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사랑 이야기
처음 내가 사랑에 빠진 건, 생각해 보면 착각 때문이었다.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유리병 속 쪽지. 그 뒤로 이어진 긴 대화. 그리고 네가 건넨 노래. 그 셋이면 내가 너한테 빠지기엔 충분했으니까.
그런데 그 이후에도 넌 끝내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지겹게 너를 불러냈고, 내 시간을 다 쏟아부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한다고 말해주길 바랐는데, 넌 아니라 했다. 그럼에도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아프지. 내가 낫게 해 줄까.”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낫게 하겠다는 건지, 묻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그 말에 매료돼 버렸다. 내 마음도 고쳐질 수 있겠단 기대가 생겨버린 거다.
너를 떠올릴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박하색이었다. 상쾌하고 부드럽지만, 쉽게 닿을 수 없는 색. 네가 보내준 노래 속 장면에 빠져서, 그게 나를 향한 고백이라고 믿어버렸다.
취향엔 사람이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나는 네가 읽던 책, 듣던 음악, 추천한 영화를 하나씩 따라갔다. 꼭 너만을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러다 어느샌가 네가 느끼는 감정을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네가 내 취향인 건지, 내 취향이 너를 닮아간 건지, 원래 내가 그런 취향이었던 건지 그 경계는 흐려져 갔다. 그래서였는지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순간부턴 네가 듣는 음악이 내게 전하는 말 같았고, 넌 자기도 모르게 내 안으로 번져왔다.
우린 둘만의 메신저를 썼다. 나는 네 프로필 사진과 내 프로필 사진이 마주 보게끔 해놨다. 네 시선 앞에 나를 놓은 셈이었다. 내 쪽 화면에선 우린 서로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네가 볼 땐 우리가 마주 보고 있었을 테니까. 그런데 시간이 길어지니 그 모습이 조금 불안해졌다. 넌 아무것도 모른 채 웃으며 “우리 사진, 마주 보고 있다”라고 했다. 말 안 해도 알아준 것 같아서, 또 네가 좋았던 거다.
그러다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니까 심통이 났다. 나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진으로 바꿨다. 우린 서로 등만 보는 꼴이 됐는데, 그게 잠깐은 위안이 됐다. 그리고 마음이 풀렸을 땐, 어느 쪽에서 봐도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측면 사진으로 바꿨다.
나는 여러 가지를 한 번에 묻지 못했다. 네가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가 전부 중요했고, 대답에 따라 어떤 밥을 먹었는지, 꿈은 꿨는지… 자꾸만 이어서 묻고 싶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결국 다시 네 쪽으로 향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넌,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가 좋아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이 내 얘기라는 걸 알면서도, 객관적으로 답하려 했다. 사랑은 커피 쿠폰 같은 거라고. 나에겐 쓸모없는 도장 하나가, 누군가에겐 음료 한 잔, 케이크 한 조각이 될 수 있다고. 그 도장이 아홉 개 찍힌 사람에게로 가면, 곧 완성이 되는 거라고. 넌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흐른 뒤, 넌 말했다.
“언니가 나를 좋아할 이유는 없잖아.”
연락하는 내내 나는 눈치를 봤다. 그런데 눈치 보지 않고 얘기하니 후련했다. 잘 보이려고 애쓰던 것도, 이제는 그럴 일 없을 거란 생각이 드니 눈물이 났다. 불안은 괜히 드는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대체 어떤 시간을 뜻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겠다는 건지, 간만 보겠다는 건지, 어느 쪽도 좋게 들리진 않았다. 내가 어디서 잘못했는지도, 어디서부터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실행 취소만 하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백지가 돼 있었다.
연락을 기다릴 이유도, 마음도 사라지니 편히 잘 잘 수 있었다. 하고 싶었던 말은 절반 정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따질 명분도, 이야기할 힘도 없었다. 이미 끝난 마당에 지질해질 뿐이었다. 새벽 두 시에 잠들었는데, 여덟 시에 눈이 일찍 떠졌다. 서러움에 울었고, 감정이 터지자 펑펑 울었다. 눈이 따갑고 목이 화할 만큼. 그래도 답답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넌 연락을 끊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게 내 착각이었는지, 내가 붙잡히길 바랐던 건지, 붙잡힐 거로 생각했던 건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넌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였다. 그게 로맨틱한 사랑이든, 소중한 마음이든.
사랑하지 않았고, 아무 감정이 없었다는 말이 더 힘들었다. 나 하나 연락 끊는다고 달라질 건 없다는 게 힘들었다. 비슷한 사람 많으니, 그들과 연락하면 그만일 거였다. 처음부터 적극성에서 차이가 났다. 다른 사람은 각별히 여긴다고 했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먼저 연락하자고 한 것도, 굳이 붙잡은 것도 나였다. 내 마음이 괜찮아지면 다시 연락하자고 했지만, 넌 여전히 나와 연락하고 싶단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연락을 끊든, 보내지 않든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아무렇지 않다고 했으니, 연락을 끊어도 아무렇지 않을 거였다.
연락할 마음이 없다는 건 분명했다. 그러니 끊는 게 맞았지만, 끊으면 혹시 네가 먼저 올까 하는 헛된 기대가 싫었다. 죽을 듯 비참했다. 다른 사람에겐 늘 적극적이었던 너. 나 말고도 그렇게 느낀 사람이 있든 없든,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는 건, 결국 누구든 상관없다는 뜻이니까. 그 대상이 내가 아닐 수도 있었지만, 그 편한 대상이 내가 아님은 분명했다.
…그래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