습(등대를 보고 길을 찾는 것처럼 상담을 통해 나를 관리하는 일)을 100번 넘게 하다 보니까 내가 스스로 등대를 만들 수 있게 됐어. 불안하면 스스로 ‘괜찮다’(라고 하면서) 상담 선생님처럼 얘기하는 거지. 이렇게 계속하다보면 같은 주제로 다시 불안하지 않아. 그걸 되게 많이 연습해야 해. 20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약이 도와준 것도 있었지.”
면담을 진행하는 내내 용은 편안해 보였다. 그는 아침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날 수 있고, 여전히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미뤄버린 것, 그래서 돌이킬 수 없는 것, 늘어난 삶의 무게가 더 이상 그를 짓누르지 않는다. 불편하지 않다면 치료를 받지 않아도 괜찮겠지만, 불편함은 제거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규격에 맞지 않아서 계속 늘어지는 몸과 타들어 가는 마음. 따가운 시선에 내밀어본 어색한 단어들. 도무지 적응하기 어려운 규칙과 설명할 수 없는 자신. ‘불편함’이라고 표현하지만, 불편하다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이들을 상담과 약물을 통해 해결하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상담과 약물은 하나의 방법이며, 절대 유일하지 않다. 어쩌면 용이 인지 치료를 통해 얻었다고 말하는 ‘등대’야말로 뽀모도로 집중법6)이나, 콘서타보다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해답이 존재할 수 있다. 우리는 전두엽에서 도파민 제어 기관을 도려내어 시간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신인류가 아닌, 적당히 괴로움에서 벗어나 죄책감 없이 잠에 드는 인간을 갈망할 뿐이다.
빌어보는 삶
매일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을 의심한다. 기준에 미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실수를 자책하며 불안해한다. ‘고칠 수 있다’는 간증과 ‘고쳐야 한다’는 근거 없는 믿음은 우리를 단지 치료의 대상으로만 만든다. 병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여전히 무엇이 옳은지 알 수 없다. 다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그릇된 삶은 없고 삶의 그릇만 있을 뿐이라고. 거기에 무엇을 담을지, 담겨 있는지는 우리가 정하는 것이라고. 다양한 삶의 형태를, 다양한 몸을, 다양한 정신과 각자의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보는 것이다.
증상에 병명을 붙임으로써 자신을 마주하기 편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증상에 병명을 붙임으로써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도 생기기 마련이다. 성인 ADHD라는 ‘병’ 때문에 행동에 제한을 두고, 가능성을 좁히고, 자신을 경멸할 수도 있다. 끝나지 않는 방황 속에서 매번 유년 시절을 의심하고, 어제의 일을 후회하는 순간은 분명 찾아온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주변의 사물과 환경을 관찰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만들어내는 일은 즐거울 것이다. 병의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사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사회가 필요한 부분을 가져가기 위해 구분했을 뿐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동시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이해하면 다양함을 인정하는 일은 더 쉬워진다.
치료받거나, 치료받지 않거나, 치료를 중단하거나 다시 시작하는 일에는 옳고 그름도 없고, 순서도 없다. 약물의 도움을 받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고, ‘고치는’ 행위에 의문을 던지는 것 또한 당신의 몫이다. 우리는 모두 비정상이며, 동시에 자연스러운 존재니까. 삶이 위태롭고 절망스러운 순간은 있겠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비정상의 세계에 도움을 요청하고 싶다. 여전히 사랑이나 친절, 선의나 다정 같은 마음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돕는 존재이고, 도움받도록 길러졌다. 사회가 매일 새로운 병을 만들어내고, 이름을 붙이며 치료받기를 요구하더라도 규격에서 벗어난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규격을 파괴하고, 이탈하려고 하면서 삶은 지속될 수 있다. 그렇게 도울 수 있고, 도움받을 수 있는 당신들, 사과와 자책이 일상인 사람들이 조금은 뻔뻔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빌어보는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삶이 더 나은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1) 뇌 질환이나 뇌염뿐만 아니라 대기오염, 유해 화학물질 등이 ADHD의 유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조수철. (2014). 생물소아정신의학(이정연. 2022. 재인용).
2)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3) 김명지. 「“집중 잘되는 약 주세요” 30대 ADHD 약 처방 40% 늘었다」. 『조선일보』. 2024.07.02.
4) 구재령. (2024). 정신병은 왜 증가하는가: 성인 ADHD 유행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에 관하여. 문명과 경계, (8), 106.
5) 가장 대표적으로 처방되는 ADHD 치료제로 도파민 재흡수를 억제하고, 중추신경계를 흥분시켜 각성을 돕는다.
6) 용이 면담에서 반복적으로 언급한 인지 치료 중에 하나이다. 25분을 업무에 집중하고, 5분은 휴식 시간을 가지면서 ADHD의 증상 중 하나인 초집중을 활용한다. 시간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휴식 시간이 집중 시간을 넘어가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1980년대 프란체스코 시실로가 제안한 시간관리 방법론이 원형이다. 주로 타이머를 활용하는데 당시 사용된 타이머가 뽀모도로(토마토) 형태였다.
참고문헌
구재령. (2024). 정신병은 왜 증가하는가: 성인 ADHD 유행을 둘러싼 첨예한 논쟁에 관하여. 문명과 경계, (8), 103-151.
김명지. 「“집중 잘되는 약 주세요” 30대 ADHD 약 처방 40% 늘었다」. 『조선일보』. 2024.07.02.https://biz.chosun.com/science-chosun/medicine-health/2024/07/02/N645FCEFQFGC5OBZBFFKFHVTWY/?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biz(2024.07.27. 접속).
박건우. (2016).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의 진단과 처방 양상: 의료화 관점의 해석 [석사학위, 서울대학교]. DBpia.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서울아산병원 질환백과』.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3888
이정연. (2022). 정신의학 지식의 사회적 구성 :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의 보편화. 경제와사회, (136), 30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