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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Nov 12. 2024

가곡을 향유하는 밤

배우 강석우와 함께 하는 가곡의 향연(시와 가곡, 추억의 페이지)

  배우 강석우 씨가 가곡을 작사작곡 한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강석우 배우가 2022년 1월까지 6년 넘게 진행했던 나의 최애 라디오 프로그램인 CBS <아름다운 당신에게>에서 종종 그가 작곡한 가곡을 들려주곤 했기 때문이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강석우 배우가 색소폰 연주도 즐겨하고, 클래식이나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공자도 아닌 그가 만든 가곡을 듣고, 전문 음악가의 작품에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서정적인 노랫말과 아름다운 선율에 깜짝 놀랐다.


  얼마 전 경기아트센터에서 배우 강석우와 함께 하는 <가곡의 밤> 음악회가 열렸다. 음악회가 평일 저녁이라 서둘러 퇴근을 하고, 저녁도 제대로 못 먹고 경기아트센터로 향했다. 퇴근 시간이고 비까지 와서 길이 좀 막히긴 했으나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로비에서 좌석 확인을 하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는데, 분위기 있는 아름다운 중년 여성과 눈이 잠깐 마주쳤다. 그녀가 누구인지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강석우 배우의 아내였다. 하마터면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할 뻔했다. 간간이 텔레비전에서 강석우 씨와 함께 출연한 그녀를 보고, 연예인보다 더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실물은 더 아름다웠다.   



  강석우 배우는 가곡을 만들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곡은 시에서 시작되어서 노랫말이 참 아름다워요. 최근에 세상의 말들을 들어보면 가시 돋치고 험한 말, 상처를 주는 말이 참 많잖아요. 이런 가곡을 학교에서 많이 안 가르쳐서 그런지, 요즘은 가곡을 듣는 사람이 너무 적은 것 같아요. 이러다가 서정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곡조의 우리 가곡이 사라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고 아쉬웠어요. 후대에게까지 우리 가곡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에 능력도 없는 제가 무리하고 있네요. 지금 11곡을 만들었는데, 능력이 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보려 합니다." 


  음악회는 성악가들이 가곡을 부르고, 중간중간에 강석우 배우가 직접 자신이 만든 가곡에 대해 설명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더욱 공감하며 즐길 수 있었다. '4월의 숲 속'은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의 가곡이라 라디오에서 나올 때에도 흥얼거리면서 즐겁게 듣던 곡이었다. "이 곡은 <아름다운 당신에게> 청취자들이 많이 좋아해 주었던 곡인데요. 제가 제목을 잘못 지었어요. '4월의 숲 속'이라서 4월에만 신청하더라고요. '온 계절의 숲 속'이라고 지을 걸 그랬어요." 강석우 씨의 너스레에 좌중에 폭소가 터졌다. 이어서 바리톤 송기창 씨가 처음에 별로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아 다시 만든 곡이라는 '가을 그리고 겨울', 이별한 남자의 처절한 마음을 담은 '그리움조차', 대관령과 한계령은 있는데 미시령은 없어서 만들었다는 '미시령'에 대한 설명과 노래가 이어졌다. 몇몇 곡은 클래식 기타의 반주가 더해졌는데, 즉석에서 관객의 신청을 받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연주곡을 들려주기도 했다.


  나에게 특히 인상적이었던 노래는 '그날의 그 바람은 아닐지라도'였다. 강석우 배우가 빈 여행을 하다가 하일리겐슈타트의 베토벤이 살았던 집을 보고 나오는 길에 작은 공원에서 베토벤 동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동상만 봐도 마냥 좋았다고 한다. 마침 가까이에 있는 예배당에서 종소리가 울렸는데, 베토벤이 당시에 청력을 잃어가고 조카의 양육권 다툼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해 질 무렵 이 공원을 산책하고, 기도하며 마음을 달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마치 1802년 베토벤의 뒷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그는 빈으로 돌아가 호텔방에서 그 느낌을 담아 새벽 3시까지 글을 쓰고, 아내에게 들려주었는데 자신이 쓴 글을 읽다가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는 감히 베토벤을 위로하겠다는 마음으로 헌정곡을 만들었으며,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멜로디를 삽입하여 작곡을 했다고 소개했다. 


  그 밖에도 가곡 '밤눈'을 만들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 강석우 배우가 송창식의 노래 '밤눈'을 좋아해서 많이 들었는데, 문득 이 좋은 노래를 가곡으로 만들고 싶었단다. 그 노랫말이 최인호 작가의 글인 것을 알게 되었고, 최인호 작가의 부인으로부터 글 사용료는 안 받을 테니 곡을 잘 만들어서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드리라는 허락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가곡 '내 마음의 왈츠'는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시국에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발랄한 왈츠곡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베르디는 오페라 '리골레토'를 만들고 아리아 '여자의 마음'을 밖에서 절대 부르지 말라고 막았답니다. 이유는 미리 노래를 알고 오페라를 보면 흥이 떨어진다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저는 '내 마음의 왈츠'를 여러분이 마음껏 즐기고 퍼뜨리셨으면 합니다. 카메라로 찍어도 좋고, 영상 촬영을 하셔도 됩니다." 강석우 배우의 마지막 곡을 마음껏 촬영하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관객석에서는 너도나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강석우 배우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객석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고, 중간중간에 관객들에게 '동무생각', '앞으로', '보리밭' 등의 가곡을 직접 부르도록 자연스럽게 이끌기도 했다. 가곡에 대해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며, 관객과 활발하게 소통하는 베테랑 진행자의 면모가 그대로 느껴졌다. 오랜만에 따뜻한 노랫말과 아름다운 곡조의 우리 가곡을 오롯이 즐기며, 마음까지 정화되는 시간이었다. 강석우 배우의 바람대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가곡을 향유하여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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