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9일 어제 뉴질랜드 영주권을 받았다. 지난 11월 25일에 영주권 서류가 통과되었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소식을 먼저 들어서 이제는 달리 들뜨지도 기쁘지도 않다. 처음 맞이하는 순간의 감정을 유지할 수는 정말 없는걸 까. 막상 그렇게 된다면 도파민 중독보다 더한 지나친 감정에 금방 나가떨어지게 될 것이다. 언제든지 과거를 추억하고 싶을 때, 앨범에서 지난 사진을 꺼내어 보는 것처럼 지나간 감정 역시 그렇게 들춰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사진을 간직하고 나아가 일기를 쓰는 건 그날의 감각 혹은 기분 역시 지우고 싶지 않아서다. 그렇다고 매번 과거만 반추하며 살기에는 앞으로 남은 인생이 길어도 너무 길다. 과거에서 비롯된 현재를 즐기기에 이십 대 후반의 나는 대단히 이뤄둔 것도 없다. 인생 그래프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그릴 만한 건 작년에 한 결혼과 어제 영주권자가 되었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결혼과 이민, 두 단어로만 보면 인생에 큰 변화구가 되어줄 것만 같은데 현실은 덤덤하다.
배우자도 생기고 새로 살 나라도 생겼지만 나는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찾는다. 예전에 엄마가 본 내 사주에 역마살이 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맞는 것 같다. 내년에는 유럽여행을 최소 한 달 정도 가보려고 한다. 이렇게 다들 보는 글에 떡 하니 썼으니 모두의 기대를 위해(?) 갈 수밖에 없다. 예전부터 하고 싶은 꿈이 생기면 주위에 알리는 게 나만의 방식이었다. 꿈은 창대하나 의지는 박약한 나 자신을 잘 알아서 주위에 떵떵거려두지 않으면 나만 알고 있는 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라진다. 유럽여행은 내후년에나 가볼까 하던 여행 계획이었다. 내년에는 한국에 나갈 예정이라서 경제적으로나 시간상으로 여의치 못해서 일 년을 미뤄둔 것이다. 그런 계획을 앞당겨 내년에 한국도 가고 결혼식도 하고 어떻게 유럽여행까지, 그것도 한 달이나 다녀올 궁리를 하는지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린다. 턱없이 모자란 시간을 해결하기 위해 남편과 나는 내년 퇴사를 하기로 했고 시간보다 몇 배는 모자란 금전적인 문제는 지금부터 해결해보기로 했다. 돈은 항상 모자라고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거라고 우리 엄마가 그랬다. (결혼해도 여전히 마마걸) 신혼여행으로 유럽여행을 많이 가지만 우리가 가게 될 유럽은 가난하고 궁상맞지만, 지지리도 궁상맞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와 부부싸움이 나기 직전에 한 번씩 근사한 저녁으로 배를 채울 배낭 여행자 컨셉이다.
유럽여행을 고려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가는지 심심할 때마다 염탐을 했다. 주로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들이었고 부부끼리 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렇게 찾은 사람들은 결혼하고 어느 정도 자금을 모아 넉넉한 형편으로 여행을 가거나 자가 마련에 일찍이 성공하고 비교적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가는 부부가 대부분이었다. 우리처럼 가난한 부부로서 가는 이야기는 우리가 만들어야겠다. 모아둔 것도 없는데 자꾸 쓰기만 하려는 마음가짐은 한국에 있었다면 주위로부터 많은 만류를 들었을 수 도 있다. 이 년 전, 결혼을 하기로 하고 이민을 결심했을 때 우려와 걱정을 지나치게 많이 들었다. 물론 가족과 친한 친구들로부터는 진심 어린 응원만 들었다. 듣기 싫은 소리는 다 차단을 하다 보니 내 한국 사회 인간 망은 가족을 포함해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지금까지 부모님과 함께 한국에 있었어도 장기 여행이나 새로운 도전은 마음에 차서 결국 하고야 말았을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가족인 남편이라 불리는 남자랑 해야 하는데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서로를 최대한 원망해야 비로소 맞춰지는 게 우리 부부다. 며칠 전에도 그랬듯이 여행 가기 직전에도 가고 나서도 신랄하게 서로를 탓하며 사이좋은 부부가 되어있겠지.
천천히 여유가 생긴 뒤에 가도 될 유럽여행을 꼭 내년에 가기로 한 또 다른 큰 이유는 그 후에는 여유가 아닌 아이가 생길 것 같아서다. 카페에 오는 아침 손님들은 출근하기 전 직장인들인데 그중에 친해진 직장인이자 학부형 손님들의 얘기를 듣고 서두르게 되었다. 그들의 경험담 없이도 애가 없으면 편한 건 사실인데 실화를 가장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육아에 대해 알 길이 없는 나는 애가 있어도 괜찮을 거라는 안일한 사람이었다. 가족 구성원이 더 생기기 전에 남편과 나만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두기로 했다. 뉴질랜드와 한국을 오가며 장거리를 오래 한 탓에 특별히 기억될 큰 추억이 없는 것도 한몫한다. 아직도 동생이랑은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둘이서 싱가포르 여행에 갔다가 놀이동산에서 슬러시를 사 먹고 기절한 이야기를 하며 깔깔 웃는다. 기절한 사람은 나였다. 무더운 날씨에 찬 음식을 갑작스럽게 먹으면 나타난다는 간단한 증상과 다르게 나는 무시무시했던 기절 경험을 영웅담으로 간직한다. 진짜로 쓰러지는 와중에 누울 곳을 찾아 겨우 의자 위로 쓰러졌다. 오 분 동안 정신을 놓고 저절로 기력을 차려 일어났는데 나보다 더 어렸던 동생은 걱정으로 가득 찬 얼굴로 앞에 서서 내가 일어나기를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엄마랑 간 여행은 대표적으로 일본이랑 비교적 최근이었던 괌 여행이 있다. 일본에 가서는 모든 게 낯선 첫날 길을 찾는 도중에 비까지 많이 내려 몇 번을 더 헤매다가 결국 엄마가 짜증을 냈다. 괌에서도 마찬가지로 길을 헤매다가 레스토랑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도 이미 배고픔에 지친 엄마가 짜증을 내었다. 사람은 상대적이라 누가 화를 내면 상대방은 덜 보이기 마련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와 나는 어느 모녀보다 똑 닮아서 똑같이 짜증을 내고 누가 더 많이 부리는지의 싸움이다. 정작 당사자인 엄마와 나는 기분에 충실하고 뒤끝 없이 금방 풀지만 중간에 낀 동생들만 죽어난 것이다. 내년에 여행 가서는 남편과의 싸움이다. 연애할 때는 짜증이 없는 사람인 줄 알고 이 사람이다! 싶었는데 웬걸 나만큼 만만치 않게 짜증이 많은 사람의 소유자였다. 그래도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여행지에서의 싸움은 일상에서보다 귀엽게 느껴진다. 여행을 가면 어떤 특별한 막이 나를 감싸는지 불운도 고통도 나중에 가면 전부 나중에 가서 웃으며 기억되고 추억될 거리에 불과하다.
조금은 무리한 여행을 강행하면서 얻는 게 있다면 잃는 점도 당연히 생길 테다. 지금은 내년에 한국에 갈 생각과 당장 있을 연말 일정을 꾸리기만으로도 바쁘니 미래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미룬다. 이런 대책 없는 태도는 뉴질랜드에 와서 생겼다. 일상을 누릴 때는 느려 터진 행정 시스템에 일등으로 답답해 하지만 느릿느릿 태평한 게으름뱅이 키위 스타일을 보니 저렇게 사는 게 고된 인생 속 한 숨 돌리고 갈 수 있어 좋아 보였다. 그들은 매번 천천히 숨 고르며 천하태평 하루를 보낼 수 있어도 아직 한국에서 산 날이 많은 나는 반반이다. 자연에 몸을 맡겨 여유롭게 살다가도 자연이 아닌 나 자신에게 시선을 돌려 앞으로를 설계할 것이다. 어른이 되는 건 힘들 때 힘들어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걸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인생이란 본인만의 균형을 갖춰 살면 된다. 그래서 없는 돈 끌어다가 내년에 놀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공부에 대한 포부를 갖췄다. 아침부터 흐린 날씨에 맞는 음악과 초콜릿을 곁들여 이런 글 쓸 시간이 아니라 책상에 제대로 앉아 공부를 해야 한다. 앞서 여행과 역마살을 주절거리며 자유를 꿈꿔왔지만 모순적이게도 미래에 내가 할 직업은 돈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일이면 좋겠다. 사람은 원래 모순적이다. 늘 내가 갖지 못한 것에만 눈길이 간다. 적당히 돈 벌며 덜 스트레스받는 일을 택해왔다면 이제는 스트레스가 많아도 괜찮으니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한다. 많이 벌기 위해서 요즘 사람들은 재테크나 창업 등에 적극적이지만 나는 그렇게 머리가 좋지도 창의적이지도 못하다. 융통성이 없는 원리원칙주의자인 나는 나대로 엉덩이 싸움을 붙여보기로 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수단으로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예전처럼 공부만 한다고 성공하는 사회는 지났어도 나는 돈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직업을 원하기 때문에 배움에 투자하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고려하는 직종은 약사다. 전문직이나 기술직일수록 또 역마살이 껴 다른 나라로 이주하고 싶을 때마다 직업으로 인한 선택이 조금이나마 수월할 거라 믿는다. 지금은 누가 장난으로 five dollars라고 말하는데 daughter라는 줄 알고 혼자 알아듣지도 못하고 있지만, 이런 건 앞으로 십 년을 살아도 여전할 것 같다. 한국이 아닌 나라에서 공부를 새로 하려니 직업 적성이 아니라 언어가 관건이다. 영어가 된다면 감지덕지해서 안 맞던 적성도 잘 맞는다고 착각할 가능성이 크다.
한 달 전에 시작한 아이엘츠 공부만 해도 그렇다. 처음 모의고사에서 40문제 중에 13문제 맞고 상심이 컸다. 어제 본 모의고사에서는 맞은 개수가 아닌 틀린 게 13개였다. 그렇다고 내 영어실력이 늘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시험은 점수일 뿐 언어 향상과는 무관하다. 어제 외운 아이엘츠 단어는 복습하거나 다음 문제에서 나오는 게 아닐 경우 생각나지 않는다. 어떤 일을 하던 언어가 중점인데 지금 하는 바리스타를 관두고 생판 해본 적도 없는 의료나 보건 직종을 가려는 데는 남편의 영향이 컸다. 의료직에 종사하는 남편과 살다 보니 나도 그렇게 됐다. 정작 남편은 내가 돈을 많이 벌고 나면 본인이 집안일과 육아를 주로 맡으며 금요일과 토요일 정도 파트타임으로 일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벌써 있다. 사실 남편도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하는 입장이나 이번에는 내가 먼저 하기로 했다. 당장 내년 입학은 불가능하니 2024년 입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 동안 영어 시험 성적과 입학 요건을 준비하고 하반기에 여행을 다녀오면 지금 살던 집이 아닌 떠돌이 신세가 될 예정이다. 직업과 주거지를 찾을 때 까지는 시댁이나 이모네 혹은 단기 플랫을 고려 중이다. 이럴 때 친정이 가까우면 참 좋았을 텐데. 어디까지나 이기적인 생각이다.
당차게 늘어놓은 계획과 달리 계획 후 벌어질 일에 대한 마무리는 미미하다. 하고 싶을 일이 생기면 시작부터 끝까지 완벽하고 촘촘한 계획을 세우는 편이었다. 인생이 계획처럼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알게 된 후에는 계획을 달리 세운다. 시작에는 계획이 필요하지만 마무리까지 미리 지어둘 필요는 없다. 모든 일에는 외부로부터나 나 자신으로부터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고 미리 정해둔 계획에 움직이는 일은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게 된다. 내년 여행을 갈 계획에 있어서도 한 달 휴가를 내고 다녀오는 거였다면 마냥 설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돌아와서 같은 일상이 되풀이될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바리스타로 더 일을 하게 될지도 내년에는 어디서 살게 될지도 정해진 것 하나 없지만 어느 때보다 설레고 긴장된다. 처음의 감정을 평생 지속할 수 없다면, 처음을 다시 만드는 수밖에 없다. 올해가 한 달 도 남지 않았다. 지난 일 년 동안 덤덤해진 현실을 다시 생기 돋게 만들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