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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뭉작가 Jan 06. 2024

공경

저마다의 사정

때는 2010년쯤, 고등학생 2학년일 때였다.

내가 살았던 아파트로 가기 위한 옆 아파트에서 연결되는 통로가 있었다. 철 계단으로 된 높지 않은.

차로 가거나 정문으로 가기에는 너무 돌아가기에, 그리고 이용하라고 만들어 놓았기에.

나는 항상 그 계단을 통해서 갔다.


그 날도 어김없이 하교를하고 옆 아파트를 통해 철 계단쪽으로 걸아가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무거운 물과 여러 짐을 드신 할아버지가 힘들게 계단을 올라가려고 하셨다.

그래서 뛰어가서 "들어드릴게요" 하고 가장 무거운 물을 들으려는 순간.

할아버지는 "어디 남에 물건에 손을 대!"라며 호통과 나의 팔을 치셨다.

나는 당황했고, 어안이 벙벙했다. 그 자리에서 물을 놓고 멍하게 있었다.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할아버지를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1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그때의 기억. 18살, 고등학교 2학년까지 오랜 삶을 살지는 않았었지만

부모님께 배운게 있고, 사회적으로 습득한게 있었기에 자동적으로 도와드리러 갔다. 하지만 돌아온건 뜻밖이었다.

처음 겪었다.

버스를 타서 앉아서 가다가 어르신이 타면 자리를 비켜드리고.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면 조금이라도 들어드리고.

누군가 넘어지면 일으켜 드리고.

그냥 그런것들을 사회적호의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다.


이 날 이후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까지. 그리고 훗날 살아가는 동안. 이 기억때문에 한가지 생긴 습관이 있다.

호의를 베풀어야 하는 순간, 도와드려야 하는 순간.

즉각적인 몸의 반응이 아닌. 머리를 한번 거치는 습관. '내가 도와드려도 될까?', '괜한 오지랖이 아닐까?'

그리고 괜찮다고 판단되면 그때서야 몸이 움직인다. 그런 상황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분명 제3자가 봤을때는 좋지 않게 볼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는것도 생각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후 깨달은 것. '저마다 사정이 있겠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것이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도 옳아도. 그 상황을 직면하고 있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연하지도, 옳지도 않은 것일수도. 그래서.

무조건 내가 옳다고, 사회가 그렇게 한다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물론, 100이면 100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상황이더라도. 최소한 그 사람에게는 그게 아닐수도 있고, 그로인해 그를 욕하거나 손가락질 하면 안된다는.


매달 기부를 하고 있지만, 막상 저런 상황이 다시 생긴다면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은 하겠지만.

그 후로도 생각은 드겠지. '내가 잘 한것일까?', '내가 괜히 나선걸까?' 좋다고 생각하는 일에 이런 생각을 하는게 싫지만. 어쩔 수 없다는것도 드는 생각.

사회적 악행이거나, 정말 나쁜일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그럴 수 있고, 누군가는 안그럴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상황이 내가 평소 생각하는게 맞다고 하는 상황인데, 누군가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고 해서.

절대 나쁘게 생각하지 말자.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사정이 있을것이고.

그 사람은 그게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걸 우리가 판단하여 이렇다 저렇다 할 자격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악행, 나쁜일이 아니라면.


그냥 모든 일에 저마다의 사정이 있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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