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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안 Oct 20. 2021

세 달째 쇼핑을 하지 않는 이유


한 달에 한 번씩 벌어지는 대자연의 기간이 끝나면 어김없이 오돌토돌 피부염이 올라온다. 건강한 군것질이라고 세뇌하며 식 전후로 먹어댄 다크 초콜릿이 문제였을까, 매주 빨래를 해도 모자란 지저분한 베개 탓일까 추궁을 해보지만 끝내 답을 알 수 없다. 양 볼의 붉은 기를 가리기 위해 피부를 검게 그을려볼까도 내심 생각해봤지만, 뉴질랜드 자외선 아래 태닝을 하다가는 피부암으로 직결될 우려에 관뒀다. 손꼽아 기다리던 이민의 현실은 달라진 환경에 의해 얻은 것과 비례하여 잃은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특히 건강상의 문제가 그렇다. 입국을 앞두고 산부인과 및 치과를 들러 검진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예상치 못한 부위가 성치 않다. 피부염과 연달아 과민성 방광 증상이 발현하게 되는 주기는 삶의 질을 충분히 떨어트리고도 남았다.


원인 불분명의 증상에 건강을 굴복시키지 않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씩 빼놓지 않고 운동을 한다. 다이어트가 명목이 아닌 건강을 위한 운동을 시작하는 일은 꽤 오랜만이다. 과체중이라도 주위에 간섭할 사람 하나 없지만, 오롯이 건강을 위해서 운동의 습관화를 들인다. 이번에는 필라테스를 하는 대신 밖에 나가 자연을 거닐며 조깅을 한다. 유모차를 끌고 운동하는 부모와 상의 탈의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 젊은 사람만큼 거뜬히 뛰어다니는 노인들 사이에서 어떤 옷을 입고 달리든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 해가 뜨면 브라탑을 입고 바람이 불면 바람막이를 걸치며 온전히 날씨에 관여해서 복장을 고른다.


피부가 잔뜩 성나도 차림새가 영 아니어도 뉴질랜드에서 지적받는 일은 굉장히 드물다. 한국에서의 외모 지적에 관한 일화를 꼽자면, 너무 많아 어느 것부터 말해야 할지 참 고민이다. 처음 보는 사이에도 외모 평가를 과감히 하는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한 문화에 치를 떨었다. 한국에서 떨어져 나와 외모에 구애받지 않는 일상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뺀 자신을 가까이 들여다보도록 했다. 공들인 머리와 화장을 위해 거울 앞에 서있는 시간은 더이상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두피만 완벽히 말리고 물기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찬바람을 머리카락에 쐬는 걸로 마무리한다. 외모 외에 관심 갖고 신경을 쓸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삼 년 전, 뉴질랜드에 처음 왔을 때, 오랜 시간 고집해온 미용 렌즈를 버렸다.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작은 변화일지라도 십 년의 외모 코르셋이 단 일 년 만에 벗겨지는 놀라운 모습이었다. 렌즈를 버리고 게임 퀘스트를 하나씩 깨부수는 것처럼 나서 피부 화장이나 눈 화장까지 단계별로 제거를 했다. 거기에 당장 미용실로 달려가 두발 자유화가 된 후로 한 번도 가슴 위로 잘라본 적 없는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잘랐다.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을 치우고 나니 과장된 말로 일상의 가벼움을 누렸다. 예전과 달라진 행색으로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만난 지인들은 새로운 광경을 보는 듯한 반응을 지었다.


오랜 시간 속박된 외모로부터의 자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서서히 원상 복귀되었다. 한국을 떠나기 삼 년 전과 동일하게 정형화된 미의 기준에 스스로를 열심히 끼워 맞추는 노력을 했다. SNS를 들어가면 비슷하게 꾸민 사람들이 각기 다른 아이디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선망받는 모습이 보인다. 몇 천, 몇 만개의 좋아요 수는 대중이 선호하는 외모와 이미지가 무엇인지 현실을 가감 없이 나타낸다. 핸드폰 속 화려한 세계는 평범했던 나의 세계를 누추하게 바꾸어 조명한다. 좋아요 개수는 똑같이 받지 못할지언정 시간과 돈의 투자로 비슷한 분위기는 충분히 흉내 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개성이 아닌 사회와 대중이 원하는 특성에 맞춰 변화를 추구해나간다. 개인의 의지만큼 주위 환경은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다시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돌아온 지금, 예전처럼 렌즈를 끼지는 않아도 어느새 가슴 아래까지 길게 자란 머리에 헤어 롤을 말고 과하게 딱 맞는 옷을 입는다. 한국에서부터 길러온 머리와 한국에서 산 옷들이다. 뉴질랜드에 온 지 세 달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런 쇼핑을 하지 않았다. 과거 흔적의 옷과 머리는 그대로지만 화장품이나 옷가지 등 외모와 관련한 소비를 멈추었다. 사회가 내건 욕망에 이끌려 주도성을 잃지 않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 내면의 게임기 전원 스위치를 눌러 ‘외모 코르셋 제거’를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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