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어딘가로 향하는 비행이었다. 윙스타 멤버들과 함께가 아닌, 무섭기로 소문 난 매니저님과 가는 길이라 너나 할 것 없이 긴장한 표정이었다. 인천공항행 셔틀 버스에 탑승하여 막 자리에 앉는데 처음보는 막내가 다가왔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선배님이랑 그룹이 된 애리얼이라고 합니다. " "어머, 애리얼씨 우리 그룹이세요? 애리얼씨, 혹시 우리 그룹 뭐 하는 그룹인지 아세요?" "혹시 노래나 악기 다룰 줄 아는 것 있어요?" "네, 사실 아시아나에 들어오기 전에 언더그라운드 밴드에서 보컬이었거든요. 음악만 하고 싶었는데 돈은 벌어야겠기에 승무원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침 윙스타에 대한 신문 기사가 뜨더라구요. '저기다.' 확신했죠. " "와, 세상에나. 언더그라운드 보컬이셨어요? 완전 프로겠네. 오늘 비행 끝나고 연습있는데 같이 갈래요?" "네, 선배님, 가고 싶습니다."
열정적인 표정으로 인사하던 애리얼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저 그런데 선배님 뭐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제가 오늘 방송 담당을 처음 하게 됐는데 언제 어떤 방송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서요.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매니저님이 너무 무서워서 더 떨려요." “손님들 다 타시면 환영 방송하고, 이륙이 끝나면 벨트 상시 착용 안내 방송 해야되고….” 방송 시점과 구체적인 내용을 걱정이 많은 애리얼에게 계속해서 알려주었다.
비행이 끝나고 연습실에 같이 갔다. "매니저님, 애리얼씨가 우리 윙스타에 들어오고 싶다고해서 데려왔습니다." "어서와요, 애리얼씨. 오디션 보러 오셨으니 노래한번 들어볼까요"
비행 내내 걱정과 수줍음 가득했던 애리얼의 얼굴이 환해졌고 힘있는 목소리가 배에서부터 나왔다. 모두들 깜짝 놀라 애리얼에게 빠져들었다. 윙스타 전설의 보컬 하이엠 선배의 얼굴에 진지한 미소가 번졌고, 노래가 끝나자 멤버들이 호들갑을 떨며 박수를 쳐댔다. 활짝 웃는 하이엠 선배가 내게 귓속말 한다. "윙스타 역대 최고야."
얼마 후 그룹비행이었다. 애리얼의 표정은 걱정 가득. 손님한테 음료 쏟을까봐 걱정. 선배가 부르면 혼날까봐 미리 걱정. 화장실이 지저분해서 손님이 화내실까봐 걱정. 걱정 투성이인 애리얼의 얼굴은 점점 힘이 없어져 옆으로 5도 각도로 기운다. 윙스타 비행이 아니었다면 "쟤 막내 표정이 왜저래," "막내 좀 이상하지 않냐" 등등 말 나올 것이 뻔했다. 일과 삶을 공유하는 우리는 애리얼을 알기에 '아, 오늘도 쟤는 걱정이 많구나.흐흐흐흐' 생각하며 웃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서서히 스며들어갔다.
2023년 12월. 펜데믹 이후 얼마만에 마련한 큰 무대인가.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쉬는 날 합주를 위해 모였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애리얼이 독감에 심하게 걸린 것이다. 애리얼은 너무 아파 연습실에 나오지 못했다. 다음날 그룹비행에 나온 애리얼의 얼굴은 너무나 아파보였다. 병가를 내면 공연 스케줄이 어긋날 까봐 아픈 몸을 이끌고 장거리 비행에 나온 것이다. 마스크를 쓴 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애리얼의 모습이 짠했다. 일하는 짬짬이 벽에 기대어 있는 애리얼의 얼굴이 15도 기울어졌다.
그룹 비행 후 최종연습이 있었다. 연습실에서 애리얼은 25도 기울어진 채로 눈을 감고 안락 의자에 누워 있었다.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아 애리얼의 노래를 다른 후배가 불러 주었다.
공연 날, 최종 리허설이다. 기침이 마구 나오는 바람에 노래를 이어가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너무나 속상해하는 애리얼에게 괜찮다고 괜찮다고 노래하는데 의가 있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드디어 공연 시작. 오마이갓. 기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배에서 부터 힘 있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교한 바이브레이션이 모두의 귀를 간질였다. 애리얼이 목소리를 찾은 것이다. 애리얼이 윙스타에서 늘 부르고 싶었지만 부르지 못했던 노래를 선보였다. 영화 '인어공주'의 ost 'part of the world'. 애리얼의 노래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When's it my turn?
Wouldn't I love, love to explore that shore up above?
Out of the sea
Wish I could be part of that world
내 차례는 언제올까?
나는 모험하는 것이 너무 좋아.
밖으로 나가
더 큰 세상이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