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도 하늘에 날지 못하게 할 정도로 국가적인 관심과 협조를 받는 수능이 다가오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수능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오랜만에 인문계고로 오니 새삼 예전학교의 수능을 앞둔 풍경 몇 장면이 떠오른다.
전에 근무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수능을 앞두고 출정식이라는 것을 했더랬다. 1,2학년 후배들이 선배들에게 정성스럽게 쓴 손편지와 초콜릿같은 선물도 전하고, 운동장에 모여 촛불을 들고 붉은 악마의 카드 섹션 만큼 인상적인 수능 대박 기원을 담은 문구를 만들어 선배들을 응원했다.
이쁘게 웃는 얼굴의 돼지 머리를 상 한가운데 커다랗게 올려 놓고, 시루떡과 과일 등을 푸짐하게 차려 놓고 수능대박을 기원하는 고사도 지냈었다. 교장, 교감, 학교운영위원들을 비롯한 학교 주요 인사들을 필두로 학급 대표 학생들까지 경건하게 절을 올렸다. 고사상의 웃는 돼지는 입에는 두툼한 돈봉투로, 콧구멍과 귓구멍에는 돌돌 말아 꽂은 앙증맞은 돈말이로, 구멍이란 구멍은 돈으로 다 막아버려 웃으며 죽은 돼지를 또다시 질식시켜버릴 태세였다.
이 모든 풍경이 지금과는 사뭇 달라 아주 오래된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수능이라고 해서 특별한 의식이나 시끌벅적한 응원도 없이 차분하게 수능을 맞이하고 있다.
수능이 다가오고 있다. 수능을 맞이하는 풍경은 달라졌지만, 수험생을 비롯하여 수능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긴장된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수능을 준비하는 여러 손길들이 벌써부터 바삐 움직이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시험장을 설치하는 우리 학교는 요즘 몇 차례에 걸쳐 수능 방송 점검을 하고 있다. 점검 내용은 교실 내 방송시설과 방송 상태, 시험장 환경(커튼, 형광등, 책상 의자 상태) 등이다. 방송 담당 선생님은 여러 차례 관련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 담임 교사 협조 사항
- 담임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안내 부탁드립니다.
- 학생 20명 이상이 교실에 있어야 하므로, 해당 시간에는 특별실 이동수업이 불가능합니다.
⊙ 5교시 1-3학년 수업 교사 협조사항
- 2차 점검에는 각 학급의 공기청정기, 에어컨, 온풍기 등 장치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로 진행됩니다.
- 5교시 교과 선생님께서는 5교시가 시작하면 창문을 모두 닫고 온풍기가 꺼져있는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 교실의 모든 창문을 닫고, 학생들 정숙 지도 부탁드립니다.
수능 시험에서 방송 상태는 너무나 중요하다. 특히 외국어 영역 듣기 평가에서 방송에 문제가 생긴다면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한 감당하기 힘든 후폭풍이 밀려오기 때문에 사전 방송 점검은 필수적인 일이다. 세 차례의 방송 점검 때마다 외부에서 점검단이 방문하여 방송상태를 면밀히 확인하고 돌아간다. 하필 방송 점검 때 수업이 겹치면 이동실 수업이나 수행평가와 같은 해야 할 수업을 제때에 진행하지 못하긴 해도 그정도는 기꺼이 감내할 일이다.
어제는 교직원회의 때 교무부장이 수능 준비사항에 대한 연수를 하고, 날짜별로 수능 관련 일정을 적은 달력까지 한땀한땀 정성껏 만들었다며 전직원에게 배부했다. 수능 시험장을 설치하는 것도 은근히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학생들이 버려야 할 책이나 종이류를 수거하고, 교실에 책상 속과 사물함을 비우고 대청소를 해야 한다. 교실 안에 있는 사물함은 복도로 이동하고 사물함을 드러낸 자리의 교실 바닥도 깨끗이 닦아야 한다. 전교실의 사물함을 빼내는 작업은 별도의 인력을 고용한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깨끗해진 교실에 책상을 시험 대형으로 정렬하고 시험장 내 부착물을 부착하면 비로소 시험실 설치가 마무리 된다.
예전에 담임할 때 시험실 설치하면서 아이들과 교실 벽에 낙서를 지우고 균형이 안 맞는 책상이나 의자 밑에 종이를 접어 테이프로 고정시키느라 한참동안 애를 먹었던 적도 있었다. 올해는 비담임이라 시험실 설치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조금은 가볍다.
수능 시험을 보는 일 주일 간은 전 학년 수업이 원격 수업으로 진행된다하니 원격 수업준비도 슬슬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