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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인 Jun 21. 2023

빌런이 되다

어느 날 눈떴는데 가끔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


'아니 세상이 왜 이래? 언제 이렇게 바뀌었어?'


사실 하루아침에 바뀐 건 아니다. 내가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뿐.










우리가 모르는 공간들에서 유행하던 것 중에 '빌런으로 살아가기'라는 해시태그가 있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해시태그 문화는 SNS에 익숙한 젊은 층에게서 유행한다. 그리고 아주 조금 더 여성 쪽에 영향을 준다.


전에 다루었던 'Quiet quit'과 비슷하다.


예전이라면 팀과 단체와 사회를 위해서 참았을 것들을 더 이상 참지 않는 세대가 되었다. 그래서 '빌런으로 살아가기'는 자신들이 '나쁜 사람이 돼라'는 의미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아니. 그렇게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법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친절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지 않을 뿐이다.




이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전 글 중에서 '꼰대'에 대해서 다룬 글이 있었는데 그 글에서 나는 예절과 배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기도 했다. 시대의 예절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전통적으로 내려온 '관습적 예절'들이 무너지면서 혼란을 겪고 있다.


밥상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는 건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매우 무례한 짓으로 받아들여졌다. 직업이 사진작가라서 그런다면 몰라도.

10년 전, 블로그와 SNS 초창기만 하더라도 그런 느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게 무례하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법에 저촉되는 행위도 아니기에 마음대로 한다. 무례하다고 느끼는 건 그 사람의 감정일 뿐인데 내가 배려해 줄 필요가 있나?라는 게 지금 시대의 기준이다.




억압당한 것들에 대한 반향은 필요하다.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는 말이 존재할 정도로 세상은 친절하거나 착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구도로 흘러가고 있다. 그 안에서 계속 피해자로 살기보다는 '빌런'으로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빌런이 되는 파트가 어느 파트일지도 자신이 결정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겹치기 시작하면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것은 뻔한 이야기다.




예전에 비해서 중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중국 관광객에 대한 이미지는 좋지 않다.


물론 그들의 '성조'가 있는 언어가 한몫을 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어디를 가더라도 자신들의 편의를 위주로 행동하는 부분이 가장 큰 원인이다. '사회적인 배려'를 기준으로 해놓은 것들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 결국 배려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본다.


그런데 이게 더 이상 그런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중국관광객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만 피해를 보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여전히 가슴 따뜻하고 좋은 사례들이 존재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례다. 세계에서 무인점포가 가장 잘 운영되는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지만, 최근 뉴스에서는 수많은 빌런들에 고통받고 있는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무인 카페는 일탈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의 숙소처럼 되어버렸다. 카공족에 전기도둑 논란까지 겹치면서 아예 콘센트를 막아버리는 카페가 늘고 있다. 예전에는 음료가 무한리필인 패스트푸드가 많았지만 지금은 드물다.




사실 우리나라는 그에 대해서 그나마 느린 편이다. 그래도 이름뿐이나마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외국인들이 골치를 앓게 하는 존댓말과 압존법이 존재하는 나라다.


개인적으로는 나이로 존댓말을 결정하는 것은 싫지만 존댓말 자체는 싫지 않다. 서로 존중해 주는 느낌이다. 최근에는 나이 든 사람들 중에서도 젊은 사람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 그런 존중은 결국 서로 간의 예의를 만든다.


그런 우리나라에서도 결국 현세대에서 문제가 조금씩 불거지는 상황이다. 그리고 그건 외국이 훨씬 심하다.










수많은 본인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런 '빌런으로 살아가기'라든가 'Quiet quiting'같은 것을 받아들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진보적 사고는 '트렌드'가 아니다. 지금의 트렌드가 언제나 진보적일 거라는 추측도 오류다. 애초에 진보적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 자체도 애매하다. 


자연에서 어떤 종은 이전보다 약해지기도 하고 기이해지기도 한다. 살아남는 데는 그게 유리해서 그렇게 변했다면 그걸 '진화'라고 본다. 빌런이 되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게 '살아남는 데 유리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당장은.


그래서 그걸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하겠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것은 종의 쇠락을 가져오는 경우가 없으리라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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