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를 위해 OKR 도입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드리는 경고문
인사담당자라면 OKR이라는 단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또는, 그 이상으로 OKR에 대해 심도 깊게 공부한 이들도 분명 많을 것이다. OKR은 Objective & Key Results의 약어로 높은 수준의 목표(Objective)를 설정하고, 그 달성 여부를 수치화된 핵심결과(Key Results)를 통해 관리하는 방식의 성과관리 체계를 뜻한다. 불과 2019년 초만 하더라도 주위 인사담당자들에게 OKR에 대해 물어보면 그게 무엇인지 오히려 되묻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현재 OKR을 모르는 인사담당자는 거의 없다. 2020년 말 HR 관련 종사자 30여 명을 대상으로 OKR을 알고 있는지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OKR을 알고 있었으며, 그중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미 OKR의 도입을 준비하고 있거나, OKR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OKR이 짧은 시간 내 이토록 선풍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구글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OKR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런 인식과 함께 Agile 개념이 OKR과 결합되면서 스타트업 조직에서 OKR 도입에 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OKR을 도입하는 것만으로 우리 조직도 구글처럼 혁신을 꾀하고, 또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정작 OKR의 도입을 고려하면서도 테크니컬한 기법만 이해할 뿐, OKR이 지니고 있는 본질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는 잘 없기 때문이다. 본 칼럼에서는 OKR이 지니고 있는 본질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OKR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MBO(Management By Objectives)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OKR이 등장하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MBO는 1954년 피터 드러커의 저서인 ‘경영의 실제’에서 구체적인 컨셉이 처음 언급되었다. 이름 그대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기준으로 각 직무담당자의 실질적 성과를 관리함으로써 조직을 경영하는 관리도구로서 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피터 드러커가 MBO와 함께 Self-Control(자기 관리)를 함께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즉, 설정된 목표에 대해서 개개인들이 실질적으로 본인의 업무를 주도적으로 관리해나가는 것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이 피터 드러커가 제안한 내용의 본질이다.
가령, 2022년 새 해에 체중을 5KG 감량하겠다는 목표(Objectives)를 설정하고, 매주 또는 매일 본인 스스로 5KG 감량을 위해 운동은 얼마나 했는지, 식단은 잘 관리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면(Self-control) 막연하게 ‘운동해서 살 빼야지’라는 생각을 가진 이보다 체중 감량에 있어서 더욱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60년 대부터 MBO가 실제 경영환경에 접목되면서 ‘관리를 통한 성과 창출’이라는 본질이 조금 변하기 시작했다. ‘평가’ 기능이 강조되면서 Self-Control은 사라지고 하나의 평가도구 정도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곧 2022년 1월 1일 5KG을 감량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1년 간 그 목표에는 전혀 관심 갖지 않다가 2022년 12월 31일 살이 빠졌는지 확인하는 모습과 동일하다.
이처럼 MBO가 경영관리도구에서 평가도구로 변화하면서 몇 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설정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미덕이 되었고, 구성원들은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그 목표 수준을 낮추기 시작했다. 또한, 목적이 평가로 옮겨가면서 커뮤니케이션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목표를 설정한 후 그 누구도 목표를 신경 쓰지 않다가 연말 평가 시즌이 되어서야 다시금 그 내용을 열어보게 된 것이다. 이는 MBO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MBO의 문제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 인식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인텔의 최고 경영자였던 앤디 그로브는 평가도구로 전락해버린 MBO에 다시금 피터 드러커의 철학을 담는 인텔만의 MBO 방식을 고안해냈고, 이는 iMBO라는 이름으로 운영되었다. 당시 인텔에 재직 중이었던 존 도어는 이때 경험한 iMBO를 이후 벤처 투자자로서 활동하면서 본인이 투자하는 회사에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 회사 중 한 곳의 이름은 구글이었으며, 도입된 도구의 이름은 iMBO가 아닌 OKR이었다.
이 같은 흐름을 이해한다면 OKR이 지니는 목적은 평가가 아닌, 실질적인 경영 성과의 창출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목적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OKR의 특성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른 많은 특성이 있으나, MBO와 비교하여 가장 눈에 띄는 핵심 특성은 다음과 같다.
MBO는 일반적으로 1년 혹은 6개월 단위로 목표를 설정한다. 그러나 세상은 빠르게 변하기에 1월에 수립한 목표가 12월에는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평가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러한 이슈는 문제가 아니다. 적당히 현상을 반영해서 평가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OKR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중심으로 일하여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적이다. 이와 같은 목적 하에서 타당성을 잃은 목표는 목표로서 가치가 없다. 따라서, 목표의 타당성을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목표 설정 주기를 3개월로 가지고 간다. 또한, 목표를 운영하면서 변경이 필요한 경우에는 더욱 타당한 목표로 변경한다. 단순히 평가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이는 굉장히 위험한 행위가 된다. 미리 수립한 목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수시로 변경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복해서 말하지만 OKR이 추구하는 것은 평가가 아니며, 개인 간 차등 따위가 아닌 목표 기반의 관리를 통한 성과창출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행위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CFR이란 Conversation-Feedback-Recognition의 약어이자 OKR의 본질적 목적을 관통하는 개념이다. CFR은 지속적으로 성과에 대해 소통하고(Conversation & Feedback), 한 주간의 성과에 대해 서로 인정하고 격려하는(Recognition) 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목표를 설정한 뒤 평가 때나 그 목표를 다시 확인하는 평가 목적의 MBO와 다르게 설정한 OKR이 달성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그 목표를 관리해 나가는 것이다.
목표 달성 여부를 평가하고, 그 평가를 바로 개인의 보상에 직접적으로 연계하는 것이 일반적인 MBO의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 하에서는 사람의 성심이 착한지 나쁜지를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든 목표의 수준을 낮추려는 동기를 지니게 된다. 모두가 목표를 낮게 설정하여 대부분이 목표를 달성한다. 그러나 조직은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OKR의 목적은 반복해서 말하는 것처럼 조직의 성과창출이다. 평가의 결과를 보상으로 반영하는 것이 조직의 성과 창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과감하게 끊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OKR은 그 결단을 한 것이다.
다만, OKR과 보상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무엇이 옳은지 제대로 정의된 바가 없는 듯하다. ‘OKR을 통해 만들어진 실질적 성과를 기반으로 개인의 보상에 반영하면 됩니다’라는 이야기가 가장 정답에 가까운 듯 여겨지나, 그 실질적 성과를 위해서 그렇다면 별도의 평가제도를 따로 가지고 가야 하는 것인지, 또 그 실질적 성과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다양한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모양새다.
이처럼 OKR은 성과관리의 하나인 MBO가 지닌 철학과 지향점을 보다 잘 구현해낼 수 있도록 기존의 MBO 방법론이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KR을 혜성처럼 등장한 완전히 새로운 방법론으로 인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보인다. OKR이 가지는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평가제도로써 도입할 경우 껍데기만 OKR일 뿐, 그 실질은 기존에 수많은 조직에서 실패를 겪어온 MBO방법론과 전혀 다를 바 없다. OKR이 지니는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우리 조직에 도입하려는 OKR이 껍데기 OKR이 아닌지 고민해보자. 이러한 고민이 동반된다면 OKR은 우리 조직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유의미한 도구로서 충분히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