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성화고 학생들에게 날리는 팩트 폭격
인문계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이 졸업 후 목표가 대학 진학일 것이라 예상된다. 원래 특성화고의 취지는 취업이지만 나 역시 대학 진학을 하였고, 특성화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고 있으면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은 정말 극소수이고 마치 내가 근무하는 곳이 인문계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학생들은 대학 진학을 희망한다. 물론 이러한 현실에 대해 내부 사정을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학생들이 뭔가 자신만의 꿈을 갖고 공부하기 위해 대학을 희망하는 게 아니라 공부는 할 생각이 없지만 단순히 당장 취업하기 싫고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어쨌든 특성화고 안에서 나름대로 정신을 차리고 공부해서 내신 성적 상위권에 드는 학생이라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학교 안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전국 학생들과 경쟁하는 수능 모의고사를 친다면 상위권은커녕 하위권에서 깔아주는 역할밖에 되지 않는다는 참혹한 현실을 맛보게 될 뿐이다.
나의 모교는 고등학교 생활 3년을 통틀어서 총 네 번의 모의고사를 실시하였다. 1, 2학년 때 한 번씩, 그리고 3학년 2학기 때 두 번을 쳤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1년에 몇 번 정도 모의고사를 치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입장에선 1년에 한, 두 번 있는 이 모의고사야 말로 객관적인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하지만 1학년 때 치러졌던 첫 번째 모의고사는 솔직히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학교 성적은 최상위권이니 학교 안에서 나의 콧대는 높아질 만큼 높아져 있었고, 내 나름대로 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던 만큼 모의고사라도 어떻게든 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첫 모의고사를 끝내고 결과는 국영수사과 평균 4등급을 받았었다. 4등급이 잘한 등급은 아니었지만 학교에서는 잘한 거라면서 나를 칭찬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기분 좋게 모의고사 성적표를 당일 부모님께 보여드렸지만 반응은 아주 싸늘했다.
아버지 : (성적표를 보고 난 다음) 이제 니가 얼마나 무식한지 알겠냐?
나 : 평균 등급이 4등급이고, 학교에서는 이게 잘한 거라던데......
아버지 : 니가 느그 학교에서 꼴에 상위권이라고 현실감각을 잃었구나? 4등급이면 누적 등급 상위 40프로인데 겨우 절반에 들어놓고 지금 니가 잘했다는 거냐?
나 : ......
나는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버지 말씀이 틀린 건 없었지만 한번쯤은 격려해 주실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너무 분하고 원통했다. 학교에서는 나를 알아주는데 정작 부모님이 나를 몰라준다는 생각에 서운했다. 그래서 뭔가 악에 받치는 느낌이 들었다. 부모님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후 시간은 흘러 나는 2학년이 되었고, 학교 내신과는 상관없이 꾸준히 공부하며 학년 말에 예정된 모의고사를 빨리 쳐서 결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차피 내가 부모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은 모의고사 성적표 밖에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치러진 2학년 때 모의고사에서 나는 언외수(당시에는 국영수를 언어, 외국어, 수리의 앞글자를 따서 언외수라고 하였음)와 함께 탐구영역은 직업탐구(정보기술기초, 공업입문, 기초제도 총 3과목)를 선택하여 시험을 치렀고, 결과는 언외수 각각 3등급, 직업탐구 세 과목 각각 1등급이라는 결과를 낸 것이었다. 나는 정말 이 결과가 만족스러웠기에 이번에도 부모님께 보여드렸지만 이번에도 반응은 아주 싸늘했다.
아버지 : 이 성적으로 니 뭐할 건데?
나 : 아니, 작년에는 모의고사 평균 4등급이었지만 올해는 언외수만 각각 3등급이고 직탐은 전부 1등급인데요?
아버지 : 그래, 백보 양보해서 국영수가 3등급 나온 건 못한 건 아니라 치자. 근데, 직업탐구 이거 실업계 애들 치는 거 아니가? 사회탐구, 과학탐구 못 쳐서 직업탐구 치는 놈들 모아놓은 그 사이에서 1등급 받은 게 잘한 거냐?
나 : 그래도 1등급 받은 건 잘한 거잖아요.
아버지 : 핑계도 좋다. 고만고만한 놈들 모아놓은 사이에서 꼴에 1등급이라고 지금 유세 떠냐?
그날 밤에 혼자서 정말 많이 울었었다. 도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건데? 조금은 칭찬해 주면 안 되나?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을 이렇게까지 개무시해도 되는 건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환경을 걸고 늘어지면서 결과치를 무시하면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나보고 환경을 바꾸란 말인가? 정말 내 입장에선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다. 그날 밤에 한참 혼자서 울고 난 다음 생각을 정리했다. 모의고사에서 직업탐구 친 것이 이렇게 무시받을 일이라면 차라리 나는 내년에 과학탐구를 치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학교에서 교과로 배우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학원, 독학으로 과학탐구영역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탐구영역을 과학탐구를 하겠다고 결정하는데 부담이 없었으며, 세부 과목은 물리 I, 물리 II, 생물 I, 화학 I 이렇게 총 네 과목을 선택하기로 하였고, 이 선택은 수능시험까지 이어졌다.(당시 수능은 사회, 과학탐구는 4과목까지 선택 가능, 직업탐구는 3과목 선택 가능했다.) 이번에도 시간은 흘러 3학년 2학기가 되었고, 3학년 때는 모의고사가 두 번 있을 예정이었다. 두 번의 모의고사 결과는 대략 평균 2등급 정도의 성적을 받았고, 이번에는 아버지께서 딱히 나에게 뭐라 하시지는 않았지만 잘했다고 칭찬해 주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끝끝내 나는 부모님꼐 '잘했다. 고생 많았다.'이 한마디를 듣지 못했고, 이런 학창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모님께 많이 서운한 기분이 든다.
아무튼 특성화고에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다면 학교에서 보게 되는 모의고사 결과를 가지고 객관적인 자신의 전국 등급을 확인하여 전략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신은 학교 안에서만 등급을 매기지만 어차피 대학을 가게 된다면 인문계 출신 학생들과 경쟁하게 되므로 객관적인 자신의 실력 파악과 그에 따른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