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자리가 온통 사납다. 혼자 남겨지면, 몇 분 전까지 깔깔 웃었던 웃음들이 멀게만 느껴진다. 나의 발랄함은 참 무색하리만치 얄팍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쉽게 무너질 화사함은 정말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웃고 싶지 않을 때도 애써 지었던 웃음의 기쁨을 나는 기꺼이 누렸는데, 이제 와서 그 대가를 치르는 중일런지. 이토록 쉽게 무너질 기쁨이었다면, 아름답지 말았어야지. 괜스레 더 어둠이 지독해 보인다.
굳건한 믿음이 무섭다. 무언가를 확신하면서 살아본 기억이 없다. 기복이라는 것은 결국 높았다 떨어지는 낙차로 생기는 것. 그래서 웃음도 행복도 함께하는 것도 두렵다. 다가서는 것은 여전히 무수한 주저함의 연속이다. 너는 참 얼굴 보고 만나도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다며 서운해하는 지인의 말에 그저 웃으며 할 말이 없었던 순간이, 내 일상을 잠식시키는 것 같다. 나는 그저 널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 언젠가 나는 너를 기어코 실망시킬 테니까. 나는 너의 웃음이 참 좋지만 그때의 네 표정을 마주할 자신은 없으니까.
다정하게 다가오는 너에게 하릴없이 별, 구름, 바다에 대해서만 떠들고 싶다. 나는 작고, 내 고통은 사소하니까. 나는 결국 삶의 현상들을 다 이해할 수 없을 테고, 살아서 나의 결핍을 채울 일은 없을 테니까. 지나간 이에게 무색하도록 쓸모없는 원망을 해본다. 너는 왜 내게 기대하라고, 기대하며 살라했을까. 왜 내가 살아남는 방식을 부정했을까. 함께 날아올랐다가 각자 떨어지는 낙차가 제법 크다.
삶은 빨리 감기가 없는, 스킵 버튼이 없는 책과 같다는 말이 있다. 모든 페이지와 글을 천천히 느리게 삼켜야 한다. 나아가거나, 멈추거나. 그래서 당장 힘이 없으면 멈추는 수밖에 없다.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내 마지막 철학이다. 이 철학이 끔찍하게 억누르는 삶의 무게를 들처 업고 한걸음을 내딛을 동력의 전부이기도 하다. 엉망이 된 나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천천히 느리게 삼켜야 한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연애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안전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사랑의 대상이 갖고 싶다. 그것이 내게 이렇게도 중요하다. 내 삶을 기꺼이 동행하는 누군가에게 간도 쓸개도 떼어줄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발랄함과 에너지가 사무치게 그립다. 너무 높이, 너무 많이 사랑한 탓일까. 아픈 상처를 사랑하는 건 내게 어렵지 않은데, 나의 것을 드러낼 용기가 사라졌다. 참 이기적인 사랑이다. 그러니까. 그래서 내가 안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