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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고리즘 Sep 10. 2021

불판이나 닦으세요 (下)

악덕 사장님으로부터 배운 인간관계

이전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이런 것도 못하면 나중에 어디서 일 할 수 있겠어?"라고 윽박을 지르는 것이었다. 손님들은 고기를 씹으며 나와 사장님의 눈치를 보는 듯했다. 일단 월급은 받아야 하니, 무한 죄송합니다를 시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사장님의 불판에 대한 고집은 계속되었다. 똑같은 나날을 2주간 더 버텼다. 



"너 일 그따위로 할 거면 내일부터 나오지 마." 사장님이 째려보며 말했다. 마침 그만하겠다고 말씀을 드리려던 찰나였다. 나는 '나이스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감사했습니다. 입금해주세요." 유니폼을 벗고 나가버렸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했기에 돈은 반드시 받을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장님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는지 당황한 기색이 보였다.



그만두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내 근로계약서에는 주휴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명시되어있었다. 당시 알바가 처음이던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속였던 것이다. 또한 주방 이모님으로부터 들은 바로는 불판을 담당하시던 매니저형이 사장님과 싸워서 다음 달에 그만 두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매니저를 또 고용하기에는 인건비가 아깝다고 생각하신 사장님은 나에게 불판과 홀을 동시에 시키려 했던 것이다.



정말 악덕 사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후 나는 다른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이번엔 월, 수 , 금 10시간 풀타임 아르바이트였는데, 오픈부터 마감까지 도맡아 해야 했다. 힘들 것이라 예상했지만 사장님도 착하시고 업무 환경도 전보다 훨씬 좋아서 재미있게 일했다. 




어느 주말, 한가로이 게임을 하며 쉬고 있었다.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사장님 (고기)'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을까 말까 고민했지만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서 일단 받았다. 


" OO아~~ 잘 지내지? 우리 OO이가 없으니까 가게가 돌아가지가 않아~~" 


나보고 일 못한다. 그따위로 하지 마라.라고 소리쳤던 사람이 맞나? 잠시 귀신이 들린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했다. 나는 저 사람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저녁 시간에 사람이 부족해서 

우리 OO이 같은 일 잘하는 사람이 급해 지금~ " 


가식 섞인 목소리임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 안 할 건데요? 저 지금 풀타임 알바 잘하고 있어요. 사장님도 훨씬 착하시고, 주휴 수당도 챙겨주는 곳에서요. 어디인지는 말씀 안 드릴 거예요."


나는 약간의 감정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 네가? 너를 써준다고? 너같이 일 못하는 애를?"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사람 말이 10초 만에 이렇게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20년 살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잠시 기억에서 잊고 살았던 과거의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갔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좋게 말하면 대담하고 통쾌한 말, 나쁘게 말하면 싹수가 없는 말이었다.



"불판이나 닦으세요, 사장님."



그렇게 좋아하시던 불판을 닦으라고 말했다. 조금 선 넘은 것 같기도 했지만, 통쾌했다.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이후로 그녀에게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 고깃집은 집 앞에 있어서 종종 지나치는데, 지나칠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군대에서도 그 정도로 악질인 선임이나 간부를 본 적이 없다. 이 글에 담지 못한 사소한 사건들이 아주 많다. 아직까지도 장사가 잘 되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욕심이 가득하고 위선적인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최대한 이익을 보려고 한다. 이게 나쁜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챙기느라 바쁘다.



또한 사람을 조종하는 것에 타고났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가스 라이팅을 잘 구사한다고 해야 할까? 이런 사람들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내가 첫 알바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녀는 "네가 처음이라 잘 모르나 본데,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라고 내게 수없이 말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조종하려는 최고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이후에도 여러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그곳의 사장님들은 그녀와 매우 달랐다.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줬으며, 공과 사를 확실히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와 비교되곤 했다. 내게 그다지 좋은 경험은 아니었지만, 사람을 보는 눈을 길러주는데 이바지 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덕분에 인간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고깃집은 다신 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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