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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진희 Nov 27. 2022

6. 특성화고 대입전문학원

미래를 생각해본다면 딱히 도움되지 않는 곳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는 참 많은 학원들이 존재하고 나 역시 학원을 참 많이 다녔다. 일반적으로 학원이라 하면 학생의 입장에선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위한 학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 예나 지금이나 특성화고등학교의 실습 위주의 교육과정 및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한다면 학교에서 인문계 수준의 국영수사과 수업을 기대하기에는 큰 무리가 따랐다. 일주일에 국영수가 많아봐야 세 시간이고 학생들은 분수 덧셈조차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모여있을 뿐만 아니라 취업을 위한 실습 위주의 교육과정이 메인인데 어떻게 학교 수업만으로 수능을 대비할 수 있겠는가? 내가 특성화고 교사이지만 이 부분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특성화고 대입전문학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은 당장 대입은 물론이고 대학 입학 후의 미래, 혹은 재수를 염두한다면 인생에 전혀 도움되지 않는 일이라는 점을 내 과거 및 현재 경험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하였지만 나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기로 하였다. 대학 진학을 목표로 내신성적은 최상위권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나 솔직히 학교 내신 준비를 위한 공부만으론 한계가 명확했다. 우리 학교 안에서는 내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하더라도 대학에 가서는 인문계에서 날고 기던 학생들하고 경쟁해야 하니 도저히 그 차이를 메꿀 방법이 없었다. 그 차이가 어느 정도냐 하면 우리 학교에서는 수학 교과가 수학I까지만 배우고 졸업했었지만 당시 수능 이과 수학은 수학I, 수학II, 심화 미적분까지 배워야 수능 문제를 풀 수 있었다. 따라서 나는 대학 가기 전까지 교과별로 이 차이를 어떻게든 줄여놔야 대학생활이 그나마 수월해질 수 있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따라서 나는 1학년 때부터 졸업 전까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위주로 인문계 학생들이 다니는 단과학원을 다니면서 학교 진도와 별개로 공부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동네에 존재하던 특성화고 대입전문학원이란 곳에서 나에게 전화가 왔었다.


학원 : 안녕하세요? 여기 해남 컴퓨터 학원인데, 진희 학생 집인가요?


나 : 네, 전데요?


학원 : 안녕? 선생님은 해남 컴퓨터 학원의 한미호 선생님이야. 진희는 학교 어디 다녀?


나 : XX공고 다니는데요?


학원 : 아, 그렇구나. 근데 요새는 입시제도가 많이 바뀌어서 실업계에서 오히려 대학을 더 쉽게 가거든. 우리 학원은 컴퓨터 학원이지만 실업계 전문학원이라서 우리 학원 오면 내신관리를 도와줘서 나중에 대학 가는데 큰 도움이 될 거야.


나 : 저는 이미 XX입시학원 다니고 있어요.


학원 : 아, 근데 거기는 인문계 애들 다니는 곳이잖아? 인문계랑 실업계는 배우는 내용이 달라서 그 학원은 가봐야 내용이 훨씬 많고 어렵기만 하지 내신 준비에는 도움이 안 되거든? 그러니 우리 학원이 내신관리에 훨씬 도움이 될 거야.


나 : 내신이야 알아서 공부하는 거고, 나중에 대학 가고 난 다음 생각하면 지금부터 인문계 애들 공부하는 것을 배워놔야 대학에서 경쟁이 될 거 아니에요?


학원 : 그건 대학 가고 나서 생각할 일이야. 지금은 내신관리만 잘하면 다 돼.


나 : 전 딱히 그렇게 생각 안 해요. 공부를 하려면 인문계 애들하고 부딪히면서 해야 제대로 공부가 되지 내신 준비만을 위한 학원에 다니고 싶지는 않네요.


  나와 특성화고 전문학원의 악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분명히 나는 안 간다고 말을 했는데도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에 전화가 와선 자기네 학원에서 내신 관리하라는 헛소리를 지껄여 댔다. 도대체 학교에서 다 할 수 있는 내신관리를 왜 자기네 학원에 와서 하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 입장에서는 특성화고에서 내신관리를 위해 학원을 간다는 것은 컵라면 물 붙는 것을 배우기 위해 학원 간다는 소리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굳이 이런 걸 돈 내고 배울 필요가 있단 말인가? 얼마나 전화가 오던지 나중엔 오히려 우리 부모님이 전화하지 말라고 학원에 항의 전화를 걸 정도였다. 항의 전화 한번 걸어주고 났더니 한동안 잠잠 해지더니 얼마 후 다른 사람에게 또 전화가 왔다.


학원 : 여기 해남 컴퓨터 학원인데, 진희 학생 있나요?


나 : 전데요.


학원 : 해남 컴퓨터 학원의 강혜진 선생님인데, 진희 어디 학원 다니니?


나 : XX입시학원 다니고 있는데요.


학원 : 그 학원은 인문계 애들 다니는 학원인데 거기 가서 수업 따라갈 수 있겠나?


나 : 저는 인문계 애들보다 눈이 한 짝 없나요? 귀가 한 짝 없나요? 못 따라간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뭐예요?


학원 : 아, 그렇나? 근데 우리 학원 오면 내신관리를 집중적으로 할 수 있고,.....


나 : (말 끊으며) 저 수능 칠 거예요.


학원 : (말문이 막힌 듯 침묵이 흐르다가) 아, 그렇나? 알았다.


 그 뒤로 우리 집엔 두 번 다시 특성화고 전문학원에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입시 전문학원이라면서 수능 치겠다는 인간이 무서웠냐? 어떻게 수능 칠 거라는 그 한마디에 말을 못 하고 전화를 끊고 다시는 전화가 안 오냐?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웃기기만 했다.


 시간은 흘러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역시나 내 예상대로 대학에서는 인문계 학생들 위주의 강의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나 말고 특성화고에서 같이 대학 온 동기들은 학과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곤욕을 치르는 모습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많은 고등학교 동기들이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 대학을 자퇴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그래, 이게 현실이지. 대학 간다고 인생이 다 끝나는 게 아니었어. 대학이야 어떻게 간다고 쳐도 고등학교 때까지 안 하던 공부가 대학 간다고 절대 될 리가 없지.  



  그리고 또다시 시간은 흘러 교사가 된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담임을 맡았던 졸업생 한 명이 찾아왔었다. 이 친구도 고등학교 때 대학 갈 거라고 내신관리 해준다는 특성화고 전문학원을 다닌 친구였는데, 3학년 2학기 때 학원에서 '2학기 때는 학교 가봐야 아무 도움 안된다. 학교 가지 말고 학원 와서 자습하는 게 훨씬 도움된다.'는 말에 속아 졸업 전까지 무단결석일수가 50일이 훨씬 넘은 채 졸업한 친구였는데, 졸업 후 사정상 바로 대학을 가지 못하고 재수를 하고 싶은데 어떡하면 좋겠냐고 상담하러 온 것이었다.


학생 : 선생님, 제가 이번에 군대 전역해서 내년에 대학 가려고 수시 원서를 쓸려는데요.


나 : 졸업생이 수시 원서 쓸려면 3학년 2학기 성적까지 들어갈 건데, 너 3학년 때만 결석일수 50일 넘는 거 기억하냐? 그것도 무단결석인 거.


학생 : 출결도 성적에 들어가요?


나 : 야, 아주 운 좋게 생활기록부를 안 보는 대학이 있으면 모르고 넘어가겠지만 네가 가려는 대학이 생활기록부 성적, 출결 가지고 점수 매기면 너 어떡할 건데? 결석이, 그것도 무단결석이 이렇게 많은데, 네가 교수라면 이런 학생 뽑고 싶겠냐?


학생 : 안 뽑고 싶겠죠.


나 : 것 봐. 너 만약 면접에서 교수가 '결석이 왜 이렇게 많습니까?'물으면 뭐라 할 건데? '학원에서 2학기 때는 학교 갈 필요 없다고 해서 안 갔습니다.'라고 답할 거냐?


학생 : ......


나 : 내가 너 3학년 때 뭐랬냐? 그 시답잖은 학원 믿지 말랬지? 그래, 네가 그렇게 믿었던 학원이 이제 이렇게 망쳐진 니 생기부 책임져 준다더냐?


학생 : 아니오......


나 : 쓸데가 있건 없건 결국 지금 욕먹고 빌빌대는 건 학원이 아니라 너잖아? 니 인생이라고. 아무도 니 인생 책임 안 져줘. 막말로 학교라도 잘 나왔으면 네가 성적이 나빠도 생기부는 깨끗했을 거 아니냐고.


 나는 그날 졸업생과 진로상담 선생님을 찾아가서 셋이서 그나마 그 상황에서 수시 원서를 쓸 방법을 연구하여 알려줬고, 결국 다음 해에 그 졸업생은 다행히 대학에 갈 수 있었다. 이처럼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지금 필요 없다고 느끼는 것이 나중에 어떻게 필요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졸업생은 나중에 자기가 졸업 후에 다시 학교에 찾아와서 아쉬운 소리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아마 안 했을 거다. 그러니 인생이라는 관점에서 멀리 본다면 눈앞에 편하고 달콤한 것이 결코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은 반드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도 특성화고 전문학원 다니겠다는 학생이 학교에 있다면 기를 쓰고 말린다. 물론 내가 아무리 말려도 그런 학생들은 꿋꿋이 특성화고 전문학원을 다니고, 결국 또 3학년 2학기 대학 입시 시즌이 되어서 나는 그 학생들에게  똑같은 소리를 다.


나 : 것 봐라. 걔네가 너네 망쳐진 생활기록부 책임져준대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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