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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 버드나무 Dec 06. 2021

07. 나무가 있다면, 거긴 자연이 아닌 인공일 거야

숲과 나무가 자연스러운 당신에게, 아이슬란드 풍경은 조금 낯설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아무래도 본인 기준에서 세상을 판단하게 마련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우리는 ‘나무’를 보면 ‘자연’이라고 여기고, 숲을 보면 ‘자연이 가장 자연다운 상태’로 여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적막한 도로를 달리다가 어딘가에서 나무를 발견했다면, 그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 즉 자연 그대로가 아닌 인공 조림을 통해 가꾼 환경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이슬란드 숲에서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그냥 일어서!(Stand up!)”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여긴 큰 나무가 귀하고 울창한 숲이 드물다.      


삼림지대가 전 국토의 2% 미만인 아이슬란드는 실제로 유럽 내에서 삼림률이 가장 낮은 나라이다. 낮은 일조량과 변덕스러운 날씨, 잦은 화산 폭발로 애초에 나무가 빠르게 생육되기 어려운 환경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손길이 닿기 전에는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자라서 우거진 나무들로 국토의 40%가량이 삼림으로 덮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천 년 전 바이킹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건축, 제련, 선박 제조, 목축, 취사와 난방 등을 위해 거의 벌목해 버렸고, 한번 파괴된 자연이 다시 복원되기까지는 너무나 긴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열심히 조림작업과 보호활동을 한 덕에 동부 지역과 수도에서는 제법 울창한 숲을 만나 볼 수 있다.

 

열심히 조림한 결과 레이캬비크와 동부 국립공원에서는 제법 울창한 숲들도 만날 수 있다.[사진출처: 좌(www.guidetoiceland.is), 우(www.east.is)]

나무가 희박한 대신 이곳엔 툰드라 지대의 특성답게 이끼가 풍부하다. 용암지대를 두껍게 덮은 이끼는 부드러운 초록 융단처럼 포근하고, 동화 속 딴 세상처럼 몽환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누군가 내게 아이슬란드에 머무는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자연경관을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끼를 꼽는다. 가슴 뻥 뚫리게 청청하고 시린 바다, 지구가 최상으로 만들어 낸 맑은 공기, 도무지 심연을 헤아릴 수 없는 검고 푸른 빙하, 온몸으로 봄을 알리는 황홀한 보랏빛 루핀 꽃밭... 그 모든 아름다운 장면들 보다도 더욱 생경하고 신비로웠다. 날카롭고 거친 암석 지대를 빼곡하게 뒤덮은 이끼는 마치 세상의 모든 미움과 상처를 감싸주는 듯 자애로웠다. 그리고 왠지 ‘부드러운 것이 결국 강한 것을 이긴다’는 희망의 증표처럼 느껴져 고요한 위로가 되곤 했다.         


거친 용암지대를 두껍게 뒤덮은 이끼는 언제 봐도 신비로운 풍경이었다.(사진출처: Pixabay)

이끼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오랫동안 애용해 온, 고맙고도 소중한 존재이다. 오래전 집을 지을 때는 지붕을 덮는 보온재가 되기도 했고, 현대 의약품이 없던 시절엔 아플 때 복용하는 약이었으며, 먹을 게 부족했던 가난한 날들엔 빵이나 수프에 넣어 먹던 식량이었다. 최근엔 매력적인 관광 경관으로, 잠재력 있는 의약·뷰티 산업 원료로서도 조명을 받고 있다.

자원이 부족했던 아이슬란드에서 이끼는 지붕을 덮는 보온재로, 아플 때 쓰는 약재로, 빵이나 스프에 넣는 식재료로 널리 사용되었다.[사진출처: 좌(Pixabay), 우(구글검색)]

만약 당신의 아이슬란드 여행길에서 이끼를 만난다면, 자신도 모르게 슬며시 뻗어 나가려는 손과 발을 유의해야 한다. 폭신하고 매끄러워 보이는 촉감, 누르스름하고 푸릇푸릇하고 칙칙하고 거무튀튀한 다채로운 색감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유혹적이다. 하지만 이끼들은 매우 연약해서 함부로 밟거나 만지면 쉽게 훼손되고, 또다시 복구되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고 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외부인에게 개방적이고 친절하기로 유명했던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최근 들어 “관광객이 반갑지 않다”라고 응답하게 된 것도 자연을 함부로 대하는 무례하고 무지한 여행객들 때문이다. 사진을 찍겠다고 이끼를 밟고 드러눕거나 아예 한 움큼씩 뜯어가는 사람들, 무법자의 쾌감에 도취되어 오프로드를 질주하는 사람들, 지정된 캠핑장이 아닌 곳에서 불법 캠핑하는 사람들, 간헐천과 호수에 동전을 집어던져 망가뜨리는 사람들의 야만성에 큰 충격을 받았단다. 위대한 자연 앞에 늘 경외를 품고 살아온 이들, 한번 파괴된 자연이 다시 회복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일찌감치 깨달은 이들이기에 더욱 경악스러웠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아이슬란드 정부가 최근 이런 동영상까지 만들어 배포했을까. “당신들이 날 boss처럼 대해주면 나도 moss로 살 수 있어요”라니... 참 귀여우면서도 간절한 대사가 아닐 수 없다.    

https://youtu.be/iL7YITJdLMo


“Don’t step on the moss!”

아이슬란드에 간다면 이들의 호소를 외면하지 말고 기억하자.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만 바라보고, 마음으로만 어루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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