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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 류 Aug 09. 2021

행복이 별건가

먹방 영재

 누군가 나에게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먹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릴 적 찍힌 사진들은 항상 숟가락과 함께였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밥그릇에 붙은 밥풀들을 물 묻힌 숟가락으로 떼어먹었다고 하니 이런 부분에서는 응용력이 영재급이라나. 여자지만 웬만한 남자들만큼 잘 먹어서 20대 초반, 설레는 마음으로 나간 소개팅 자리에서 두 세번 먹으면 없어질 것 같은 파스타를 배부른척 먹은뒤 돌아오는 길에 간식을 잔뜩 사 먹은 서러운(?) 경험도 있었다.

 나는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루에 최소 3번은 행복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재직 중인 회사에서 신입 교육을 받던 중, 대표님께서 신입 사원 한 명 한 명에게 "지금 행복하다고 생각하니?"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대답을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는 당당하게 "네"라고 대답했고, 곧바로 두 번째 질문을 받았다.

"지혜는 왜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곧 점심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다 같이 웃음보가 터졌지만 나는 사뭇 진지했다. 아침, 점심, 저녁에 간식까지 기다려지는 행복한 시간들이 있으니 하루 중에 불행할 틈이 딱히 없는 게 아닌가.


한식 전도사

 한국인은 밥심이다 라는 말처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한식이다. 좋아한다기보단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빵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아서 빵순이라는 단어도 생겼건만 나에게 빵은 그저 간식일 뿐. 이러한 나의 한식 사랑은 머나먼 타지에서도 이어졌다. 22살 겨울, 영국에서 1년간 교환학생 생활을 했는데 우리 나라 음식이 얼마나 그립던지.

 영국은 특별히 맛있는 음식이 없는 나라다. 영국 사람들은 음식에 굉장히 성의가 없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유명한 피시 앤 칩스마저 튀겨놓은지 몇 시간이 지나 차가워진 생선과 감자튀김을 종이 박스에 담아서 판다.(나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다.) 물가는 비싸서 한번 외식을 하면 인당 2만원 정도 잡아야 하는데 그 정도로 만족스러운 맛도 아니다 보니 이때부터 요리실력이 급상승했던 것 같다.

 사실 한국에서는 '해 먹을 바엔 사 먹자' 주의였던 나였기에 요리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불가능이란 없지 않던가.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매일 외식 비용을 감당할 만큼의 돈이 없었다. 기왕 만들어 먹는 거 좋아하는 한식을 만들어 먹어야지 싶어서 기숙사 옆의 아시안 식료품점에서 식재료를 구매해서 다양한 한국 음식들을 요리해먹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는데, 내 손으로 직접 만든 음식들이 의외로(?) 너무 맛있었던 거다.

 이렇게 맛있는 한국 음식을 혼자 먹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외국인 친구들을 하나둘씩 초대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방탄소년단의 영향으로 '대한민국'을 아는 외국인들은 굉장히 많았다.(개인적으로는 방탄소년단에게 메달이라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 음식을 먹어본 친구들은... 없었다. 나 홀로 한식을 세계에 알린다는 불타는 사명감을 갖고 불고기, 잡채, 찜닭 등 최대한 거부감이 없을 듯한 음식들 위주로 '한식 영업'을 시작했다.

 특히나 꼭 소개해주고 싶은 음식이 있었는데 바로 '빙수'였다. 의외로 유럽에는 빙수라는 음식 자체가 없었다. 요란한 토핑으로 장식한 아이스크림은 곳곳에서 팔고 있지만, 시원하면서도 달달하고 입에서 부드럽게 녹는 빙수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나는 직접 연유와 우유를 섞어서 얼린 얼음을 칼등으로 부수고, 멜론 속을 파내 팥과 떡, 아이스크림 등을 올려 빙수를 만들어 주었다. 외국인 친구들은 처음 보는 한국 음식에 낯설어했지만 이내 감탄사를 쏟아냈다. 

“달콤한 게 입에서 살살 녹아"
"쫀득쫀득한 떡이랑 얼음이 너무 잘 어울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친구들을 보는 게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는데, 신기했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한국 음식들을 맛 본 이후로 외국인 친구들이 가끔씩 한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음식 사진을 항상 스냅챗으로 나에게 보내주는데 어찌나 뿌듯하던지.

 한국 사랑이 유별난 싱가포르 친구들은 한식을 먹으러 방학에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먼 길을 온 친구들에게 뭔가 조금 더 특별한 음식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날 저녁, 우리는 뚝섬유원지역에서 만났다. 내가 어떤 음식을 소개했을지 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니까. 한강으로 바로 배달해서 먹은 바삭한 치킨과 시원한 맥주는 나에게는 평범했지만 그 친구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종종 연락할 때면 그날의 추억을 곱씹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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