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안 Sep 29. 2021

나쁜 감정의 굴레



오후 세시가 되자 슬금슬금 허기지기 시작한다. 찬장 안의 군것질거리를 사부작 거리며 살피는 잠시 동안은 허기짐이 누그러든다. 먹을만한 과자는 넷플릭스를 보며 다 해치운 지 오래였다. 장 보러 가기도 귀찮은 요즘 같은 때, 동 떨어진 과자를 보니 금방 짜증이 버린다. 서랍을 닫고 자리에 돌아와 앉자 다시 뱃속의 허전함이 요동친다. 세 시간 전에 먹은 점심은 벌써 소화가 다 되었는지 배고픔을 알리는 신호가 요란스럽다. 이 시간 즈음, 소화되고 남은 자리에 음식을 다시 넣어달라는 몸속 요청에 항상 재빨리 응답을 했다. 나쁜 습관은 길들여지기까지 일주일도 걸리지 않는다. 겨우 두 번, 세 번 되풀이한 악습관에 어느새 물들어진 모습을  수 있다. 불필요한 식욕을 가장한 가짜 배고픔에 더는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거짓 배고픔인 걸 알아차려도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는 쉽지 않다. 가장 단순하게는 백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백수 생활을 몇 달 더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내게 적합하지 않은 방법이다. 이유 없는 식욕은 곧 허전함에서 온다. 그렇다면 허전함은 무엇으로부터 발생하 것일까?



허전하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어서 공허한 느낌이 있다. 느즈러져 안정감이 없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 박장대소하는 웃음소리가 난무해도 어딘가 텅 빈 느낌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외부로부터 전해지는 요소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든 사라지기 마련이다. 단 걸 먹고 기분을 좋게 만들거나 빈 배경을 음악으로 채우는 행위 따위에 충족될 허전함이 아니다. 코로나로 인한 계속되는 계획의 차질, 직장의 부재로 사회에서의 고립,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잦은 나날들의 고리가 연결되면서 불시에 생겨난 것이다. 허전함으로 만들어진 불씨는 순식간에 우울, 공허, 무기력까지 수반하여 활활 타오른다.


허전함, 무기력, 우울함의 부정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기 위해 노력이 필요했다. 급변하는 사회에 시시때때로 생기는 감정 소모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외부의 소리가 아닌 내면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우리 내면의 소리를 따라야 현재 느끼는 감정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생각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높은 파도처럼 거센 감정이 몰아치기도 한다. 그 순간에도 감정을 절제하고 내면의 소리를 듣고 따를 수 있다면, 감정에 몰입하기 전에 진작 수그러들 것이다.


공허함에 휩싸이자 내면의 소리를 차단하는 벽이 세워졌다. 평상시 누리던 즐거움은 어느 틈에 벌써 희미한 흔적만이 남겨져 조용히 자취를 감추었다. 자기 계발과 여가시간을 누릴 수 있는 여유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멍하니 있다가는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될 것만 같다.


부정적인 기운이 밀려올 때면 집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섰다. 생필품이 하나라도 떨어지면 주저하지 않고 마트로 향했다.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면 믹스 커피 껍질을 까는 대신 가까운 카페를 가보았다. 책이 읽고 싶지 않아도 도서관에 들러 아무 책이나 빌려왔다. 적막만이 가득했던 방과 대조되는 바깥의 모습이 새삼 낯설었다. 형형색색의 풍경과 주위 소음이 바위 사이로 비집고 자란 풀처럼 텅 빈 공간을 메웠다.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 감정을 뒤덮을 수 있는 새로운 감정이 필요하다. 새로운 감정은 새로운 기억을 야기하고 새로 생긴 기억은 망각을 만든다. 부정적인 감정을 잊어버리기 위해 쓸데없이 밖에 나가 어슬렁거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