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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Mar 06. 2024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18화

18화. 따뜻한 손길

  A 대학병원 정신의학과로 옮겨 진료를 받고 있었지만, 은혜의 우울 증세와 불안 장애는 더 커져 갔다. A 대학병원은 K 정신의학과보다 훨씬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고, 의사의 면담 시간은 첫날에만 10분 남짓이었고, 그 뒤로는 고작 5분에 불과했다. 대학병원이라서 진료 전과 진료 후에 각각 수납해야 하는 등 절차도 복잡했고, 진료비와 약값은 전보다 두 배로 늘었다. 의사는 은혜에게 약을 조금 더 늘리자고 했다. 아무리 약을 늘려도 이 사건이 끝나지 않는 한 은혜의 증상은 호전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은혜는 알고 있었지만, 의사의 의견을 따랐다.          


  10반 담임 권민호가 오랜만에 은혜에게 연락을 해 왔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은혜가 아파서 학교에 못 나오고 있는 줄 알았다가 지난번에 은혜를 만나고 나서야 수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은혜를 걱정하여 자발적으로 탄원서를 쓰는 움직임이 일었다고 전했다. 

  “아이들만이 아니에요. 예전에 저에게 문자를 보냈던 소은이 어머니한테도 연락이 왔는데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선생님의 교육적인 지도에 동조하는 분들이 처벌불원서를 쓰고 있다네요. 드디어 선생님의 진심이 전해진 것 같아요.”

  “그래요? 너무 고마워요, 선생님!”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처음부터 수업 복귀시키고, 아이들 만나게 했다면 벌써 잘 해결될 일을 교장이 일부 학부모 눈치 보느라 일이 이렇게 커져서 선생님만 고생하시는걸요. 선생님이 너무 착하게 교장이 시키는 대로 해서 더 힘드신 것 같아요. 저도 지난번에 비슷한 일 생겼을 때, 교권보호위원회 강력하게 요구하고 세게 나가니까 교장이 바로 수업에 복귀시키고 아이들과도 오해 풀었잖아요. 아무것도 아닌 일을 이렇게까지 만들어서 멀쩡한 교사를 아동학대자로 몰고... 생각할수록 속상하네요.”

  “그러게요. 내가 대처를 잘 못한 것 같아요... 이제 와서 어쩌겠어요.”

  “죄송해요. 제 말은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무슨 말인지 다 알아요. 샘한테는 고마운 마음이에요.”  

  “처벌불원서 다 받으면 어떻게 전해드릴까요?”

  “홍선영 부장님께 전해 주세요. 제가 교회에서 가끔 선영 부장님을 만날 수 있어서요. 여러모로 정말 고마워요.”           


  주일 예배 후에 선영은 민호에게 받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처벌불원서가 담긴 두툼한 서류 봉투를 은혜에게 건넸다.

  “정 부장, 학부모들 처벌불원서가 꽤 많아요.”

  “너무 감사하네요.”

  “계속 기도하고 있어요. 몸 잘 챙기고 평안한 마음으로 지내요. 다 잘 될 거야.”

  선영이 은혜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감사해요. 부장님.”     



 은혜의 소식을 듣게 된 친분이 있는 예전 동료들, 교회의 목사님과 집사님들도 서로 연락하여 처벌불원서를 작성해 주었다. 처벌불원서가 두툼하게 모이고 나서 은혜는 권 변호사에게 전화했다.

  “변호사님, 처벌불원서를 로펌 측에서 제출하는 게 나을까요, 제가 직접 제출할까요?”

  “다음 주부터 추석 연휴 시작이니까 로펌 통해서 등기 우편으로 제출하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검찰에서 추석 지나면 바로 사건을 법원으로 넘길지 말지 결정할 텐데 그전에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는 게 좋을 듯해요.”

  “그럼, 제가 직접 검찰청에 제출할까요?”

  “네, 직접 제출하면 당일 접수가 되니까 좋을 것 같아요.”

  “변호사님, 처벌불원서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을까요?”

  “사실 피해 당사자라고 사실확인서를 쓴 학생이나 학부모의 처벌불원서가 있다면 영향력이 크겠지만, 다른 학생과 학부모의 처벌불원서는 엄청나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않아요.”

  “아,,,”

  “하지만, 처벌불원서는 많이 있으면 당연히 좋겠지요.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의 근거도 되겠고요.”

  은혜는 처벌불원서 표지를 만들고, 학생과 학부모, 동료와 교회 지인들의 처벌불원서를 구분하여 서류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처벌불원서를 작성해 준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기도했다.     



  검찰청에 도착하여 서류 제출을 마치고 나자 은혜의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검찰에서 부디 처벌불원서를 자세히 읽어 보고, 사건을 법원으로 넘기지 않고 증거불충분이나 기소유예로 마무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며 검찰청을 나왔다.          


  추석이 되어 엄마와 둘이 있던 집이 떠들썩해졌다. 은혜는 마트에서 조카들이 좋아한다는 한우를 등심과 안심, 채끝살 등 부위별로 사 왔다. 아침 일찍부터 엄마를 도와 고구마 샐러드와 잡채도 만들고,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허리와 다리가 쑤셔 왔다. 명절이라지만 결혼한 오빠네 가족이 와서 식사하고 하루 머물다 가는 정도로 가족끼리의 조촐한 만남이었다. 조카들은 볼 때마다 쑥쑥 자랐다. 중학생이 된 이란성쌍둥이 조카 둘이 어느새 은혜보다 키가 훌쩍 커 있었다. 입 짧은 조카들도 버섯과 파프리카를 곁들여 구운 스테이크를 맛있게 잘 먹었다. 이렇게 잠시나마 가족들과 함께 먹고 즐기는 시간에 은혜는 오랜만에 평안을 느꼈다. 통영 여행 이후 디지털 피아노를 사서 연습했던 곡들을 가족들 앞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모처럼 맞이하는 가족들과의 평온한 시간이 한없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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