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터의 현실과 미래
어릴 적 보던 공상과학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단골로 등장하던 기계가 있었습니다.
어떤 기계는 시간여행을 하는 기계였고, 어떤 것은 공간이동을 시켜주는 기계였죠. 아직도 이런 기계들은 우리의 곁에서 볼 수 없지만 영화에서 그와 비슷하게 자주 나오던 기계장치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주는 기계'였죠.
아주 옛날이야기에서야 도깨비방망이였겠지만 공상과학으로 넘어가면 기계에 버튼을 누르면 삐릭삐릭하고 나서 내가 원하는 물건이 툭 튀어나오는 그런 기계가 나오곤 했습니다. 뭔가 미래가 되면 그런 기계가 나와서 우리가 원하는 건 뭐든지 만들어 줄 것 같았죠.
나이를 먹고 3D 프린터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 떠올랐던 것이 바로 그 기계였습니다. 생각한 것을 그대로 만들어주는 기계. 물론 실제로 3D 프린터를 접하고 느끼게 된 것은 그런 기계는 아니었지만요.
오늘 이야기는 3D 프린터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D 프린터가 왜 아직 우리의 삶에 깊게 들어오지 못했는가를 중심으로 한 번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혹시 도트 프린터를 아시나요?
프린터 용지 양쪽에 구멍이 뚫려있고 돌돌 만 롤 모양의 용지를 넣어서 뽑던 그런 프린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나만큼이나 (또는 나보다 더) '아재'일 겁니다. 아직도 친구들과 '하이텔'이나 '천리안'에 올라온 소설을 도트 프린터로 뽑아서 돌려가며 읽던 기억이 있으니까요. 그 당시의 프린터는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전문적인 기계였고, 쉽게 쓸 수 있는 기계도 아니었죠. 물론 가정용 도트 프린터가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골칫덩이였습니다. 용지가 저렴한 것도 아니고, 잉크가 저렴한 것도 아니었죠. 당시의 인쇄소는 가정용 '프린터'따위는 신경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인쇄되어 나오는 책과 그런 도트 프린터는 경쟁 상대가 아니었으니까요. 잉크젯과 레이저젯이 나오던 시점이었습니다만, 해상도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잘 사용되기 어렵던 시절이었습니다.
3D 프린터 이야기를 하는데 왜 갑자기 도트 프린터 이야기냐고요?
지금의 3D 프린터가 우리가 아는 그 프린터로 치면 바로 도트 프린터에서 이제 막 가정용 잉크젯 프린터로 넘어가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3D 프린터도 가정용 프린터처럼 보급된다고? 그게 가능해?
누가 알겠어요? 어떻게 될지.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일반 프린터가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으니 잠시 인내심을 가지고 그 과정을 살펴봅시다.
초기의 2D 프린터가 '가정용 프린터'로 자리 잡는 게 가능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PC, 즉 개인용 컴퓨터의 원활한 보급이었습니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의 활성화는 그와 연결해서 사용하게 되는 프린터에게도 영향을 주었죠. 개인용 컴퓨터가 없었다면 컴퓨터는 누구에게나 '전문'의 영역으로 남았을 테고, 그에 따라 프린터도 보급되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건 당연한 이야기죠.
두 번째로는 프린터를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의 활성화였습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사람은 당연히 많았죠. 하지만 그 사람들이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문서 프로그램'이라는 소프트웨어들이 개발되면서 누구나 컴퓨터로 글을 쓰고 주고받고 뽑아서 읽어볼 수 있게 되었죠. 참고로 컬러 모니터와 프로그램들이 자리 잡으면서 당연히 컬러 프린터도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넘어가게 됩니다.
세 번째로는 문서 작성이 '누구나'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도 중학교 시절 삼성에서 만든 컴퓨터를 쓰면서 '훈민정음'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워드를 작성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걸로 자료를 만들어서 학교에 프린팅 해가면 학교의 대형 복사기로 복사해서 학습자료로 쓰곤 했습니다. 위의 소프트웨어 보급과 따로 언급하는 이유는 이것은 물리적인 자판에 대한 타이핑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타이핑이 가능하고 문서 작성이 가능하다는 것. 그게 프린터가 가정에 보급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발맞추어 일어난 프린터의 발달은 다양한 프린터들의 등장을 이끌었고, 레이저 프린터와 잉크젯 프린터는 그렇게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며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갈수록 출력물의 품질은 올라갔고, 느리디 느리던 프린팅 속도는 점점 빨라져서 대학가 근처에 성행하던 복사집을 위협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인쇄 업계마저 프린터에 대해서 경쟁 또는 협업하는 관계로 넘어갔죠.
그럼 3D 프린터는 어떨까요?
PC의 보급 문제는 기본적으로 해결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겁니다. 아무리 스마트폰 위주의 세상이어도 PC를 떠나서 노트북이나 그 중간쯤 되는 태블릿 보급율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니 까요. 심지어 태블릿들은 모바일 운영체계와 PC 운영체계를 둘 다 지원하기도 하고, 특히 애플을 필두로 인텔까지 ARM형 프로세서를 내놓으면서 모바일 CPU와 컴퓨터 CPU의 갭이 사라지고 있는 형편이죠. 즉, 같은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하여 같은 방식의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빠졌는데요. 그렇다면 소프트웨어의 문제는 어떨까요?
현재 3D 프린터는 사실상 이 부분에서 막혀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떠한 컴퓨터든지 문서작업은 가능하지만 어떠한 컴퓨터든지 3D 그래픽 작업이 가능한 건 아닌 경우가 많다는 거죠. 그것은 단지 기능의 문제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오랜 시간 동안 3D 모델링은 전문적 영역이었고 (지금도 그렇고요) 비싸고 복잡하고 어려운 프로그램을 통해서 접근을 해야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심지어 웹 상에서도 간단 3D 모델링을 하는 게 가능한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3D 모델링 소프트웨어의 무거움과 전문적 접근성은 3D 프린터의 보급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영상작업이 스마트폰 카메라의 활성화로 영상을 찍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아직도 편집에는 무언가 전문적인 기술과 트렌드가 많아서 접근하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영상편집도 윈도우미디어플레이어나 다음팟 인코더 같은 가볍고 간단한 프로그램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죠. 하지만 사람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의 편집이 나오기 어려운 관계로 다들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이용한 편집만을 고집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여전히 영상 편집은 어렵고 전문적인 작업인 것처럼 말입니다.
3D 프린터의 가격은 중국 업체들이 뛰어들면서 정말 혁명적으로 내려왔습니다. 지금은 40-50만 원대 3D 프린터의 성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죠. 그렇지만 저렴하다는 것은 그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렴한 가정용 3D 프린터를 사서 싱기버스에서 몇 개 다운로드하여서 출력하고 나서는 3D 모델링에서 막혀서 포기하게 되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거죠.
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야 지금의 3D 모델링 프로그램은 정말 간단하고 쉬워진 측면이 있지만 그래도 일반적 접근성은 여전히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글 타이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과 다르게 말이죠.
일단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라는 것 자체가 전 국민이 알고 조금이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한글, ppt, 포토샵, 엑셀' 정도지 그 이상은 마음먹고 접근해야 하는 프로그램 들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그걸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 역시 상당히 제약이 있습니다.
지금 3D 프린터가 국가차원에서 보급한다는 말이 아무리 많이 나와도 실제로는 활발하게 쓰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또 하나, 3D 모델링을 학교에서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실생활에서 쓰일 일이 거의 없다는 것도 크게 작용합니다.
워드나 문서작업은 꼭 프린팅이 아니어도 쓰일 부분이 많습니다. 컴퓨터에 글을 입력해야 하는 건 제가 하는 브런치나 블로그 작업도 마찬가지니까요. 그런데 지금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에서 3D 모델링은 매우 후순위에 있습니다. 아니 거의 들어있지 않다고 보아도 좋을 정도죠.
오히려 '대 유튜브 시대'에서는 위에 잠깐 언급한 '프리미어 프로, 파이널 컷, 다빈치 리졸브' 같은 영상편집 프로그램들이 더 쉽게 접근하게 되고 쓰임새도 있는 편입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심지어 영상을 찍는 장비도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폰'이면 충분한 시대니 까요. 영상편집용 앱까지도 유튜브에 올리기 괜찮을 정도로 쓸만한 시대니 말 다한 거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3D 프린팅의 미래는 어둡기만 한 걸까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든 이야기의 핵심은 3D 프린팅의 '보급'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죠. 3D 프린팅 자체의 미래에 대한 것은 그것과 이야기가 다릅니다.
실제로도 3D 프린팅은 점점 발전하여 정밀도가 높고 비싼 3D 프린터가 더 많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소재도 플라스틱 이외에도 레진, 금속, 종이, 음식물 등의 다양한 소재가 사용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전 세계 곳곳에서 건축용 3D 프린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건축에 3D 프린터를 활용하려는 계획이 있는 상황이고요.
이해를 돕기 위해 다시 2D 프린터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하자면, 결국 가정용 프린터 시장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지금도 모든 가정에 프린터 한대 씩은 다 있을까요? 지속적인 성장으로 역대 가장 프린터 보급률이 높아졌을까요? 대답은 아마도 '아니오'일 것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활자를 지면보다 모니터에서 더 많이 읽습니다. 아니 사실 그것보다 스마트폰 액정에서 가장 많이 읽고 있죠. 그렇게까지 자주, 많은 것을 출력할 일이 없으면 프린터는 여전히 쉽게 고장 납니다. 잉크를 사용하는 현재의 프린터 방식에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헤드가 막히는 일도 자주 있고요.
심지어는 그나마 프린터의 필요성을 보정해주던 스캐너 부분마저 핸드폰 카메라에 그 영역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이미 디지털 보정을 통해서 글씨를 더 선명하게 해 주거나 편집을 통해 스캔한 것 같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고요.
결국 프린터는 다시 '사무용'과 '전문용' 영역으로 돌아가서 그 분야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가정용 프린터가 아예 사장된 것은 아니지만 메인 스트림은 아니라는 것이죠.
3D 프린터도 마찬가지입니다.
3D 프린터가 집집마다 보급되는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3D 프린터가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산업의 영역에서는 아주 발전된 고가의 3D 프린터들이 정밀한 시제품들을 생산해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금형에 의한 사출성형이 대량 생산에 유리하고 적합하지만, 그런 대량 생산되지 않는 제품에 있어서는 3D 프린터가 충분히 그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구조에 있어서 사출성형으로는 불가능하더라도 3D 프린터에서는 공차를 주고 폐쇄형 구조를 바로 생산해낼 수 있기도 하죠.
거기다 우리의 일상 영역에 게임과 메타버스를 필두로 한 3D 그래픽이 빠르게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3D 그래픽이 젊은 세대에게는 낯설지 않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3D 그래픽 시장의 발전을 의미하며, 그 발전은 3D 프린팅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긍정적인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매년 3D 프린터가 주 재료로 사용하는 필라멘트에서 만들어내는 미세 플라스틱이 사용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기사가 나오죠. 안전장비와 안전수칙을 지키면 별 문제없을 테지만 가정이나 교육환경에서 그런 수칙이 잘 지켜지지도 않고 지키기가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듭니다. 그러한 영향으로 대부분의 가정용 3D 프린터가 더 다루기 쉬운 ABS보다 친환경 소재인 PLA 소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말이죠.
실제 얼마 전 뉴스에서는 평범한 공기 중에 미세 플라스틱이 있다고 발표가 났습니다. 하지만 그건 3D 프린터에 의한 것이 아니었죠. 기본적으로 우리가 일상에 사용하고 있는 플라스틱 제품의 영향이 더 컸습니다. 흔히 '플리스'라고 불리는 그 소재를 친환경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한 ABS 계열 플라스틱을 녹여서 실처럼 뽑는 그런 과정이 바로 미세 플라스틱이 많이 발생하는 공정입니다. 그리고 공정뿐만 아니라 집에 있을 때도 플라스틱 성 섬유에서 나오는 미세 플라스틱의 영향이 더 크죠.
그리고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플라스틱이 ABS를 가장 많이 쓰고 있으며 그렇기에 사출 공장과 같은 대형 플라스틱 처리업체에서 배출하는 것의 영향이 외부 공기에 미세 플라스틱 함유량을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는 3D 프린터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겠죠.
실제로 3D 프린터의 재료는 플라스틱만이 아닙니다만, 대부분이 화학적인 소재를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는 맞습니다. 그것이 파우더 방식이든, 레진이든 말이죠. 메탈방식이나 종이를 이용하는 3D 프린터도 있지만 그건 드문 일이니까요. 초기에는 가공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ABS 비율이 높았지만 갈수록 환경문제로 PLA를 많이 쓰고 있음에도 아마 피해 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공무원 한 분이 3D 프린터가 생각보다 느린 것에 놀랐다고 하자 옆에 계시던 전문가 분이 정색하면서 말씀하셨죠.
"이게 엄청 빨라진 거예요."
여전히 우리가 공상과학에서 보던 것처럼 몇 초만에 짠하고 원하는 물건이 튀어나오는 날은 멀고 멀었습니다. (언제 그런 날이 올진 아무도 모르죠) 그렇지만 초기의 도트 프린터도 그랬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디지털 출력의 시대에 살고 있고, 인쇄소를 가지 않아도 어느 정도 고가의 프린터는 인쇄소에 가까운 수준으로 빠르고 수준 높은 프린팅이 가능합니다.
언젠가 근처에 복사집처럼 3D 프린팅 방을 들러서 물건을 내밀며 물어볼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이거 빨리 복사되죠?"
물론 그러려면 3D 스캐닝 기술도 중요하지만요. 그건 다음 기회에 다시 다뤄드리겠습니다. 그쪽도 엄청 재밌거든요.
@ 게인
커넥티드 인사이드에서는
4차 산업, 콘텐츠, 인문학 그리고 교육에 관해서
가볍거나 무겁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다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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