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덕 사장님으로부터 배운 인간관계
"불판이나 닦으세요 사장님." 이후로 더 이상 그녀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았다. 통쾌했다.
고교시절, 나는 엄청난 짠돌이였다. 교내 매점도 일주일에 1번 꼴로 갔으며, 교복을 입는 것이 좋았다. 왜? 옷을 사지 않아도 됐으니까. 매일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학교 - 집 - 학교 - 집이 내 고교시절의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수능이 끝났을 때, 많은 돈이 쌓여있었다.
20살, 봉인 해제다! 그동안 했던 공부에 대한 보상심리 때문인지, 소비 경험이 부족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매일 술을 마시며 모아둔 돈을 흥청망청 써버렸다. 이대로라면 부모님께 돈을 요구할 것 같았다. 나는 성인이라면 자기 돈은 스스로 벌어서 써야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더 이상 용돈을 받지 않겠다고, 앞으로 내 돈은 내가 벌어서 잘 관리하겠다고 부모님께 선언했다.
대학교 첫 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점점 바닥이 보이는 잔고를 채우기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야만 했다. 아직 아르바이트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경력직을 선호하는 면접에서 매번 거부를 당했다. 그렇게 알바천국 앱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일자리를 찾고 있었다.
다섯 번의 면접에서 떨어진 이후에, 속는 셈 치고 갈비 무한리필 집에 지원했는데 합격했다. 난생처음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유니폼을 입었다. 고깃집은 힘들다는 말이 많았지만 나에겐 그런 것을 가릴 시간이 없었다. 빨리 돈을 벌고 싶었고, 경험도 쌓고 싶었다.
나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 30분까지 총 5시간 30분을 일했는데, 낮시간대에는 손님이 적다고 해서 홀서빙은 나 혼자서 담당했다. 다행히도 불판 청소는 주방 이모와 매니저님이 담당하신다고 해서 한 시름 놓았다.
사실 제일 걱정했던 것이 불판 청소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순조롭게 2주가 흘렀고, 나름 능숙해져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나더러 불판을 닦으라는 것이었다. 손님도 그리 많지 않은 날이었다. 분명 면접 때도 그랬고, 근 2주 동안에도 불판은 절대 닦지 마라고 했던 그녀가 불판을 닦으라고 하는 것이다. '까라면 까야지..' 일단 빡빡 닦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매장 구조상 불판을 닦고 있으면 홀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불판을 닦으면서 동시에 홀을 봐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내가 무슨 눈이 하나 더 달린 것도 아니고, 어떻게 확인하라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사장님은 불판을 닦으면서 수시로 나와서 홀을 확인하라고 하셨다.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바로 입증하듯이 바로 손님이 왔음에도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뒤늦게 손님이 오신 것을 확인한 나는 주문을 받으러 뛰어갔지만, 이미 사장님이 처리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면 자기가 홀을 보던지..'라고 속마음으로 100번 말했다. 이후 한번 더 손님을 놓쳤다. 사장님이 그 자리에서 나에게 말했다. "일 그따위로 할 거야?" 억울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논리 정연하게 말했다.
"불판을 닦던지 홀을 보던지 둘 중 하나만 하고 싶습니다. 같이 병행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이대로라면 홀이 돌아가지 않을것만 같아서 과감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장님은 눈이 돌아갔다.
그리고 사장님은 나에게 ....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