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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보데 May 30. 2023

나는 정말로 당신께 쓸모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걸까.

이따금씩 그런 생각이 든다.

조금만 힘을 풀고 가볍게 즐기며 살 수는 없는 걸까.

왜 나는 온통 온 힘을 다해 쏟거나

무서워 도망치며 뒷걸음치며 사는 걸까.


때문에 내 곁에는 뒷걸음치듯 관계 맺는 사람이 여럿 보인다. 아마 서로에게 필요 이상으로 다가갈 일이 없어서, 그럴 일을 만들지 않아서, 서로를 방치하듯 사는 것이 익숙하기에 그렇게 살아가겠지.


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해서 당신이 대강 무엇을 좋아하는 지를 알고 있다. 어쩌면 당신이 나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까지도. 그런데 나는 왜인지 당신의 필요를 채워주기가 겁이 난다. 당신이 내 필요를 갈취해서 도망칠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아는데도. 이기적인 나의 마음으로는 나의 한계까지 쓸모의 끝자락까지를 들키고 싶지 않은가 보다. 다가서지 않으면, 당신이 내게 갖는 그 기대가 깨질 일이 없을 테니.


스스로 나의 쓸모를 명명하겠다는 제법 당찬 노래를 지어 불렀지만, 사실 누군가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그렇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멋지고 근사한 일임이 분명하다. 나는 그렇게 울어놓고도 그 환상을 아직도 놓지 못했다. 어쩌면 그 환상에 취해서 이토록 허덕이고도 그렇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가볍고,

잠시 즐길

그런 관계는 도저히 못 하겠어.

이게 긴긴 고민의 결론이다.

나는 당신의 필요에 흠뻑 젖어 가득히 채우며 살거나,

춤추듯 떠나가며 살겠구나.

다만 밀물처럼 들어와 썰물처럼 떠나가는 당신과 잠시 머무르는 시간들이 참 좋다. 사실 당신이 때때로 내가 필요해 찾아준다면야. 나의 쓸모를 잔뜩 쥐어가서 떠나도 좋아. 나는 내가 살아갈 쓸모를 혼자서 채우는 법까지도 배워버린 것 같다. 그래서 지독히 나다운 관계만을 맺으며 살아가겠다고, 아주 외롭고 시간이 오래 걸린대도 괜찮아. 어쩌면, 나한테는 그런 꽃가지와 열매 같은 아름다운 순간들이 다신 찾아오지 않는대도. 나는 한번 잡은 손을 쉽사리 놓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그래서 이런 내가 언젠가의 당신을 괴롭게 할 것이라면, 당신의 길을 막아서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고.


그래. 우중충하게 깊으며

하릴없이 진득하게 떠돌며 바라보는 것이 나의 쓸모인 것이다.

나는 아무도 막아서지 않는 나의 길을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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