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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h di Oct 29. 2024

무뎌진다는 복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 모두에게 주어지는 복

얼마전, 어김없이 야근을 하고 거의 막차를 탄 채 집을 가던 길이었다.

친한 박사과정 선생님과 통화를 하면서 문득 이런 이야기를 했다.


'무뎌진다는 게 어쩌면 좋은 거 같기도 해요.'

이제 코스웤의 거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우리 둘은 대학원에서 별의별 경험을 했다. 각자.


어느순간 예전에는 '헉' 했거나, '하' 했던 일들이 이제는 덤덤히 '그랬구나'라며 넘어가는 우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올해 초만 해도 우리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던 일들이 더이상 우리에게 스트레스가 되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생각난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종교를 가진 사람으로, 내 종교는 기독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성경 말씀, 설교 말씀은 내 일상을 차지한다.

올해 들었던 말씀 중에 '무뎌짐의 복'이라는 설교가 생각났다.


설교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고난을 경험한다. 물론 그 고난들은 억울하기도, 화가 나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그 고난 속에 있더라도 크게 힘들지 않게 된다.

점점 무뎌지는 것인데, 그것이 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연약한 부분을 단련시키시는 과정으로, 그 연약한 부분이 부딪히고 고난 받으며 굳은살이 만들어지고, 나중에 그 연약함으로 같은 어려움을 마주하게 될 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히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들은 내용을 정말 짧게 요약한 것이기에 그 안에 담긴 모든 의미를 설명할 수 없다. 단지 내가 당시 들으며 마음 속에 새겨진 내용만 내 머릿속에 담아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하튼, 박사과정 선생님에게 '헛, 우리 나누는 이야기 예전에 비슷하게 교회에서 들었던 거 같아요'라며 무뎌짐이란 것이 과연 우리에게 복일까? 아니면 어떤 것일까? 잠시 나누었다.


무뎌지는 거? 사실 싫다.

아프고 싶지 않고, 고통 받고 싶지도 않고, 고난은 더더욱이 싫다.

근데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필연적이라는 생각이 점점 들어간다.


예전에는 어른들을 보며, 왜 저렇게 담담하지? 왜 저렇게 무덤덤하지? 라고 생각했다.

지금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청년으로서 생각해보자면 어른들의 무던함, 담담함은 청년의 시기에 경험했던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왜냐면, 슬픔과 힘듦에만 무덤덤해진 것은 아니고, 기쁨에도 무덤덤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소리내어 크게 '하하하' 웃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도 받아들이는 나의 주머니가 커졌다.

내가 유독 연약하고, 힘들어하는 부분들이 점점 아픔을 통해 단단해져간다.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복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면 뭐 받아들여야지.


조금 더 단단해져가는 모두가 고난과 어려움 가운데 힘듦만 있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도 야근 중인데 주저리 쓰고 싶어 들렸다 간다.

야근도 무뎌진다. 이제 야근은 내 인생임.


대학원생은 왠만한 초인 혹은 존예보스일 거 같다.

내가 봤을 때 나는 존예(존내예민)보스에서 점점 초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여하튼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 모두 힘내자고요.

오늘이 화요일인게 안 믿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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