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에는 관심이 없지만 친구나 엄마가 대신해서 봐주면 역마살이 낀 사주라고 들었다.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게 한 직장에 오래 일한 경력도 없고 거주지를 바꿔가는 삶이 더 흥미로웠다. 정착보다는 방황에 가까운 삶, 풍요롭다고 할지언정 불투명한 미래를 안고 사는데 불안을 느끼지 못했다.
며칠 전 카페에 미국과 호주에서 여행을 온 할머니 손님이 왔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먼저 브런치를 즐기던 손님한테 물어보고 우리 카페에 들어왔다고 했다. 주문한 차 한잔부터 카페 곳곳을 사진 찍던 할머니는 트립어드바이저에 굿 리뷰를 남기겠다며 즐거워했다. 여행이라는 주어진 시간 속에 에너지는 배가 되어 주위를 둘러보고 즐기는 모습에 지켜보는 나까지 찰나의 묘미가 느껴졌다.
요란을 떨 일이 아닌데도 괜히 호들갑에 재미를 더해보고 추억을 남긴다. 평소라면 보고 지나칠 장면에 시선을 오래 머물러 두고 본다. 보통날들에 대한 기억은 애매하지만 여행은 한 장면처럼 커트해서 언제든지 가져와 재생하고 되감기를 할 수 있다. 과거의 흔적을 영화처럼 저장하고 꺼내 볼 수 있는 낭만이 있다. 현재에도 과거에도 미래까지 여행은 나를 존재시킨다.
매년 매달 작게나마 여행을 평생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여행이 좋은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돈과 시간의 자유로움이다. 여행에 매번 쏟아부을 돈과 시간을 구하려면 디지털 노마드 같이 그 시간으로 경제적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돈과 시간이 부족한 탓에 여행을 자주 갈 수 없다고 해서 삶을 원망하거나 불행해질 필요도 없다.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 잠깐 마주하는 자유로움이 여행이다.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얼마든지 여행과 같은 시간을 평소에도 누릴 수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의 문화 예술이나 맛집을 탐방하는 테마가 있는 여행도 나쁘지 않지만 원래도 여행은 일상에서 누리기 어려운 시간에 감정을 쏟아붓는데 의의가 있다.
뉴질랜드에 정착하면서 여행자의 태도를 삶으로 가져오는 연습을 하고 있다. 꼭 뉴질랜드가 아니어도 된다. 그저 내가 선택한 나라가 뉴질랜드고 여기에 거주하며 그간 여행에서 느낀 충만함을 일상에 흩뿌린다. 언제까지고 구름 위에 뜬 이방인으로 지내기보다 나름대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다. 어제와 비슷한 일상에 새로움을 발견하는 일은 매번 쉽지만은 않다. 그럴 땐 지난달에 누렸던 기억을 되풀이하며 자연스레 만들어진 즐거움 루틴을 따른다. 같은 걸 반복하더라도 그 속에서 처음에는 놓쳤던 것에 반응하며 새로움을 만든다. 여행지에서 수시로 찾아오는 기회를 일상에서 접하게 되면서 어딘가로 훌쩍 떠나기보다 현재 머무르는데 만족을 한다. 여행을 가지 않지만 여행자의 태도로 현재 충만함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