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드라마 편집 하기
2022년 2월.
만 나이 35살의 범띠는 30대 중반을 넘어 후반을 향해 달리고 있다. 운이 좋게도 드라마 편집 감독님 밑에서 2년 동안 일을 배웠고, 현재는 '와이낫 미디어'에서 편집일을 하며 만족스럽게 살고 있다. 오늘날 편집을 이렇게 즐기면서 하기까지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수많은 선택이 있었고, 수많은 과정과 결과 그리고 실패로 구성된 현재의 나는, 앞으로 다가올 선택을 대비하려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일주일에 최소 2편의 비디오를 빌려보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었는데, 이때부터 아마 할리우드 키드의 꿈을 꿔왔던 것 같다. 어느 날도 마찬가지로 아버지가 빌려오신 영화를 함께 보고 있었는데 잔인한 19금 영화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19금 영화를 아버지와 함께 보는 것도 대단했던 것 같다. 당시에 이 영화를 보며 충격을 받았는데 제목이 '황혼에서 새벽까지'다. (조지 클루니 동생으로 나온 쿠엔틴 타란티노가 어릴 때는 정말 무서웠다.) 후반에 셀마 헤이엑의 장면은 지금까지도 그 충격이 이어져 오는 것만 같다. '이런 영화인 줄 몰랐어'라는 듯한 아버지의 표정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비디오 대여료가 신 프로는 2,000~1,500원, 구 프로는 1,000~500원이었다. 신 프로일수록 가격대가 비쌌고 구 프로일수록 가격이 쌌다. (어떤 곳은 하루 만에 반납해주면 비디오 하나를 더 빌려주기도 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에는 항상 어머니가 비디오를 빌려주셨는데 그 외에는 용돈을 모아서 비디오를 빌려봤었다. 새로운 영화를 빌려 보는 게 아니라 보던 것만 빌려봤다. 로보캅2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100번은 봤다. 초딩이 빌려볼 수 없는 영화들이었지만 대여점이 단골이라서 어렵지 않게 빌려봤었다. 단칸방에 살았던 어린 시절에는 비디오 빌려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영화 속 세상은 내가 살고 있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고 나는 그곳이야말로 유일한 탈출구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사촌 형을 따라 교회 중고등부에 들어가게 되었다. 외아들로 쭉 자라온 나에게 형들은 친형이나 마찬가지였다. 교회에 마침 새로운 전도사님도 오셨는데 8mm 소니 캠코더를 가지고 계셨던 분이었다. 캠코더를 본 나의 눈빛은 로보캅2를 빌려보던 그때의 눈빛으로 돌아갔다.
주말이 신났다. 얼른 일요일이 오기를 바랬다. 내 손보다 더 큰 캠코더를 들고 무작정 찍었다. 교회 친구들도 찍고 풍경도 찍고 테이프 하나로 찍고 또 찍었다. 그런데 촬영만 해서는 내가 원하는 작업물을 만들 수 없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프리미어가 대중적인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무식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사촌 형과 나는 캠코더를 텔레비전에 연결하고 공 VHS를 넣고 편집할 부분만 재생해서 녹화를 떴다. 그땐 몰랐는데 나름대로의 리니어 방식이었다.
신세계였다. 사촌 형 방은 편집실이었고 난 편집 감독이 되었다.
화장실에 남자가 들어갔는데 나올 때는 여자로 나오다니...
난 미친놈이 되었다.
70살까지 편집하기(2)에서 계속...
불혹의 나이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항상 고민되는 것이 있다. 과연 70살까지 편집을 할 수 있을까?
작품을 같이하는 분들이 언제까지 할 거냐고 가끔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70살까지 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우리가 이 일을 오래 하기 위해서는 첫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당신의 가슴에 불을 지폈는지, 무엇이 당신을 미치게 했는지. 필자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느꼈던 경험과 감정들을 글로 적음으로써, 본인은 물론이고 이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응원과 희망이 되고 싶다. 우리는 70살까지 편집 충분히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