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전 가구 혹은 재료, 도구는 어떤 게 있을까? 여전히 인기 제품인 에어 프라이기? 조미료의 떠오르는 강자 연두나 치킨스톡?
우리 집에는 전자레인지가 없다. 전자레인지 없는 한국인 가정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생각해보니 전자레인지는 주방용품에 빠지지 않는 필수 요소인 듯 집집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원룸에도 전자레인지는 기본인 세상에 지금까지 전자레인지를 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새로 구매를 하더라도 우리 집 주방에 놓을 공간이 부족해서 문제다.
전자레인지는 보통 남은 음식을 손쉽게 데워먹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우리 집은 음식을 해서 남긴 적이 두 손에 꼽힌다. 밑반찬의 경우, 냉장고에 넣어두고 하루 이틀 안에 먹어 치우면 그만이고 그 외 꼭 전자레인지를 사용해야 하는 메뉴가 딱히 없다. 나중에 데워먹어야 할 양이 남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다 먹어버리는 식성과 한 끼 분량만 만드는 요리 습관 덕에 지금껏 전자레인지 없이 잘만 지냈다. 간편 요리는 전자레인지에 금방 돌려버리면 삼분 내지로 완성이 된다. 버튼 하나면 끝나는 초 간단 조리과정 대신 우리는 늘 찜기에 찌거나 프라이팬에 구워 먹도록 했다. 손이 더 가는 불편함에도 살림살이 하나를 굳이 늘리고 싶지 않았다. 이상한데 미니멀리즘을 유지하려는 오기가 작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자레인지의 필요성을 느꼈다. 오기 발동에 브레이크를 걸어온 건 다름 아닌 ‘계란찜 사태’였다. 고깃집에 가서야 먹는 계란찜을 집에서 만들어 먹기로 했다. 유튜브로 저녁 메뉴를 찾아보다 재료와 과정 모두 금방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 레시피를 찾았다. 계란 일곱 개를 풀고 당근 잘게 파 송송 썰어 넣은 뒤, 소금 간을 하고 가장 약한 불로 익히면 완성된다는 영상 끝에는 전자레인지에 들어가는 장면이었다.
“우리 집에는 전자레인지 없는데?”
전자레인지를 사용하지 않고 만드는 레시피를 다시 찾았다. 뚝배기에 끓여 만드는 방법이었다.
“전자레인지는 없어도 뚝배기는 있지!”
뉴질랜드 대다수의 집에서는 인덕션을 사용한다. 곧이곧대로 가장 약한 불인 1단계로 인덕션을 맞춰두고 뚝배기 속 계란이 얼른 부풀어 오르기를 기대했다. 정확히 47분이 흘렀는데 끓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란찜을 처음 해보면서 원래 보글보글 끓지 않는 요리인줄 알았던 내가 어리석었다. 얼추 익은 모습에 긴 시간 불에 달궈진 뚝배기를 그만 멈추고 먹기로 했다.
과연 전자레인지 없이 끓인 계란찜 맛은?
한 입 먹으니 계란 맛과 알 수 없는 쌉쌀함이 입 안 전체에 맴돌았다. 탄 맛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맛에 다시 한번 밥과 함께 싹싹 비벼서 한 술 더 떠먹었다. 그제야 탓 맛이 아니란 걸 깨우쳤다. 이건 뚝배기 맛이었다. 샛노란 계란찜의 탈을 쓴 뚝배기 맛을 도저히 참아낼 수 없었다. 뚝배기 맛이라 하면 상상하기 어려울 텐데 철판을 갈아 만들거나 쇳가루를 녹여 만든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는 입에 대고 싶지 않은 맛에 문득 ‘전자레인지가 있었다면 맛있는 계란찜이 뚝딱 완성되었겠지’ 하는 아쉬움을 빙자한 변명이 떠올랐다.
블로그에 공포의 계란찜 사태를 올렸더니 전자레인지로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친절한 댓글에도 아직까지 전자레인지를 구매할 의향은 생기지 않는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물건에 포함시키는 게 이상할 정도로 전자레인지는 필수 생활 가전에 꼽힌다. 그럼에도 전자레인지 대신 아날로그 방식을 추구하는 요리 습관이 익숙하다. 전자레인지 없으면 불편하지 않냐는 물음에 여전히 “없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고 뒤에 한 마디 덧붙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