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향 Mar 13. 2024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19화

19화. 가정법원 송치

  추석이 끝나자 검찰청에서 연락이 왔다며, 권 변호사에게 전화가 왔다. 사건을 가정법원으로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은혜는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가정법원으로 송치한다고요? 그럼, 재판을 받게 되는 건가요?”

  “지방법원으로 넘어가면 형사 사건으로 재판이 이어지는 거지만, 아동보호 사건으로 송치되어 가정법원으로 넘어간 것은 그것과는 달라요. 가정법원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검사가 사건을 약하게 봤다는 것이고, 쉽게 말해서 형사 사건이 아니라서 전과가 남아서 빨간 줄이 남을 일은 없어요. 최악의 경우에 교육 이수 몇 시간 정도 나오고 마무리될 것 같아요.”

  “그래도 재판은 열리는 거죠?”

  “가정법원에서 열리는 재판은 심리 기일이라고 하는데, 흔히 생각하는 재판과는 조금 달라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네에...”     

  권 변호사는 잘된 일이라고 했지만, 검찰에서 기소 유예 정도로 마무리될 거라고 생각했던 은혜에게는 사건이 법원으로 자체가 버거운 일이었다. 과연 이 일이 언제쯤 끝날지, 더 이상 여력이 없었다. 

  은혜는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가 무작정 걸었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인적이 드문 공원 끝 쪽 벤치에 앉아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도했던 것인데, 왜 일이 이렇게까지 변질되어 경찰 조사를 받고, 검찰에서 법원으로까지 넘어가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 암흑 같은 터널의 끝은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가 없어 무참했다. 상황이 생길 때마다 끝없이 휘청거리는 자신을 추스르는 것이 힘겹고 막막했다.      


  권 변호사와의 수임 계약은 수사 단계까지여서 재판 단계로 가면 수임료를 추가로 내야 했기에 변호사 선임료도 더 부담해야 했다. 권 변호사는 자신이 맡았던 사건이니 어느 정도의 금액을 할인해 주겠노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었다.      


  때마침 영심에게 전화가 와서 은혜는 사건이 가정법원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전했다. 영심은 수사 단계에서 변호사의 조력이 너무 약했던 것 같다고 변호사를 탓했다. 

  “경찰 수사 때 변호사가 잘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 근데 정 부장이 두 번씩이나 조사받을 때 그 변호사가 사실 제대로 대응을 못 한 것 같아. 변호인 의견서에 비슷한 판례의 무혐의 결과를 더 찾아 넣고 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가정법원으로 넘어가서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참 속상하네.”

  영심과 통화를 끝내고, 은혜는 재판 단계에서는 다른 변호사를 구해야 하는 걸까, 머릿속이 또다시 복잡해졌다. 이내 그런 고민이 무색하게 권 변호사에게 얼마 후 연락이 왔다.      

  “선생님, 저 더 이상 선생님 사건을 못 맡을 것 같아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실은 제가 이번 대선에서 선거 캠프에 들어가게 됐어요. 그쪽에 신경 쓸 일이 많아서 지금 맡고 있는 사건을 후배들에게 다 넘겼어요. 선생님이 사건을 계속 저희 법률사무소에 의뢰하신다면, 이제는 제 후배 변호사가 맡게 될 것 같아요.”

  “그냥 제 것만 마무리될 때까지 변호사님이 맡아 주시면 안 될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러기에는 제가 너무 바쁘고 능력이 부족하네요. 다른 데 알아보셔도 상관없으니 생각해 보시고 말씀해 주세요.”        


  결국 은혜는 다른 변호사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인맥을 동원하기보다는 이 분야에 경험이 있는 변호사를 찾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인터넷을 샅샅이 검색했다. 사건이 지역 가정법원으로 넘어갔으니 서울이 아니라 지역 법원 근처에 있는 법률사무소에 맡기는 것이 아무래도 사건 관련해서 일을 처리하기에 적당할 것 같았다. 세 명 정도의 변호사와 전화로 상담을 하고, 두 군데 법무법인을 찾아가서 대면 상담도 받았다. 그중에서 법원 근처에 있는 S 법률사무소의 윤민혜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녀는 40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인터넷에 올라와 있던 정장 차림의 단정한 아나운서 느낌의 사진과 달리 민낯에 티셔츠와 면바지를 입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다소 사무적인 말투와 딱딱한 표정이 정감은 없어 보였으나 사건에 대한 판단도 예리하고, 일 처리는 깔끔하게 할 것 같았다. 윤 변호사는 학폭이나 학생 관련해서 사건을 처리한 경험이 꽤 있다고 했다.     

  “혹시 아이들이 선생님의 수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평가했던 자료 같은 건 없나요?”

  “지금 아이들과는 3월 한 달 밖에 수업을 하지 않아서 그런 건 없고요. 제가 학기말이 되면, 아이들이 수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고, 다음 학기 수업에 반영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수업 평가지를 만들어서 받아두거든요. 이번에 휴직하면서 대부분은 버렸지만, 일부 아이들이 작성한 것은 제가 참고하려 챙겨 둔 게 있어요.”

  “그래요? 그걸 좀 보고 싶은데, 시간 되실 때 가져다주시겠어요?”     

  며칠 후 은혜는 그동안의 사건 자료와 향진중에서 3년 동안 가르쳤던 아이들이 쓴 수업평가지를 들고 윤 변호사를 다시 찾아갔다. 윤민혜 변호사는 이번에도 민낯에 편안한 옷차림이었다. 사무실에 있을 때는 편안한 복장으로 일을 하나 보다 생각하며, 은혜는 자료를 담은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선생님 수업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좋네요. 이 수업 평가지를 스캔해서 첨부해도 좋을 것 같아요.” 

  은혜가 건넨 수업 평가지를 꼼꼼히 읽으며 윤 변호사가 말했다.     

  “탄원서는 이미 다 제출했고, 재판 단계에서 저는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판사님께 반성문을 진솔하게 작성해서 제출하면 좋겠어요.”

  “반성문이요...?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초안을 써서 보내 드릴 테니 검토 좀 부탁드릴게요.”

  “그러세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학교에 제출한 상황확인서부터 시작하여 경찰 조사 때 제출한 진술서와 검찰에 제출한 추가 진술서, 동료 교사나 교회 집사님들께 예시로 보여주기 위한 샘플 탄원서 등 지금까지 사건과 관련하여 은혜는 수많은 형식으로 글을 써 왔다. 이제는 반성문을 쓸 차례이다. 태어나서 반성문을 써 본 적이 있던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반성문을 받은 적은 있지만, 은혜가 반성문을 써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며칠에 걸쳐 3장 분량의 반성문 초안을 겨우 썼다. 윤 변호사는 딱히 수정할 게 없다며, 그대로 제출해도 괜찮다고 했다. 바빠서 대충 본 건지 정말로 손 볼 게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타이핑한 내용을 다시 손글씨로 한 자 한 자 눌러 정성껏 옮겨 적었다.    

 

  윤 변호사는 법원에 가서 아이들이 진술했던 내용을 직접 확인하고 나서 연락하겠다고 했지만, 며칠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변호사들이 맡고 있는 사건이 몇 개인지 모르겠지만, 권 변호사나 윤 변호사 모두 은혜의 사건에 많은 시간과 마음을 쏟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당장 구치소나 감옥에 있는 의뢰인의 묵직한 사건에 비해 은혜의 사건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몇 주 후, ㅅ가정법원의 조사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정은혜 선생님이신가요? 저는 ㅅ가정법원 조사관입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은혜의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고 핸드폰을 잡고 있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선생님 사건과 관련하여 조사를 받으러 가정법원에 한 번 나오셨으면 합니다.”

  “조사요...?”

  “네, 시간 언제 괜찮으신가요?”     

  법원 조사관의 전화를 끊고 은혜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가다듬으며 심호흡을 크게 하고, 윤 변호사에게 바로 연락했다.

  “심리 기일이 열리기 전에 판사가 사건을 보다 자세하게 알기 위해 조사관을 통해 조사 명령을 내리는 거니 너무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변호사님도 동행해 주시는 거죠?”

  “가정법원 조사는 경찰 수사와 다르게 보조인이 동행하지 않고, 당사자만 불러서 조사가 이루어져요.”

  “그럼, 저 혼자 가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네.”

  “제가 가서 실수라도 하면 어떻게 하죠? 걱정 돼요.”

  “법원 조사관은 선생님의 잘못을 들추려 하기보다는 선생님의 상황을 더 알기 위해 조사하는 것이니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말씀하시면 돼요.”     


  12월 초, 법원 조사를 앞두고 은혜는 그동안에 제출했던 자료들을 다시 검토하며 준비했다. 교회에 담임 목사님이 은혜의 사정을 알고, 한 번 연락해 보라며 서울에 법률사무소 대표로 있는 부장 판사 출신 변호사의 연락처를 주었다. 뭐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약속을 잡았다. 은혜의 이야기를 들은 판사 출신 최형진 변호사는 교사로서 살아온 그간의 이야기를 판사에게 글로 써서 제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은혜가 써야 할 글이 하나 더 늘었다. 판사님께 보내는 15년 간의 교직 생활을 정리한 글을 쓰다 보니 첫 발령을 받고 지금까지 교직 생활에서 항상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의미 있는 배움을 아이들에게 제공하겠다는 나름의 교육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힘든 상황을 헤쳐 나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 시간들이 아득하게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성실하고 최선을 다해 지도한 결과가 이런 것인가 싶어 덧없고 허망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법원 조사 당일, ㅅ가정법원 1층에서 짐검사를 하고 은혜는 3층 조사실로 올라갔다. 조사관은 아주 사무적인 태도로 은혜를 대했다. 조사관은 은혜의 교육적 신념과 철학은 무엇인지를 우선 물었다. 15년간의 교직 생활을 정리하는 글에도 밝힌 내용이라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건 관련해서 아이들을 왜 세워두었는지, 폭언을 했는지, 다시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사실이 아닌 왜곡된 내용에 대한 답변을 하다 보니 은혜의 말이 장황해졌다. 세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나오자 기진맥진해지고 발끝에서부터 서러움이 밀려왔다.      


  법원 주차장 차 안에서 윤 변호사에게 전화로 조사받은 내용에 대해 전했는데, 수고했다는 말 외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무언가 잘못한 건 아닌지,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후회와 자책감이 들어 또다시 스스로를 괴롭게 만들었다. 윤 변호사가 간결하게 두괄식으로 답변하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한동안 목 놓아 울고 나니 기운이 다 빠졌는지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아침에 사과 반쪽 먹고 나와서 저녁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은혜는 법원 근처 식당에서 돌솥 비빔밥을 한 그릇 싹 다 비우고 나왔다. 그대로 그냥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 옆 건물의 영화관으로 들어갔다. 잠시 현실을 잊고 기분을 전환하는 데에는 영화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12월이라 가족 영화와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주로 상영되고 있었다. 즐겁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선택해서 표를 끊었다. 어떤 정보도 없이, 기대도 없이 본 영화였는데, 꽤 완성도가 높아 즐겁게 영화를 보고 나왔다.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은 현실을 잊고, 아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은혜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사관의 딱딱하고 사무적인 얼굴이 떠올랐고, 미숙하게 답변한 내용이 떠올라 괴로웠다. 이렇게 자책하고 자신을 탓하는 것이 더 힘겨운 일이다. 그러다가 문득 은혜는 자신이 너무나 가엽게 여겨졌다. 흐르는 눈물이 축축하게 베갯잇을 적실 때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 티처스-안녕하세요, 선생님!> 18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