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이라이트릴 Jul 11. 2024

공기같은 선배님 #번외

윙스타 후배들과 함께하는 비행은 언제나 즐겁다. 

 일하다 마주치면서 나누는 눈 맞춤이 좋고 일 끝나고 함께하는 저녁 식사와 음주가 좋다. 특히 음주. 마음 속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 시간이 좋다.


 나흘 전 후배 두명과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맛있는 멕시코 음식과 망고 맥주를 사서 캐롯의 방에 모였다.

 늘 그렇듯 우리는 음악 이야기를 꽃 피운다. 

 "우리 이번 비행 끝나면 우리의 자작곡 하기로 했잖아. 다들 그날 올 수 있지? 키보드는 캐롯이가 했고, 드럼은 에이미가 했었나?"

 "선배님, 저는 이제 좀 내려놔서 맡은 곡은 없어요. 근데 드럼 치고 싶어서 꿈도 꾸고 온 몸이 근질 근질 하네요."

 "내려놓지 말고 다시 잡아봐. 탑건 한번 해볼래? 지난번 공연때 나 너무 힘들었잖아. 캐롯이랑 나 빼고 곡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나랑 캐롯이랑 곡 진행 계속 잡아주고 코드 틀린거 계속 수정해주고, 공연 직전까지도 그래서 결국 자포 자기로 했었어."

 "나 그때 선배님 진짜 불쌍했잖아. 지금까지 어떤 공연보다도 연습량 적고 그 곡에 다들 관심이 없어서 완성도 최악이었어요."

 "그러게. 공연 발표나자마자 거의 바로 탑건 하자고 했었는데,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하면 할 수 있는 한달의 시간이 있었는데 공연 이틀 전에 갑자기 드럼 멤버 바꾸고 베이스는 코드도 모르고 키보드는 아예 다른 버전으로 준비해오고 많이 힘들었지."

 "앞으로 음악 계속 할 사람 안 할사람 의견듣고  멤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심 없는 사람들은 나가도록 해줘야 한다고요."

 "그런데 문제는 넘버원 선배님은 다 같이 가고 싶어한다는 거죠."

 "그러게, 기껏 힘들게 연습일 잡았는데 전날 다들 갑자기 갖가지 이유로 못나온다고 하잖아. 그런 멤버들이 많아서 정말 힘든 것 같아. 지난번 단톡방에 선배님이 너무 화나신 것 같아서 내가 우리 자작곡 하자고 말 꺼낸거야. 연습 나와서 뭐라도 되어야 선배님이 더 화 안나실 것 같아서. "

 "넘버원 선배님이 알아서 굴러가길 바라는 마음을 드디어 선배님이 읽으신 것 같더라구요. 예전 같으면 저도 눈치보고 했겠지만 전 진짜 내려놨어요. 수원에서 편도 2시간 걸려 연습실 오면 다들 한시간씩  지각하고, 중요한 건 합주가 될 정도로 다들 연습을 안 해온다는 거에요. 난 학원 가서 레슨 받고 음악도 진짜 많이 듣고 오는데. 멤버들이 그럴때마다 내 피같은 시간 날리는 것을 견딜 수 없어요. 아이 하원 시간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 가면서 수도없이 생각했죠.  아, 안돼겠다. 난 여기까지인가보다."

 "그러게, 완성도를 위해 늘 그렇게 노력했는데 다른 멤버들은 그렇지 않다보니 힘들었겠어. 나도 사실 그동안은 대충 연습했거든. 밴드용 곡이 아닌 보컬만 돋보이는 곡만 하지. 내가 원하는 기타가 아닌 베이스만 하게 되지. 흥미가 떨어져서 진짜 대충하게 되더라구. 그런데 이번 탑건은 정말 내가 15년동안 원해 왔던 버킷리스트, 일렉 기타 솔로곡 이었잖아. 정말 열심히 연습했지. 난 나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어. 기타만 제일 어렵고 다른 세션들은 마음만 먹으면 바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울 거라고 생각했거든. 합주는 고난이도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지. 개인 연습을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다른 멤버들과의 합이 맞지 않는다면 말짱 헛수고라는 것을 말이야. 다른 멤버들과 합을 맞추는 것, 특히 개인 역량이 제각각인 멤버들과 맞춘다는 것은 최고 난이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지난 공연때 더 없이 속상했던 것은 에밀리가 그나마 드럼 치기로 하고 교회에서 레슨도 받았는데 갑자기 찐룡으로 바뀌었다는 거야. 그것도 넘버원 선배가 공연 이틀 전 갑자기 어려운 새로운 곡을 추가했기 때문에 에밀리가 탑건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어서 넘겼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났어. 넘버원 선배가 어찌나 원망 스럽던지."

 "선배님, 난 선배님이 정말 불쌍해요. 윙스타에 선배님은 공기같은 존재여서 선배님이 없으면 살 수 없는데 다들 선배님이 공기 같으니까 선배님의 소중함을 몰라요. 지난 공연도 선배님 없었으면 넘버원 선배님 독주 콘서트 됐을 거에요. 아니면 보컬 콘서트 됐던지요. 선배님이 있었으니까 억지로 억지로 이만큼 끌고 갈 수 있었던 거에요. 선배님 보면 진짜 답답해요. 선배님, 선배님도 좀 목소리좀 내세요. 다 해주지 말구요. 진짜 일렉이면 일렉, 통기타, 베이스 후배들이 못하겠다는 곡 다 해주고 군말 없이 매 연습 다 나오고.에휴."

 10살 어린 에이미의 정곡을 찌르는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콕콕 아려왔다. 맞는 말이다.

 대충 짤리지 않을 정도로 바운더리만 걸치는 후배들도 있고, 연습실 한번도 안나와도 특유의 편안한 성격으로 모든 선후배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선배도 있는데 나는  애매하다. 열심히하고 실력 괜찮지만 조용히 묻혀있다. 한마디로 인기 없는 멤버다. 

에이미의 마지막 말이 머리속을 계속 멤돈다.

 "선배님, 선배님도 좀 징징대세요. 진급도 좀 시켜달라 하구요. 선배님이랑 얼마나 차이 난다고 연습 안나오는 존예 선배님은 진급 못시켜서 안달이고 선배님은 왜 제껴져 있는데요? 사람들이 공기의 소중함을 너무 몰라."

 '그래, 지금까지의 내모습은 공기 같았겠지. 하지만 나도 탑건으로 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지금부터 하는 곡은 나의 의지다. 내 시간을 꽉 채우기 위해. 충만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그래 나는 공기같은 선배가 맞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피톤치드를 가득 품은 신선한 공기. 나도 정화하고 멤버들도 정화하는.  

매거진의 이전글 프로 게스트 공연 #에필로그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