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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라이트릴 Dec 29. 2022

만남 #3

나의 하이라이트릴

우리에게는 너무나 지옥같았던 교육원 인턴 생활, 국내선 근무 3개월을 마치고 날마다 새롭고 긴장되는 비행세계가 펼쳐졌다.


 오늘 가는 곳은 어떤 곳일까? 오늘 만나는 선배님들은 어떤 분들일까? 항상 무섭고 설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불확실성은 '눈치'라는 감각을 바짝 세워서 '센스'라는 키워드로 무장하게끔 하였다.


 


 2년 가까이 일하니 비행과 이런 업무스타일도 좋았다.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들을 그날 비행에 처음 만나서 적응해야 하는 긴장감은 업무가 끝나면 바로 사라졌다. 퇴근하면 끝. 아주 좋았다.


 그런데 2004년 새로운 제도가 시행된다고 공지가 내려왔다. 그룹장 한명과 그룹원들을 묶어서 그룹 단위로 비행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마음이 맞으면 최상이겠지만 무섭거나 깐깐한 그룹장님을 만나면 1년내내 함께 일하며 고생할게 뻔하니 다들 긴장했다.


 그룹이 발표되고 서로의 그룹장님에 관심이 대단했다. 만나는 선배나 매니저들마다 물었다. "아로마씨, 그룹장님은 누구세요?" "선비 매니저님이요." "우와, 좋겠다. 우리회사의 최고 젠틀맨이시잖아요. 참, 선비 매니저님 윙스타에서 드럼 치시는데 그거 알고 있어요? 지난번에 윙스타 공연 보러갔었는데 여느 언더그라운드 밴드 못지 않게 느낌있고 강렬하더라." "어머 정말요?"




 사실 나는 밴드음악에 관심이 있었다.


 대학교때 우리 동아리방 옆방은 헤비매탈 밴드실이었다. 내가 외로이 클래식기타 선율을 다루고 있을때 옆방에서는 쿵쾅쿵광 드럼과 기타 베이스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즈음 퀸, 데프레퍼드, 주다스프리스트 등의 락, 메탈 음악에 빠져들고 있을 때라 나도 모르게 옆방에서 나는 소음에 귀를 기울일 때가 많았다.


 어느날은 나에게 클래식 기타를 배운 남자 후배가 옆 방 오디션을 보고 동아리를 옮겼다. 깊은 배신감이 들었다. 아니 사실은 부러웠었다.




 그룹제 시행 후 그룹장님을 처음 만나는 비행이었다. 밴드 활동을 하는 매니저님 그룹에 배정된 것이 마냥 신기했고, 어쩌면 나에게도 밴드에 들어갈 기회가 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에 얼른 뵙기를 고대했던 순간이었다.

유니폼 바지에 빳빳한 주름이 다려져 있고 앞머리를 우아하게 세워 넘긴 인자한 표정의 선비 매니저님이 다가오셨다. "아로마씨 클래식 기타 쳤다면서요? 윙스타에서 넘버원한테 일렉기타 배워볼래요?"


'넘버원 선배님? 지난번에 비행에서 만난 무뚝뚝하고 눈썹 진하고 무섭게 생기셨던 남자 선배님이잖아. 아냐 상관없어.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앗. 네. 저도 일렉기타 정말 배워보고 싶어요. 매니저님."


 "다음 주 수요일이 윙스타 합주일이에요. 아로마씨 쉬는 날이던데 합주실 한번 오세요. 합주실은 김포공항 화물청사 지하에 있어요."


 "네, 그 때 뵙겠습니다."




 윙스타 합주실. 클래식 기타를 들고 지하실로 내려가는데 딴딴딴딴 신나는 음악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안녕하십니까, 기타 치고 싶어서 찾아온 아로마 입니다."


 "어서와요." 아담한 다람쥐 선배가 재빨리 일어나 옆집 언니처럼 웃으며 앉기를 권하고 따뜻한 차를 타주었다.


 "지난번에 박드레곤이 교육원에서 만났다는 아로마씨야. 넘버원아, 네가 일렉기타좀 잘 가르쳐줘라." 선비 매니저님 이었다.


 "잠깐만요." 그 때 여자인 내 피부보다 더 뽀얀 피부를 가진 로저스 선배가 가로막았다. "선배님, 그래도 오디션은 봐야죠. 아로마씨, 기타 가져왔으니 어디 한 번 기타좀 쳐보세요." 하얀 얼굴에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며 이야기했다.




 심호흡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을 연주했다.


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멈춰 있던 시간이 지났다. 로저스 선배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 오디션 결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당연이 합격이지 합격." 선비 매니저님이 함박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사실은 교육원 박드레곤 선배한테 이야기 듣고 날 그룹에 넣으신거면서, 기타 멤버로 이미 확정해 두신거면서 오디션이라니. 후훗.

 윙스타 그룹에 19년째다. 그 때 사정을 다 알고 있는 지금은 그냥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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