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힘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다. 곧 주저앉을 것만 같다. 그래도 이대로 멈출 수는 없다. 나는 지금 도망치는 중이란 말이다. 하필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가파른 길이라 곱절 힘이 든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사촌 언니가 떠오른다. 사촌 언니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커다란 개한테 도망치다가 계단에서 그만 넘어져서 한쪽 얼굴을 다쳤다. 몇 개의 계단을 굴러서 계단 모서리에 얼굴을 찧었다고 했다. 하얗고 뽀얀 언니의 왼쪽 뺨에 기다랗고 보기 휴한 상처가 남았다. 몇 번의 수술 끝에 옅어졌다고는 해도, 깊게 파인 상처는 말끔하게 지워지지 않았다. 매번 개꿈을 꿀 때면 사촌 언니의 개에 얽힌 이야기가 생각난다. 언니도 이렇게 두려웠을까?
곧 따라 잡힐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무섭지만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누렇고 커다란 개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채 내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저번과는 다른 개다. 꿈을 꿀 때마다 매번 생김새가 다른 개가 등장한다. 나는 개를 키워본 적도 없고, 견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데 내 꿈에 나오는 개는 매번 달라진다. 한 가지 공통적인 건 덩치가 크면서도 날렵하게 생겼다는 점, 이빨이 날카롭다는 것, 그리고 잘못한 것도 없는 나를 매번 쫓는다는 거다. 평소 개한테 해코지한 적도 없는데 무슨 원수지간이길래 꿈에 자주 나타나는 건지 모르겠다. 개꿈을 많이 꿔서 개한테 질려버려서, 현실에서는 개만 보면 슬금슬금 피하기 일쑤이다.
그나저나 꿈을 꾸면서 이게 꿈이란 걸 알고 있다니. 이래도 되는 걸까? 비슷한 꿈이 반복된다는 것도 매번 알고 있다. 꿈인 걸 알고 있으면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천만에. 꿈인 걸 인지하고 있지만 달리고 있는 지금 가슴이 마구 뛰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거울이 없어서 내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겁에 질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있을 거다. 꿈이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실제 상황과 똑같다. 너무나 생생해서 떠올리기도 싫은 그 순간. 개한테 물릴 때 느껴지는 불쾌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또 그때가 온 것이다. 개한테 내 등을 내어줘야 할 때 말이다. 이제 하도 같은 꿈을 여러 번 꾸다 보니 언제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역시나 개가 내 등 뒤를 ‘콱’ 물었다. 개의 이빨에 등을 물리 순간 ‘서걱’하는 소리가 내 귓가를 스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다. 개한테 물리는 느낌은 절대 물컹하지 않다. 분명 ‘서걱’하는 느낌이다. 개는 등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나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한 번에 비명이 나올 리 없다. 암, 이 개꿈이 날 순순히 놓아줄 리 없지. ‘컥컥’하는 기침만 나올 뿐이다. 한번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내어본다. 드디어 ‘악’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자, 이제 악몽에서 깨어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