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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규인 Nov 22. 2024

돈을 내고 고통을 사다

- 필라테스 1일 차

몸이 굳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목이 뻣뻣하고 어깨는 단단해지고 머리가 맑지 않았다. 몸이 아픈 건 어찌 참아보겠는데 머리까지 침범하니 잠을 자도 잔 건 같지가 않고, 제대로 된 일상이 불가능했다. 의사는 이대로 두면 상태가 점점 나빠질 거라고 했다. 우선 딱딱하게 굳은 몸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는데, 요즘에는 운동이라고는 도무지 하지 않았던 터라, 어떻게 해야 몸이 풀릴지 알 길이 없었다. 하긴 운동을 할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허리 통증으로 한 동안 재활 치료를 받아야 했고, 허리가 나을만하면 발에 이상이 생겨서 정형외과를 다녀야 했고, 발이 나을만하면 발바닥이 문제가 생겨서 또 다른 병원을 전전해야 했다. 사십 대 중반에 벌써부터 이렇게 병원을 드나드려니 마음이 축 쳐지는 기분이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체육 시간이라면 치를 떨고, 체육 점수가 제일 좋지 않았다. 누구는 운동을 할 때 도파민 분비가 되고 즐겁다는데 내게 운동은 그저 조금이라도 아프지 않게 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운동을 싫어하긴 하지만 꾸준히 헬스장을 등록하긴 했다. 한 때는 PT를 받으며 반 강제적으로 운동을 한 적도 있지만 잠시 잠깐 뿐이었다. 공을 들인 시간에 비해 효과가 그다지이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보통 헬스장에서 제일 시간을 많이 보내던 공간은 반신욕기기가 있는 곳이라던 지, 한증막, 사우나실 등이었다. 이랬던 나였는데, 곧 무너져 내릴 듯한 몸 앞에서 백기를 들고, 결국 나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벼랑 끝에 몰린 느낌이었다.


나는 내 몸 상태를 상세히 적은 리스트를 작성한 후 스스로 필라테스 스튜디오 문을 두드렸다. 아픈 곳을 브리핑하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말하다 보니 내 몸이 성한 곳이 없구나 다시 한번 깨닫고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필라테스 상담을 하고, 예정에도 없던 인트로 수업을 받고, 마음이 바뀌기 전에 등록까지 해버렸다. 뭐든 결정을 바로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결정 장애가 있지만 그날은 한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사실 갱년기가 오면 몸이 더 안 좋아진다고들 하는데,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지는 상황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곧 닥칠 갱년기가 나의 결제를 재촉했을지도 모르겠다.


레슨을 받는 50분 동안 어찌나 고통스럽고 시간이 안 가는지 중간중간 시계를 보고 또 보았다. 땀방울이 바닥에 뚝뚝 떨어졌고, 신음이 절로 나왔다. 살면서 그렇게 내 몸이 고통스러웠던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고문을 당하는 것 같아요."

이 말을 내뱉은 내게 원장님이 말했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내일 쑤실 수도 있다고. 기가 찬다. 이거 참, 오늘 그리 노력을 했거늘 내일은 오늘 보다 더 한 고통을 참아 내야 한단 말인가. 운동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듯했다. 돈을 내고 고통을 사다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등록을 했으니 무를 수도 없고 앞으로 어쩌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 오른팔로 지지하고 다리 옆으로 구부리고 다리 벌리며 손 올리기.

* 옆구리랑 엉덩이에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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