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이라이트릴
"아로마씨, 숙제 제대로 안해오셨네요?"
1주일 혹은 2주일마다 비행 없는 날 레슨 받으러 가면 으례 듣는 꾸중이었다. 뉴욕 한번 다녀오면 8박9일, 런던 한번 다녀오면 5박6일. 사실 연습의 흐름은 계속 끊어졌다. 흐름이 끊어지니 집중은 더욱 안됐다.
"선생님, 제가 비행 갔다가 어제 와서 연습을 많이 못했어요. 흑." "그래도 하루종일, 밤을 새서라도 될때까지 하셨어야 돼요. 기타 잘 치려면 그 과정 꼭 거쳐야 하거든요. 시간이 안되서 매일 연습 못했으면 밤을 새서라도 못한 만큼 집중해서 채워야 되죠."
"네. 흑."
머리로는 알겠지만 잘 되지 않았다. 선생님의 의욕과 달리 아주 천천히 성장할 수 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본인의 언어로 이해한 이론을 나의 언어로 가르쳐 주었다. 기타의 음계와 화성은 한가지만 제대로 익혀도 곧 응용이 가능했다. 기타 프렛을 몇 칸씩 옮기느냐에 따라 조 옮김이 되었고, 익혀둔 근음(root)을 기준으로 음계를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었다. 선생님은 기타의 본질을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기초 연습 과정이 어느정도 지난 후 연습곡집에 내 이름을 써서 선물해 주셨다. 연습곡이지만 하나하나 모두 연주곡처럼 매력적인 '록기타 주법' 교본. 교재 첫 곡 녹음 하는 날 기념으로 파일명을 '첫 연주'라고 저장해 주셨다. 2시간정도 걸려서 녹음을 완료한 순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선생님한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지 7개월이 다 되어 가는 날, 약속한 레슨 시간에 레슨실을 찾아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아무리 두드려도 대답이 없고, 핸드폰도 꺼져 있었다. '이런 적이 없으셨는데 웬일이지?'
연락이 안되어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와서 다음날 비행 준비를 끝내고 자기 전에 컴퓨터를 키고 선생님이 운영하는 레슨생 카페에 들어가 보았다.
뽀딸형 레슨생 분들께 알립니다
뽀딸형과 밴드 멤버인 쌍덕입니다.
뽀딸형이 오늘 교통사고를 당해서.
뭐라고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장례식은 대전에서 할 것입니다.
연락주세요.
011-xxxx-xxxx.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멍했다. 이 상황이 무엇인지 파악이 안 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스케줄 팀에 전화를 했다. "저 죄송한데요, 친구같은 선생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내일 스케줄 빼주실 수 있을까요? 장례식에 꼭 참석하고 싶습니다." "어머나, 친한 친구인가요?" "네, 나이도 동갑이고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이에요. 흐흐흑." "안타깝지만 내일 아로마씨가 가는데는 아침 출발에 해외에 며칠 체류하는 스케줄이라 지금 갑자기 인원을 조치할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어떻게든 안될까요? 제가 너무 믿기지가 않아서 그래요." "죄송합니다."
결국 나는 선생님의 장례식에 참석을 못했다. 시간이 지난 후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선생님은 친한 형과 함께 기타를 수리하러 다녀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친한 형이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데 다른 방향에서 오는 덤프트럭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사고가 정말 크게 나서 운전자와 선생님은 병원에 실려가자마자 돌아가셨다고.
동갑이지만 한 분야에 일찌감치 진출하여 전문인이 되신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 학교가 알려주는 길 외에도 몰입도에 따라 본질적이고 다양한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선생님. 선생님이 녹음해 주신 18년전 내 연주 음원을 들으며 젊고 여렸던 영원한 나의 선생님을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