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엔젤레스 호텔의 새벽시간,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기야, 우리 결혼할때 영수형이(유명 락 그룹의 기타리스트) 술자리에서 술김에 축가 연주 수락한거였잖아. 영수형이 할 말이 있으시다네, 잠깐 바꿔줄께."
"아로마씨, 지금 명관이랑 술마시는 중인데, 지난번 내가 취중 축가 수락한것처럼 아로마씨도 탑건 연주좀 해줘야겠는데?"
" 어머나 오빠 축하드려요. 그럼요, 이번엔 제가 연주해드려야지요."
"(명관아) 하겠대. 흐흐흐,"
나는 결혼 시기를 훌쩍 넘은 오빠가 드디어 결혼한다는 줄 알고 덥석 알겠다고 했다. '그래, 축가는 다들 틀리고 하잖아. 프로들 많이 오면 뭐 어때 마음이 중요한거지.'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뭐? 영수 오빠 단독 공연에서 솔로로 참가하라고? 난 못해. 못해에."
남편이 진득하게 설득했다. 탑건이 이대로 묻히면 아깝지 않냐고. "그래, 그렇게 큰 프로 무대에 잠깐 서는 것 만으로도 나는 엄청나게 늘겠지?" 두 달의 까마득했던 시간은 속절 없이 흘렀다.
아이들의 학교 과제와 해외 스케줄, 내가 읽어야 할 책들은 쌓이고 기타에는 좀처럼 손이 안갔다.
'내가 어떻게 프로 뮤지션 공연 게스트로 나가? 말도안돼.'
가뜩이나 자신없는데 게스트 이니 두 곡은 해야한다는 연락이 왔다.
9년 전 공연 했던 '호텔캘리포니아'를 시험삼아 연주해 보았다. 줄의 장력을 온 손가락으로 받아내야하는 곡이기에 손만 아프고 소리는 나지 않았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 못하겠다고 남편에게 매일 징징댔다.
LA에 체류하던 중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공연 포스트가 나왔다는 것이다. 영수오빠 공연인데 게스트인 내 사진만 덩그러니다.
'special guest AROMA' 커다란 글자와 함께. 울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되돌릴 수 없었다.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방콕 가는 스케줄을 제끼고 기타와 집콕하고 싶었다. 하지만 갈 수밖에 없었다. 밤새 일하고 아침에 내리니 바로 다음날 저녁 공연이다.
안 치던 손으로 호텔캘리포니아를 치려니 너무 아팠다. 기타리스트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굳은 살이 내겐 없었던 것이다. 맨손으로 팽팽한 활 시위를 계속 당기듯 연주를 하다보니 이젠 기타 줄에 손도 댈 수 없을 정도이다.
공연 당일 큰일났다. 이를 어쩌지. 손에 골무를 껴볼까. 밴디지를 붙여볼까. 테이프를 감아볼까.
골무를 껴보니 어마어마한 고무 마찰력이 손을 붙들어서 연주를 할 수 없었다. 밴디지를 붙이니 좀 살 것 같았다. '그래. 이거야.' 그러나 곧 풀려버렸다.
약국에 다시 갔다. 잘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손끝형 밴디지와 마스킹 테이프를 사와서 두가지 다 붙여보았다. 테이프는 너무 두껍게 감겨서 손끝 감각도 둔해지고 옆 줄도 자꾸 침범해 버렸다. 남은 건 손끝 밴드. 되는대로 잘 감싸서 공연장으로 출발했다.
공연장에서 리허설을 하는데 사운드가 환상적이었다. 내가 섰던 그 어떤 무대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선명한 서라운드가 가슴을 쿵쿵 울렸다.
리허설 무대에 올라가는데 내손과 내 심장이 마구 떨린다. '이렇게 떨면 안돼. 나는 할수 있다. 나는 평온하다.' 본 공연때도 주문을 계속 외웠다. 기대 이상의 힘이 나왔다. 나의 공연에 감탄하며 환호하는 관객들과 영수오빠의 박수소리가 들렸다. 온 몸이 행복으로 가득 찼다.
공연 이틀 후 미국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기타를 쳐보았다. 손가락에 어느새 굳은살이 자리잡아, 활시위를 아무리 잡아당겨도 방패처럼 고통을 막아줬다. 실력도 꽤 많이 늘어있었다.
좋은 사운드의 공연장에서 한번 연주한 것 만으로, 프로 무대에서 쏟아져내린 중압감을 견뎌낸 것 만으로 이렇게 손가락이 가볍고 빨라지고 정확해진단 말인가. 정말 신기했다.
나는 프로 무대 공연을 해냈다.
피해갈 수 없는 목표를 강제 설정 당했지만 그 허들을 향해 뛰었고 돌파했다.
'목표 강제설정. 배수진. 바로 이거구나.'
올해 말, 나만의 새로운 배수진을 친다.
나의 내면의 깊이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