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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Nov 27. 2023

갈팡질팡

서울시에서 시행하는 손목닥터를 신청했다. 스마트워치는 두 가지 디자인, 무려 세 가지 색상이 있었다. 디자인을 고르는 건 쉬웠다. 무조건무게가 덜 나가는 걸로 선택했다. 색상만 고르면 되는데 블랙은 이미 수량이 없었고, 핑크와 그레이 중에 골라야 했다. 평소 외출복이 무채색 계열이라 그레이가 무난할 것 같았다. 사실 내 옷은 외출복이 검정, 회색, 흰색, 아이보리 등의 무채색이다. 반면 실내복은 죄다 핑크 계열이다. 그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핑크를 고르라고 속삭였다. 생각해 보니 어렸을 적부터 핑크를 워낙 좋아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실내복은 연핑크부터 채도가 다른 핑크색 옷이 주를 이룬다.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핑크를 클릭했다. 고르고 나서 알게 된 건데 스트랩은 추후 교체가 가능하기에 어떤 색을 고르던 별로 상관이 없는 거였다. 그게 뭐라고 겉과 속의 나의 모습이 충돌하듯 한참을 고심했다.


외부에서의 색깔과 집안에서의 색깔이 다르듯, 밖에서와 안에서의 나의 모습도 상반될까? 요즘 흔히들 MBTI로 성향을 분석한다. 지금까지 한 3~4번 검사를 해봤다. 검사할 때마다 약간씩 다르게 나오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검사하는 시점에 따라 기분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답변을 하는 것 같다. 보통 E와 I를 두고 외향적, 내향적으로 판단한다. 이 또한 E가 나올 때도 있고, I가 나올 때도 있다. 완전 극과 극인 성향이거늘, 두 가지 성향이 공존하는 건지 아니면 중간 어디쯤에 나의 모습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 고등학교 1학년 때 문과와 이과 중 어디에 적합한 지 검사를 시행했을 때도 그랬다. 그때도 문, 이과가 거의 50대 50 반반이 나와서 결정하기 어려웠었다. 결국 이과를 선택했다가 나중에 번복해서 문과를 선택하고, 대입 원서를 쓸 때는 교차지원을 해서 자연계열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마지막에는 어문계열을 선택했다. 애매한 적성이 내 인생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다.


무채색의 나도 나일테고, 유채색의 나도 나일 거다. MBTI의 E도 나이고 I도 나의 모습이다. 문과 여자, 이과 여자도 나이겠지. 꼭 하나로 규정지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낮에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나만 방향을 모른 채 가만히 있는 것 같아서 초조해했다. 결국 두리번거리다가 눈앞에서 타야 할 버스를 놓쳤다. 신호등에 걸려 있는 버스를 타려고 뛰기까지 했지만 버스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해서 결국 걷기 시작했다. 버스가 다니는 큰길 대신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새로 오픈한 가게를 마주했다. 나를 기다려주지 않은 버스 덕분에 전에 맛보지 않았던 새로운 음식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 순간 짜증이 설렘으로 바뀌었다. 밤이 되니 온통 고요하다. 조급해하지 말자. 흘러가는 대로 두다 보면 어딘 가에 닿을 거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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