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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Sep 11. 2024

한여름의 부산 여행 (2)

2화. 파친코의 배경, 영도에 가다

  몇 년 전에 소설로 읽고 드라마로도 봤던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의 고향으로, 작품 속 배경이 바로 부산 영도이다. 선자가 물질하던 영도 바다, 한수와 만나는 빨래터, 남포동 시장 등 드라마의 배경이 된 영도가 실제로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했다. 또, 아주 오래전에 가 봤던 태종대도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기에 혼자 하는 부산 여행의 첫 시작으로 영도를 택했다.


  숙소에서 간단히 요거트와 시리얼, 두유로 아침을 해결하고, 영도로 가는 버스를 타러 나갔다. 서면에서 태종대까지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부지런히 숙소에서 나와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갔으나 한 번에 가는 버스를 간발의 차로 아깝게 놓치고 말았다. 아침부터 날은 푹푹 쪘다. 버스를 기다리는 것도 덥고 지쳐서 환승해야 하는 버스를 타고 중간 환승지인 어느 정류장에서 내렸다. 8분 정도 환승 버스를 기다려야 했는데, 잠깐 사이에 얼굴에 땀이 맺혔다. 그때 내 옆에서 부채질을 하며 양산을 쓰고 서 있던 어느 할머니께서 슬며시 내 옆으로 다가와 양산을 씌워 주셨다. 


  "어머, 괜찮은데요~"

  "덥죠~?"

  "네에~ 감사합니다. 그럼, 제가 양산을 들게요."


  할머니는 아니라면서 기어코 양산을 넘기지 않으셨고, 그렇게 잠깐 동안을 할머니의 양산 그늘 아래에 서 있었다. 몇 분 후 할머니가 타려는 버스가 도착했고, 할머니는 조심해서 가라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셨다. 할머니가 양산을 씌어준 건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오래도록 감사한 마음이 남았다. 뒤이어 오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고서야 영도에 진입했다. 차창으로 보이는 영도 바다와 풍경들이 한없이 정겹게 느껴졌다. 



  태종대 정류장에서 내려 조금 걸으니 관광안내소가 보였다. 낯선 여행지에서 관광안내소가 보이면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 법. 들어가니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직원 3명이 있었다. 인터넷으로 대충 봤던 다누비 열차 코스에 대해 먼저 물어보았다.

 "여기서 위로 조금만 걸어가면 광장이 있는데요. 거기에서 티켓 끊고 다누비 열차를 타시면 돼요. 전망대에서 먼저 하차해서 태종대 보시고, 걸어서 조금만 가면 영도 등대가 있어요. 영도 등대 구경하시고, 태종사 들렀다 오시거나 바로 다시 광장으로 오시면 돼요."

  다누비 열차의 소요 시간과 볼거리에 대해서도 안내를 받고, 오후에 갈 국립해양박물관과 흰여울 문화마을, 남포동과 국제시장 등 내가 가려고 계획한 곳의 동선을 추가로 물었다. 나를 응대하는 젊은 청년은 지도에 동선을 그려주면서 버스로 이동하는 방법에 대해서 아주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었다.

  "국립해양박물관에서 흰여울마을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어서요. 영도 입구 쪽으로 갔다가 다시 버스를 타셔야 해요."

  "아, 그럼 시간이 꽤 걸리겠네요. 제가 중간에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요. 그럼, 제가 가려는 곳 근처에 식사할 만한 식당도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남자 직원과 여직원까지 각자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더니 합세하여 로컬 맛집을 몇 군데 추천해 주었다. 

  "우와, 정말 감사해요. 세 분이 너무 친절하셔서요. 괜찮으시면 제가 내일 여행할 장소에 대해서도 좀 더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요." 

  내친김에 다음 날 여행지와 또 다른 맛집까지 안내받고 나왔다. 적극적으로 안내를 해 준 세 명의 젊은 직원들의 태도에 여행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 마음이 따뜻한 양산 할머니와 서비스 정신이 투철한 관광안내소 직원들이 베푼 작은 호의와 친절이 그 지역에 대한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그날 본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고, 모든 곳이 다 좋았다.


  태종대는 아주 오래전 가봤을 때와는 느낌이 조금 달랐다. 번잡한 해수욕장과 달리 푸른 바다를 고요하게 응시할 수 있어 좋았다. 거센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는 어선의 모습이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덥지만 않으면 물멍을 때리고 있어도 좋을 테지만, 그러기엔 8월의 부산은 너무도 더웠다.


  태종대에서 걸음을 옮겨 영도 등대로 향했다. 태종대에서 도보로 오분도 안 되는 거리지만 온몸에 땀이 흘렀다. 흰 등대 윗부분의 빨간색 지붕이 모자를 쓴 것처럼 앙증맞았다. 횃불을 들고 있는 인어 조각상의 모습에서 왠지 자유의 여신상이 떠올랐다. 강렬한 햇빛을 견디기가 힘들어 빠른 걸음으로 한 바퀴 돌고 바다를 감상한 후 다시 다누비 열차를 타러 올라왔다. 가벼운 옷차림에 백팩을 멘 외국인 커플이 벤치에 앉아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종대에서도 서양 관광객들이 종종 보였는데, 해수욕장에 비해 관광객이 적은 영도를 찾아온 외국인들이 있다는 게 새삼 특이했다. 


<영도 등대와 태종대 전망, 태종사>


  다누비 열차를 다시 타니 이미 시간이 12시가 훌쩍 넘었다. 태종사를 패스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순환 열차 티켓을 샀으니 이왕이면 모두 돌아보자는 마음이 들어 열차에서 내렸다. 태종사는 수국이 필 때가 정말 아름다운 절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8월이라 그런지 수국은 힘없이 시들어 있었고 아담한 사찰은 딱히 볼거리는 없었다. 어쩐지, 다누비 열차에서 나와 어느 가족 외에는 내리지 않더라니... 사람들이 패스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군.


  다시 다누비열차로 태종대 광장에 도착한 후 국립 해양박물관을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태종대에서 점심을 먹고 갈까 했으나 관광 안내소 직원들이 알려준 로컬 맛집을 가는 게 낫겠다 싶어 바로 다음 코스로 향했다. 버스에서 보이는 웅장한 건축물을 보고 처음엔 벡스코가 영도에도 있는 줄 알았다. 국립 해양박물관의 입구로 가는데, 건축물에서 느껴지는 위용이 대단했다. 해양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니 2012년 개관한 세계 최초의 종합 해양 박물관으로 해양의 역사, 인물, 문화, 과학 등 해양에 대한 폭넓은 전시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온도와 습도가 높은 뙤약볕에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니 시원한 냉방만으로도 살 것 같았다.  

<국립해양박물관의 외관>


  기획전시실에는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서울까지 배로 운반하는 조운을 맡은 관리인 임교진의 일기 <조행일록>을 통해 조운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를 하고 있었다. 안내문을 토대로 전시 내용을 요약하면 이러하다. 1863년, 세곡 창고를 관할하던 지방관 임교진은 세곡을 거둬 한양까지 차질 없이 운송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까지 맡게 되었다. 열두 척의 조운선으로 금강 웅포에서 출발하여 서해 앞바다로, 다시 한양 광흥창으로 가기까지는 물때와 바람을 잘 만나야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에 만만치 않았다. 25일간의 항해 중에 풍랑으로 배가 침몰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수심이 낮은 경강에서는 배를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무사 항해를 기원하는 축문을 쓰고 검은 돼지를 제물로 바치며 제사를 지내기도 하며 임교진은 무사히 조운을 마치고 익산 군수로 승진했으나 부임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전시관에는 임교진의 조운과 관련하여 당시 지도와 책자, 도량형, 조운 창고 등 참신한 기획으로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특히 임교진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으로 안내문이 박물관 곳곳에 붙어 있어 관람객들과 소통하려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엿보였다. 

<기획전시 조행일록>


  특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곳은 수족관이었다. 아이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수족관을 배경으로 끊임없이 사진을 찍었다.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위아래가 연결된 커다란 통유리로 된 수족관 내부를 걸으면서 사방에서 수영하고 있는 물고기, 가오리, 작은 상어를 비롯한 다양한 해양 생물을 만날 수 있었다. 

<해양박물관 안의 수족관>



  그 밖에도 상설전시실인 해양관에는 바다 관련한 기록과 해양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전시물들이 있었다. 윤선도의 <고산유고>와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비롯한 해양 관련  서적, 바다를 소재로 하는 그림과 바다에서 얻는 재료로 만든 공예품까지 알차게 전시되어 있었다. 항해관에는 모형 선박을 비롯하여 시계, 나침반, 천구의, 망원경, 해안 지도 등 항해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해양관과 항해관의 전시물>


  무엇보다 이곳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인 곳은 해양도서관이다. 1층에 있는 해양 도서관은 커다란 창으로 영도 바다가 한눈에 내다보여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다. 창을 향해 놓인 테이블과 안락한 의자는 어느 카페보다도 더 편안한 공간이었다. 입구 쪽에 벽면 가득 천장까지 높이 진열된 책들은 그것 자체가 훌륭한 전시물 같았다. 서가에는 해양도서관의 특색에 맞게 해양 문학, 해양 영토, 해양사 등 해양 관련 자료가 많이 소장되어 있었다. 


  작년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해양박물관에 간 적이 있다. 그곳에도 해양도서관이 있었는데, 내부 인테리어가 아름다워서 읽지도 못하는 고서적을 펼쳐 놓고 포즈를 잡으며 일행들과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네덜란드에 비해 규모 면에서나 소장 자료, 건축물의 아름다움 등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의 해양박물관과 해양도서관이 훨씬 더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에서는 꽤 비싼 돈을 지불하고 관람했는데, 이런 멋진 곳이 무료라니. 우리나라의 여행지를 다니면서 느끼는 점은 유적지나 박물관 같은 곳의 입장료가 굉장히 저렴하고 내외국인의 구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외국 여행을 가 보면 외국인에게 더 비싼 입장료를 받는 경우도 많고, 모든 여행지의 입장료가 비싸서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데,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외국인은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해양도서관 내부와 도서관 앞 풍경>


  해양박물관에 도착했을 때가 이미 1시가 가까운 시간이 되어 점심을 먹고 관람을 하려 했으나 근처에 마땅한 식당이 없었다. 얼른 전시를 보고 관광안내소에서 추천받은 로컬 식당으로 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알찬 전시관을 보다 보니 시간이 3시간 가까이 흘러 있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해 현기증이 났다. 가지고 있던 초콜릿과 사탕으로 급히 당을 보충했다. 


  영도의 관광지를 중심으로 다녔기 때문에 파친코의 배경이 되었던 영도의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번잡한 관광지와 다른 영도의 매력이 있었다. 나중에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알게 된 사실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내려온 수많은 피난민들이 가족의 생사를 알기 위해 가는 곳이 영도 다리였다고 한다. 북한 피난민들이 월남하면서 가족들과 헤어지는 상황에서 했던 말이 "영도 다리에서 만나자."였다. 그래서 영도 다리 일대에는 가족을 만나거나 소식이라도 듣고 싶어 찾아오는 피난민들로 넘쳐났단다.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서인지 영도 다리 일대는 새 점을 보는 사람을 비롯하여 많은 점쟁이들의 영업장이 생겨났다고 한다. 

  흰여울 문화마을도 보고 영도 도서관을 비롯하여 영도의 곳곳을 좀 더 느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나의 체력은 바닥이었고 허기를 채우는 게 시급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국제시장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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